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코드1’ 내렸는데… 관할 경찰 “가출로 생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어금니 아빠’ 초동수사 부실 논란 확산

“우리 딸 전화기가 꺼져 있어요. 여태 집에 안 들어왔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거든요.”

지난달 30일 오후 11시 15분 여중생 김모 양(14)의 어머니는 112에 딸의 ‘미귀가’를 신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김 양이 ‘어금니 아빠’ 이영학(35)의 집에 있을 때다. 당시 김 양은 수면제 탓에 잠들었지만 아직 살아있었다.

신고를 접수한 서울지방경찰청 112종합상황실은 처리 내역서에 ‘코드1’로 분류했다. 실종자의 생명과 신체에 위험이 닥칠 가능성이 있어 긴급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코드1을 부여한다. 이 경우 최단시간에 출동해 수색해야 한다. 112상황실에서는 해당 사안이 긴박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경찰의 조치와 움직임은 코드1과는 거리가 멀었다.

경찰 매뉴얼에 따르면 실종신고 접수 후 최우선 조치는 실종자의 ‘최종 행적’ 확인이다. 실종 직전 머물렀던 장소와 함께 있었던 인물이 특정돼야 수색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기본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김 양의 어머니는 112에 신고하고 약 30분 후 서울 중랑구 망우지구대를 찾았다. 김 양 어머니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경찰관에게 딸이 마지막으로 만난 게 이모 양(이영학의 딸)이라고 말했다. 내가 ‘얘한테 전화해서 물어보겠다’고 말한 뒤 이 양과 직접 2분 18초 동안 통화했다”고 주장했다. 사실이라면 경찰은 김 양 최종 행적의 핵심 단서를 놓친 셈이다. 이에 경찰은 “당시 지구대 주변이 시끄러워 이 양의 이름을 들었다는 사람이 없다. 신고자가 이 양에 대해 경찰에게 말한 시간은 1일 오후 9시경”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7일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공개한 당시 지구대 폐쇄회로(CC)TV 화면을 살펴보면 경찰 해명과 거리가 있다. 김 양 어머니가 지구대에 머물렀던 약 50분 동안 크게 어수선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김 양 어머니는 담당 경찰관과 구석진 곳에서 대화를 나눠 다른 민원인과 가까이 있지도 않았다.

지난달 30일 오후 11시 49분 망우지구대를 찾은 김 양 어머니의 진술을 토대로 경찰이 작성한 프로파일링 조서의 일부. 실종 
아동 수색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자세한 행적을 파악해야 하지만 ‘최종행적’ 부분은 비어있다.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의원실 제공
지난달 30일 오후 11시 49분 망우지구대를 찾은 김 양 어머니의 진술을 토대로 경찰이 작성한 프로파일링 조서의 일부. 실종 아동 수색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자세한 행적을 파악해야 하지만 ‘최종행적’ 부분은 비어있다.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의원실 제공

이후에도 김 양의 최종 행적 파악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민주당 박남춘 의원에 따르면 실종자 기초 조사를 위한 프로파일링 조서에는 최종 행적을 적는 부분이 비어 있다. 발생 개요란에 ‘미귀가자는 평소 가출 경력이 없는 자로 친구들을 만나러 나간 후 귀가하지 않은 것으로, 현재 휴대전화 전원이 꺼져 있는 상태’라고 기록하고도 적극적으로 행적을 파악하지 않은 것이다. 서울 중랑경찰서 관계자는 “추석 연휴에 친구 집에서 자고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단순 가출 사건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 양의 통신기록도 확인하지 않았다. 김 양의 통화기록 확인은 사망 후 하루가 더 지난 2일에야 가족 협조로 이뤄졌다. 김 양의 최종 행적 파악이 늦어지면서 결과적으로 김 양은 부모의 실종신고 후 13시간가량 살아 있다가 이영학에게 살해됐다.

17일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위원들은 경찰의 부실수사를 질타했다. 김정훈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초동 수사 부실과 인수인계 미흡, 공조체제 미비 등으로 이런 결과가 나와 송구스럽다”며 “진상조사를 통해 책임을 가리고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지훈 easyhoon@donga.com·김예윤 기자
#112#코드1#경찰#가출#미귀가#신고#이영학#어금니아빠#초동수사#통신기록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