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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뼈 한점이라도”…38년째 아들 찾는 5·18행불자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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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뼈 한점이라도”…38년째 아들 찾는 5·18행불자가족

뉴스1입력 2018-05-17 13:45수정 2018-05-17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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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뼈 한 점이라도 찾아서 묻어주고 가야지. 내 아들 꼭 찾고 죽어야지.”

5·18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된 아들 임옥환군(당시 17세)의 어머니 김진덕씨(74·여)는 38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들의 뼈 하나 없는 무덤 앞에 주저 앉았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김씨는 국립5·18민주묘지 행방불명자의 묘에 있는 아들의 시신 없는 무덤 앞에서 오열했다.

임군의 아버지 임준배씨(82)는 흘러 나오는 눈물을 참기 위해 먼산만 바라보며 아들의 묘비에 손을 얹었다.

임씨는 “우리가 살 날이 얼마나 남았겠느냐. 아들 뼈 한 점이라도 찾아서 묻어주고 갔으면 좋겠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1980년 당시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학생이었던 아들 임군은 그 해 21일 고향에 가기 위해 산에 올랐다가 사라졌다.

광주에서 하숙생활을 하고 있던 임군은 고향인 전남 고흥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끊기자 친구들과 산 너머 화순에서는 고흥행 버스가 다닐 것으로 생각하고 길을 나섰다.


이날 광주에서는 계엄군이 집단발포해 수많은 시민, 학생이 거리에 피를 쏟았고, 이에 시민들이 계엄군에 항쟁하는 상황 속에서 임군 등은 화순으로 향하는 길에서 계엄군과 마주쳤다.

임군과 함께 길을 나섰던 친구들은 도망치거나 붙잡혔다가 나중에 풀려났지만, 임 군의 행방은 그 후로 알 수 없었다.

임씨는 “소식을 듣고 광주 하숙집으로 달려왔더니 친구가 가져다 놓은 아들의 가방만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며 “그때 그 심정은 말로 다 표현 못한다”고 침통해했다.

현재 광주시가 인정한 5·18 행방불명자는 82명으로, 2001년 광주 망월동 5·18 옛 묘역의 무명열사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6명 유해를 수습했지만 76명은 여전히 소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광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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