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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권’ 중요해 낙태 안 된다면서… 낳고나면 '아빠 없다' 눈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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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권’ 중요해 낙태 안 된다면서… 낳고나면 '아빠 없다' 눈초리

이지훈기자 , 김예윤기자 , 최지선 기자 입력 2017-12-01 18:02수정 2017-12-0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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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 낙태를 말하다] <4>출산 택한 비혼모의 ‘증언대’
‘고귀하고 존엄한 생명권을 침해할 수 없다. 태아는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로 독자적 생존능력이 있다.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낙태죄로 인해 과도하게 제한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가 2012년 “낙태죄 합헌” 결정을 하며 제시한 근거입니다. 헌재의 결정대로 낙태 대신 출산을 선택한 여성들은 당시 판단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동아일보 취재팀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비혼모(非婚母) 3명을 만났습니다. 세 명 모두 “아이 낳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태아의 생명이 고귀한 만큼 태어난 이후의 생명도, 아이를 낳은 엄마의 인생도 중요한 것 아니냐”고 하소연합니다. 이들의 말처럼 아빠 없는 아이들과 비혼모의 척박한 삶을 외면한 채 생명의 고귀함만 강조하는 건 설득력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내년 초 헌재는 6년 만에 낙태죄 위헌 여부를 다시 논의할 예정입니다. 비혼모 3명이 가상의 헌재 증언대에 섰습니다. 하루하루 맞닥뜨린 현실에서 우러난 이들의 증언을 함께 들어보시죠.


○“고귀하고 존엄한 생명권을 침해할 수 없다.”

존경하는 헌법재판관님. 5년 전 재판관님들께서는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태아를 함부로 할 수 없어 낙태죄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않으셨습니다. 3년 전 겨울까지,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2014년 12월, 눈에 보이지 않는 심장소리를 들었습니다. ‘쿵, 쿵.’ 제발 임신이 아니길 기도하며 병원에 들어갔던 저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생각했습니다. ‘무조건 낳아야겠다.’ 남자친구와는 아이는커녕 결혼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연애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귀하고 소중한 것’이 내 안에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2015년 8월 희찬(가명·3)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태어난 희찬이는 ‘고귀하고 존엄한’ 생명이 아니었습니다. 무시 받고 천대 받는 생명이 되었습니다. 희찬이를 또래 아기들과 놀게 하면서 자연스레 엄마들과 친해졌습니다. 그 중 저와 성격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한 엄마에게 제가 비혼모라는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그 후 희찬이에게서 친구들이 사라졌습니다. 저를 빼고 다른 아기 엄마들끼리 시간을 맞춰 놀기 시작했습니다. 차마 화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저 죄 없는 희찬이가 제가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위축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웠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선배 비혼모들에게 넌지시 물어봤습니다. 한 아이 엄마는 서울살이가 버거워 고향에 내려가려다 “시집도 안 간 게 애 놓은 게 뭐 자랑이라고 여기까지 기어들어오려고 하노”라는 숙모의 말에 귀촌을 포기했답니다. “가족들도 저렇게 생각하는데 남들은 어떻겠어.” 그 엄마가 덧붙였습니다. “누구한테 먼저 미혼모라는 이야기 하지 마, 자기와 아이만 상처받아.”


심지어 저희 엄마, 희찬이의 외할머니는 제 아이의 존재 자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결혼하지 않을 남자와의 사이에 생긴 아기를 낳겠다는 이야기에 엄마의 첫마디는 “미쳤구나”였습니다. 엄마는 지금껏 제 아이를 한 번도 본 적도, 물은 적도 없으십니다. 제 엄마에게 희찬이는 ‘없었으면’ 하는 생명입니다.

33년 동안 부모님께, 연인에게, 친구들에게 사랑받고 존중받는 사람이었던 저 역시 ‘더러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10년 지기 친구에게 임신을 털어놨습니다.

“야 그건 좀…미혼모는 사회 최하층 사람들이잖아.” 아기를 낳은 뒤 연락이 끊겼습니다.

친구뿐이 아닙니다. 얼마 전 희찬이의 발달이 약간 늦어 병원에 검진을 갔을 때 받은 눈빛.
“사실 제가 미혼모라, 애기가 아빠랑 놀아본 적이 없거든요…”
고개를 한 번도 들지 않고 타이핑을 치던 레지던트가 그 순간 절 쳐다봤습니다. 그 눈빛은 제가 이 사회에서 어떤 존재인지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게 무서워지자 집에 처박혀있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자려고 누워 있으면 숨이 막히면서 땀이 뻘뻘 납니다. 사실 저는 저와 희찬이 모두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희찬이가 태어나던 그 순간부터 저희 모자는 어딘지 모르게 가깝게 하기 싫은, 불결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와 제 아이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집에 갇혔습니다.


○ “태아는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로 독자적 생존능력이 있다”

존경하는 재판관님. 2012년 낙태가 죄라고 결정 내려졌던 그 때 제 아이는 아홉 살이었습니다. 재판관께서는 “뱃속의 아기가 살기 위해서는 엄마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엄마와는 별개로 생존 능력이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낙태는 죄”라고 하셨죠. 하지만 제 아이는 태어났을 뿐, 태어난 뒤 9년 동안 아이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 써 주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아빠도요.

