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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 위안부 비극 접한 10대들 “너무 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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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 위안부 비극 접한 10대들 “너무 화나요”

권기범 기자 입력 2018-09-13 03:00수정 2018-09-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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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역 모범고교생 32명 중국내 독립운동 현장 탐방
‘2018 SH 모범학생 해외탐방’에 참석한 고교생들이 4일 중국 상하이시 황푸(黃浦)구에 있는 임시정부 청사 앞에서 당시의 상황을 역사 강사로부터 듣고 있다. SH공사 제공
6일 오전 10시경 중국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시의 ‘리지샹(利濟巷) 위안소 유적 진열관’. 6개 전시관 중 B동 1층 로비에 한국 고교생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10분 전까지 서로 재잘대며 한껏 밝았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한 남학생이 영어로 돼 있는 설명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일본군들이 설명을 듣고, 표를 받았던 곳….”

일본군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운영했던 위안소 실태를 재현해둔 곳이었다. 오른쪽에는 사무원이 앉았던 것으로 보이는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뒤쪽 벽에는 일본어로 운영 시간 등이 적혀 있었다. 맞은편 벽에는 ‘富子’(도미코) ‘秋子’(아키코) 등 일본식 이름이 적힌 나무 명패 13개가 걸려 있었다.


안내문은 이곳을 ‘매표소(Ticket office)’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끔찍한 장소를 ‘위안소(comfort stations)’라고 부르고 쓴 일본군에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몇 명은 울먹였다. 선물을 사려고 가져왔던 돈을 자발적으로 기부함에 넣은 학생들도 보였다. 김어진 양(18)은 “웃고 있는 일본군의 사진을 진열관에서 보니 화가 치밀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돌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찾은 리지샹 위안소는 1930년대 중반 일반 건물로 지어졌다. 연면적 3000m² 규모다. 2차대전 때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위안소로 사용했다. 일본군이 2차대전 당시 아시아 곳곳에 세운 위안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형태가 온전한 곳으로 꼽힌다. 진열관에는 당시 사용됐던 서랍장, 욕조 등이 남아 있다.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도 관련이 깊다. 2차대전 이후 폐허처럼 방치되던 이곳이 위안소로 운영됐었다는 사실을 처음 증언한 사람이 2006년 작고한 북한의 박영심 할머니다. 이곳에는 박 할머니의 참혹했던 피해상을 그린 동상도 세워져 있다. 한국의 위안부 피해 내용을 담은 전시물도 많다.

이들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선발한 ‘2018 SH 모범학생 해외탐방’ 대원들이다. 서울지역 고교생 32명으로 구성된 탐방단은 4일부터 4일간 중국 상하이(上海) 쑤저우(蘇州) 등을 돌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내 위안부 피해자 관련 유적 등을 돌아봤다. SH공사가 주관하고 우리은행, 서울의료원 등이 후원했다.

4일에는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훙커우(虹口) 공원(현 루쉰 공원) 내 윤봉길 의사 기념관(매헌기념관)을 찾아 독립운동의 역사를 뒤돌아봤다. 서효림 양(18)은 “작은 건물과 좁은 방으로 된 임시정부 청사를 돌아보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김구 선생 같은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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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단 사전 설명회에 참석했던 김세용 SH공사 사장은 “학생들이 중국 속 대한민국의 역사를 직접 체험해 가슴에 새기고, 더 큰 꿈을 향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난징·상하이=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2018 sh 모범학생 해외탐방#난징#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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