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 토지보상 兄 찾아와 자주 소란”… 70대, 계획적 범행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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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만에 또 엽총 살해]

현장 통제하는 무장경찰 27일 전모 씨가 엽총을 난사해 형 부부와 출동한 경찰관까지 살해한 뒤 자살한 경기 화성시의 주택 현장에서 무장경찰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화성=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현장 통제하는 무장경찰 27일 전모 씨가 엽총을 난사해 형 부부와 출동한 경찰관까지 살해한 뒤 자살한 경기 화성시의 주택 현장에서 무장경찰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화성=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재산 문제로 형과 불화를 겪던 전모 씨(75)는 27일 오전 8시 41분 경기 화성시 남양시장로에 있는 형(86)의 집에 도착했다. 전 씨는 형수 백모 씨(84)와 집 앞 마당에서 50분 가까이 실랑이를 벌였다. 언성이 높아지면서 다투는 소리가 이웃집까지 들릴 정도였다. 이 집 근처에서 공사를 하던 조모 씨(55)는 “말다툼이 끝나자 남성이 한 손에 엽총을 든 채 할머니를 부축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집에 들어간 지 2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 2층 단독주택에서 “탕” 하는 총성 두 발이 울렸다. 이어 이 집 며느리 성모 씨(51)가 2층 베란다로 황급히 뛰어나와 “도와 달라”고 외쳤다. 조 씨가 119에 신고하는 사이, 성 씨는 112에 전화해 “작은아버지가 시부모님을 총으로 쐈다”고 신고하고 1층으로 뛰어내렸다. 전 씨의 형과 형수 백 씨는 가슴에 총을 1발씩 맞고 거실에 쓰러져 그 자리서 숨졌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4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파출소에는 방탄복이 지급되지 않아 출동한 남양파출소장 이강석 경감(43)과 이모 순경은 무방비 상태였다. 급하게 출동하느라 권총 대신 전기충격기인 테이저건만 챙겼다. 전 씨의 위협사격에 한 차례 물러선 이 경감은 다시 현관문을 열고 설득하려다가 쇄골에 전 씨의 총을 맞아 숨졌다. 이 경감은 마지막까지 테이저건을 쥐고 있었다. 범인 전 씨가 화성서부경찰서 강력팀이 도착하기 직전인 오전 9시 40분경 엽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화성 엽총 총기 난사’ 사건이 막을 내렸다.

○ 수십억 원 보상받은 형과 재산 갈등


경찰은 전 씨가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씨는 이날 오전 8시 25분쯤 경기 남양파출소에서 이탈리아제 12구경 엽총(총기명 Fabarm, 모델명 AL48) 한 정을 출고했다. 경찰에게는 “법정 수렵 기간이 내일까지니 총기를 원래 등록지인 강원 원주경찰서에 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 원주가 주소지인 전 씨가 남양파출소에 처음 총을 맡긴 건 9일. 전 씨는 이날까지 12차례 입출고를 반복했다. 화성시를 포함한 경기도 내에는 수렵장이 없는 데다, 전과 6범인 전 씨가 이 같은 반복 입출고를 계속해도 경찰은 아무런 이상 징후를 감지하지 못했다.

살해된 전 씨의 형은 인근 지역이 개발되면서 수십억 원대의 토지보상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 돈으로 3년 전 집과 바로 옆의 3층 원룸을 지어 임대료로 노후 생활을 꾸렸다. 젊은 시절 광산업을 하다가 실패한 동생도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해 큰돈을 번 것으로 전해졌다. 이웃 백모 씨(76)는 “동생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승용차에 기사를 대동하고 골프를 치러 다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2년 전 식당을 접은 이후 동생 전 씨는 형에게 의존했다. 살해된 전 씨 부부와 오래 알고 지낸 한 주민은 “평소에도 동생이 술만 먹으면 형 집에 찾아와 소란을 피우곤 했다. 동생과 오랫동안 사이가 나빴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전 씨 차에서 발견된 편지지 5장, 수첩 한 장 분량의 유서에는 형에 대한 오랜 원망이 담겼다. 유서에는 “이날을 위해 내가 만든 완벽한 범행이다. 세상 누구도 전혀 알 수 없고 눈치챈 사람도 없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 수렵 기간-명절 겹친 시기 위험


이번 사건과 25일 발생한 세종시 총기 사건은 재산을 둘러싼 갈등이 원인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종시에서 옛 동거녀의 아버지와 오빠, 현재 동거남에게 엽총을 쏜 강모 씨(50)는 옛 동거녀 김모 씨(48)가 운영하는 편의점에 투자했던 지분을 돌려받는 문제로 마찰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평소 감정 다툼이나 경제적 갈등이 있는 가족 간에는 명절 전후에 분노가 터지기 쉽다고 경고한다. 남궁기 연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교수는 “가족 간 이해관계는 남보다 더 복잡해 애증의 진폭이 더 크다”며 “1년에 한두 번 가족과 만날 때 내재된 갈등이 증폭되면 폭력으로 번질 위험성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수렵 기간(11월∼2월·지자체별 기간 내 결정)과 겹치는 설 전후에는 가족 불화가 총기 사고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 2000년 이후 발생한 민간인 총기 살인사건 10건 중 8건(6건은 가족 간 갈등)이 이 기간에 발생했다. 2005년엔 경기 파주에서 유산 상속 문제로 형제들과 갈등을 겪던 이모 씨(66)가 설을 쇠기 위해 셋째 동생 집에 모여 있던 제수와 조카 등 3명을 엽총으로 살해한 뒤 자살했다.

화성=박성민 min@donga.com·강홍구 / 강은지 기자
#엽총#살해#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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