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송 제작-역할극시키는 취업면접… 족집게 과외 찾아 삼만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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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들 이색 면접에 절레절레

타고난 음치인 박모 씨(29)는 입사 면접 과제를 보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1박 2일로 진행된 국내 모 금융회사 면접의 마지막 날 주어진 과제는 새로운 로고송을 만들어 30초 홍보영상을 제작하는 것. 박 씨는 “국내외 금융시장 상황을 분석해 심층면접만 준비했는데 엉뚱하게 노래를 만들라고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연세대 재학생 오모 씨(25·여)도 최근 황당한 면접을 치렀다. 당시 면접 과제가 주어진 시간은 밤 12시경. 과제 제출 마감은 다음 날 오전 7시였다. 사실상 잠을 자지 말라는 뜻이었다. 아이돌그룹을 뽑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연상케 했다. 오 씨는 “전날 하루 종일 면접 일정이 진행된 탓에 오전 2시가 넘자 다들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잠을 이기지 못하고 자는 사람을 탈락시키기 위한 면접 같았다”라고 말했다.

○ 역할극부터 프레젠테이션까지… ‘첩첩산중’ 면접

올 상반기 신입사원 공채가 한창이다. 스펙 쌓기 경쟁에서 이겨 서류와 필기전형을 통과한 취업준비생(취준생)들은 마지막 고비인 면접을 준비한다. 최근 기업들은 실무 면접, 임원 면접 같은 고전적 방식을 벗어난 이색 면접을 도입하고 있다. 문제는 이색적이라는 이름 아래 지나치게 복잡하고 난해한 면접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동영상을 만들게 한 뒤 누리꾼 인기투표를 실시하는 온라인 오디션부터 역할극 면접까지 각양각색이다.

얼마 전 대기업 면접을 치른 채모 씨(27·여)는 “한동안 면접 준비를 못할 것 같다”고 털어놨다. 면접장에 들어선 채 씨 앞에는 자신을 성희롱하는 상사 및 고객에게 대처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이른바 ‘역할극 면접’. 채 씨는 “가상 상황이지만 지원자를 어쩔 수 없을 때까지 몰고 가 결국 두 손 들게 만든 것 같아 불쾌했다”고 말했다.

지방 국립대 졸업생 한모 씨(29)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지금까지 17곳 넘는 기업에서 면접을 봤다. 스파게티 면 쌓기 등 기상천외한 미션이 주어진 1박 2일 합숙 면접부터 사회 이슈를 다루는 토론 면접, 정답이 없는 창의성 면접, 난처한 근무 상황을 가정한 역할극 면접 등 당혹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기업들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며 난색을 표한다. 극심한 취업난에 고스펙을 갖춘 취준생이 몰리면서 회사에 적합한 인재를 고르려면 차별화된 선발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학원에 과외까지… 돈 있는 취준생만 유리?

문제는 예측 불가능한 면접 전형이 등장하면서 취준생들이 ‘면접 사교육’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강의당 수강료가 30만 원이 넘는 서울 강남의 유명 면접학원에는 기업들의 서류전형 합격자 발표 후 수강 신청이 이어지면서 추가 강의까지 개설됐다. 면접 과외도 등장했다. 프레젠테이션(PT) 면접이 늘어나자 전현직 대기업 직원들로부터 받는 비밀 수업이다. 사내 분위기와 면접관 성향까지 알 수 있어 부르는 게 값이다.

본보 기자가 서울 주요 대학의 취준생 20명에게 물으니 절반이 넘는 12명이 채용 시즌에 평균 22만 원을 면접 관련 비용으로 지출했다. 또 지방에서는 서울로 ‘원정 과외’를 오고 형편이 어려운 취준생은 일반 면접만 진행하는 중소기업으로 지원 눈높이를 낮추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사교육 대신 대학과 지방자치단체 등의 면접 프로그램 활용을 당부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 취업프로그램과 면접 학원의 강사진이 똑같은 경우가 많고 모두 기업이 제공하는 면접 가이드북을 이용하기 때문에 강의 내용도 비슷할 것”이라며 “까다로운 면접 전형을 미끼로 취준생을 유혹하는 사교육 시장을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단비 kubee08@donga.com·위은지 기자
#취업#면접#과외#취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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