‘이생망’ 된 신혼집 마련… 결혼 미루거나 출산 포기로 이어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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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탈출!인구절벽/2부 출산의 법칙을 바꾸자]<3> 결혼-출산 막는 주거난

“내 집 마련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의 줄임말)인 것 같아요.”

23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예비 신랑 안병준 씨(31·수영강사)는 신혼집 계획을 묻는 질문에 한숨부터 쉬었다. 안 씨는 9년간 사귄 여자친구 권모 씨(29·웹디자이너)와 올해 11월 결혼한다. 비용을 줄이려고 결혼식까지 생략했지만 문제는 ‘집’. 안 씨는 하루에도 수십 차례 공공임대주택 정보를 알려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뒤진다. 혹시 괜찮은 매물이 나올지 모른다는 기대감에서다. 하지만 현재 서울 시내 공공임대주택 매물은 단 한 건도 없다.

안 씨와 권 씨의 소득 합계는 월 500만 원 안팎. 일을 시작한 기간이 짧아 모은 결혼자금도 2000만 원 정도다. 서울 시내 45∼50m²대 빌라 전세 보증금은 최소 1억5000만∼2억 원대다. 부모님이 6000만 원을 지원해 주기로 했지만 최소 1억 원 이상 대출을 받아야 한다. “대출을 받아도 둘 다 직업이 불안정해 결혼 후가 더 걱정이네요.”

○ 결혼 미루게 하는 주거난

저출산 위기는 신혼집을 구할 때부터 시작된다. 맞벌이를 해도 안정적인 집을 구하는 게 어렵다 보니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게 된다. 결혼 후에는 대출 이자 부담에 출산을 미루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위기는 이미 현실이 됐다. 지난해 국내 혼인 건수는 28만 건으로 통계를 수집한 1974년 이후 처음으로 30만 건 밑으로 떨어졌다. 올해 1∼4월 누적 혼인 건수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5.8%나 감소했다. 보통 결혼 후 2, 3년 뒤 첫아이를 갖기 때문에 앞으로 합계출산율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저출산 위기를 극복하려면 신혼부부의 주거난부터 해결해야 하는 이유다.

동아일보 취재팀과 저출산 대책팀은 예비 신혼부부 6쌍이 신혼집을 구하는 과정을 추적해 그 해법을 찾아 나섰다. 이들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며 결혼 후에도 맞벌이를 할 계획이다. 어떻게든 서울 시내에서 집을 구하려는 이유다. 서울은 신혼집 주거난이 전국에서 가장 심각하다.

취재팀은 이들이 정부의 신혼부부 주거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부터 따졌다. 예비 신혼부부 6쌍의 연 소득은 6000만∼1억 원대로 3인 이하 도시근로자 가구 월평균 소득(488만4448원) 이상이었다. 모아놓은 결혼자금은 2000만∼1억5000만 원으로 다양했다. 이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예비 신혼부부는 2쌍뿐. 이마저도 시중은행보다 낮은 이자로 전세금이나 주택구입자금을 빌릴 수 있는 혜택이 전부였다. 나머지 4쌍은 소득이 일정 기준을 넘어 아예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기댈 건 부모의 도움과 은행 대출뿐이다.

○ 전셋집 마련에 대출과 부모 지원은 필수

내년 4월에 결혼할 예정인 회사원 임모 씨(31)는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한다. 공공기관 계약직 연구원인 예비 아내와 소득을 합치면 연 소득이 7000만 원을 넘기 때문이다. 임 씨는 서울 은평구, 노원구, 도봉구 등에 빌라를 알아보고 있다. 전세 보증금은 최소 2억 원이다. 그동안 모은 결혼자금 6000만 원을 다 쏟아부어도 1억4000만 원이 부족하다. 임 씨는 “부모에게 지원받을 형편이 안 돼 나머지 비용은 은행과 회사 대출로 충당해야 한다”며 “예비 아내가 계약직이라 일을 그만두면 혼자 대출 이자를 감당해야 해서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결혼한 지 5년 이내인 신혼부부 10명 중 6명(57.4%)은 무주택자다. 결혼 1년 차의 무주택자 비율은 65.8%나 된다. 신혼부부 절반이 맞벌이를 하는데도 왜 신혼집을 구하기가 힘들까.

한국은 전세라는 독특한 제도 탓에 해외에 비해 임차 보증금 부담이 매우 크다. 자산이 적은 신혼부부가 집을 구하기 어려운 구조다. 또 부동산 가격은 물가보다 가파르게 오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1994년 이전에 결혼한 신혼부부는 주택 구입비로 평균 7364만 원, 전세 보증금으로 2339만 원을 썼다. 하지만 2010∼2015년 결혼한 신혼부부의 평균 주택 구입비는 1억5645만 원, 전세 보증금은 9950만 원이다. 소비자 물가가 1.9배 오르는 사이 주택 구입비는 2.1배, 전세 보증금은 4.3배 뛰었다.

부동산 도시계획 전문가인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은 “고용이 불안정해지면서 과거처럼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내 집을 마련하는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며 “과거에는 방 한 칸에서 시작했지만 ‘방 한 칸이면 시작도 안 한다’는 게 요즘 현실”이라고 말했다.

○ 주거비용 소득의 30% 넘지 말아야

저출산 대책팀은 예비 신혼부부들이 집을 구할 때 과거와 다른 접근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고도성장기에는 대출 이자 부담을 안고서라도 집을 사면 나중에 높은 투자 수익이 돌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전처럼 주거로 높은 수익을 올리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김 의원은 “투자 수익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 계획과 현실적인 조건을 냉정하게 따져 주거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당장의 자산과 소득뿐만 아니라 향후 이직과 출산, 육아휴직에 따른 소득 감소까지 고려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의미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월세, 전세보다는 대출을 받더라도 주택을 구입하는 게 자산 형성과 주거 안전성 측면에서 좋은 방안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주거비용이 전체 소득의 30%를 넘어선 안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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