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와의 전쟁’ 팔 걷은 엄마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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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건강 우리가 챙긴다”
측정소 찾은 커뮤니티 회원들

21일 서울 강서구의 미세먼지 측정소를 찾은 ‘미대촉’ 회원들이 꼼꼼하게 측정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21일 서울 강서구의 미세먼지 측정소를 찾은 ‘미대촉’ 회원들이 꼼꼼하게 측정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정부는 미세먼지 측정값을 시간별 평균 농도로 알리던데 이걸 분, 초 단위의 실시간으로 알릴 수는 없나요?”

 21일 오전 서울 강서구의 한 미세먼지 측정소에서 나온 ‘엄마의 목소리’다. 정부의 미세먼지 측정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학부모 13명이 이곳을 찾았다.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인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미대촉) 회원들이다. 이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미세먼지를 엉터리로 측정하지는 않는지, 자신이 갖고 있는 개인용 미세먼지 측정기와 왜 공식 측정기의 농도값이 다른지 등 궁금한 게 많았다. 유모차를 끌고 오거나 아이를 업고 측정소를 방문한 엄마들도 눈에 띄었다.

 
체크 리스트까지 준비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학부모 때문에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 연구사와 환경부 관계자가 진땀을 뺐다. 이들은 정부의 미세먼지 농도 측정 방식이 ‘베타레이법’이라는 점을 파악하고 있을 정도의 전문성을 보이기도 했다. 또 정부가 ‘중량법’(무게를 파악해 농도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다시 검증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어 왜 재검증을 거치는지, 미세먼지 수치를 낮게 보정하려는 의도는 아닌지 따졌다.

 정부 관계자는 “미세먼지 농도를 실시간으로 알리지 않는 것은 일시적인 영향에 의해 데이터가 왜곡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치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측정치가 시스템에 따라 자동 전송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개인용 측정기는 습기 등도 먼지로 오인하는 문제가 있어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했다.

 이날 참석한 김민정 씨(44·여)는 “휴대용 측정기 농도값이 높은 게 습기 때문이라면 비 오는 날에도 높아져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이처럼 일상적인 궁금증을 풀어주길 바랐는데 눈높이를 고려하지 않은 전문적인 설명이 많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미세먼지 측정 기계부터 포집 시설까지 꼼꼼하게 살펴본 뒤 측정소 위치가 3층 건물이라는 점을 들어 너무 높다고 지적하고 지상에서 5m 이내로 낮춰 줄 것을 요구했다. 이날 현장을 함께 방문한 환경부 공무원은 요구사안을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방문객 중엔 부부도 있었다. 아내와 18개월 된 아이와 함께 이곳 측정소를 방문한 이승영 씨(41)는 직장에 오전 휴가를 냈다고 했다. 이 씨는 “처음에 아내가 미세먼지 측정기를 산 뒤 측정값을 매일 커뮤니티에 올리는 모습을 보고 극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커뮤니티의 활동을 보니 미세먼지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와 관련된 중요한 이슈라는 점에 공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와 지자체에 실효성 있는 미세먼지 대책을 마련해 달라며 집단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한편 미세먼지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면서 조사·검증하는 학부모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미 이를 요구하는 미대촉 회원만 2만3000명을 넘어섰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회원들은 최근 지역 내 불법 소각 문제를 지자체에 제기하면서 직접 환경단체와 함께 불법 소각 현장을 찾아 상습 소각 지점을 표기한 지도까지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18일 지자체와 함께 현장점검까지 나갔다.

 현장을 발로 뛰는 학부모가 많아지는 건 미세먼지 정보에 대한 불신이 높기 때문이다. 서울시 등 지자체와 환경부는 이와 같은 불만이 소통 부족에서 온다고 보고 측정소 안내 및 연구자와의 간담회 등을 늘릴 방침이다. 21일 측정소를 방문한 이미옥 씨도 “앞으로도 직접 발로 현장을 찾아가서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이를 미대촉 회원들에게 알리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미세먼지#측정#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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