아이 아빠는 번듯한 직장에 집안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할머니 손에 자란 시골 여자인 저와 결혼할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을 겁니다. 그는 만삭이 될 때까지 “낙태하면 너를 다시 만나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손 벌리지 않을게. 아이 데리고 앞에 나타나지도 않을게” 빌고 나서야 아이를 낳을 수 있었습니다. 출산하던 날에도 제 옆에 아이 아빠는 없었습니다.

아이가 여섯 살이 될 때까지 비혼모 시설을 전전했습니다. 제가 받은 돈은 기초수급비 32만 원 뿐. 아이를 위한 지원은 하나도 받지 못했습니다. 분유와 기저귀 물티슈 같은 아기 용품을 사고 나면 손에는 한 푼도 남지 않는 날이 많았습니다. 서울에는 친척이나 친구도 없어서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이가 일곱 살 때는 일하던 공방에 돗자리와 이불을 깔아놓고 몰래 살았던 적도 있습니다. 불을 켜면 주인에게 들킬까 촛불을 켜고 책을 읽어줬습니다. 아이의 시력이 나쁜 게 그 탓인가 아직도 자책합니다. 아이는 태어나기만 했을 뿐, 열세 살이 된 지금까지 저와 떨어져서 한 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저를 도와줄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이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번호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재판관님, 저는 홀로 아이 낳은 걸 후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견딘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낙태를 결정하는 여성들에게 손가락질 할 수 없습니다. 12주 된 태아의 생명은 소중히 여기라고 하지만 세상에 나온 제 아들의 삶은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아빠가 없다는 사실에 이불 속에서 눈물지으며, 넉넉하지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생명이 그렇게 소중하다면, 그렇게 태어난 제 아이의 삶은 왜 아무도 신경 써 주지 않는 것인가요? 그리고 저는 왜 이 아픔을 엄마라는 이유로 혼자 겪어야 하나요?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낙태죄로 인해 과도하게 제한되지 않는다.”

재판관께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낙태죄로 인해 과도하게 제한되고 있지는 않다’면서 낙태를 허용해선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겨울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저는 그 어떤 것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철저히 ‘자기결정권’을 포기 당했습니다.

유진(가명·4개월)이를 낳은 건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눈을 찡긋하며 작은 손으로 제 손을 포갤 때가 숨통이 트이는 유일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은요? 일에 대한 성공도 행복한 결혼생활에 대한 희망도 어그러졌습니다.

의류회사에서 원단 고르는 일을 했습니다. 승진을 앞두고 ‘임신 3주차’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3년가량 만난 그 남자와는 결혼까지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임신한 저를 침대에서 밀어 떨어뜨리고 면전에서 담배를 피워댔습니다. 전부터 폭언은 있었는데 그게 폭력으로 이어진 겁니다. 오만 정이 다 떨어진 저는 “아이는 지울 테니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남자가 아이를 지우면 낙태죄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하더군요. 그러더니 “앞으로 만나는 남자마다 찾아가서 알릴 거다. 가장 비싼 변호사를 사서 널 괴롭힐 거다”라고 했습니다.

배는 점점 불러왔습니다. 5개월이 지나자 아이에겐 팔, 다리가 자라있었습니다. 수술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그 남자와 살거나 혼자 키워야 합니다. 어느 쪽이나 지옥 같았습니다. 그럴 바엔 죽어야겠다고 생각해 뛰어내리거나 목을 매려고도 했습니다.

회사에서는 민폐 끼치기 일쑤였습니다. 업무 집중도 안 되고 애꿎은 후배에게 화풀이도 했습니다. 임신 사실을 알려 출산 휴가를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사표를 냈습니다. 1년 넘게 입사를 준비했던 첫 직장이었습니다.

출산이 임박하자 남자는 태도를 바꿨습니다. “낳든지 죽이든지 네 맘대로 해라.” “애 핑계로 내 발목 잡을 셈이냐.” 저를 ‘꽃뱀’ 취급했습니다. 결국 비혼모 단체의 도움을 받아 홀로 유진이를 낳았습니다.

출산 후 체중은 24kg이 늘고 부분 탈모까지 왔습니다. 젖 먹이느라 가슴은 처졌고 피부는 푸석해지고 기미가 올라옵니다. 열 달간 엄마가 될 몸과 마음의 준비를 못했기에 급격한 신체 변화에 우울증까지 왔습니다.

재판관님, 아이를 낳고 4개월이 흘렀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저와 제 딸은 수급비 70만 원, 양육수당 15만 원으로 살아야 하는 극빈층입니다. 아이가 36개월이 넘으면 식비 지원이 끊긴다고 하더군요. 결혼도 안 하고 아이만 낳은 저를 받아주는 회사가 있을까요? 재판관님, 제가 꿈꾸던 인생은 이런 게 아니었습니다.


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김예윤기자 yeah@donga.com

최지선기자 aurinko@do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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