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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의 외주화’ 막아 산재 후진국 오명 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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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의 외주화’ 막아 산재 후진국 오명 씻는다

유성열기자 입력 2017-08-18 03:00수정 2017-08-1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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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 위험작업 도급 전면금지 20대 A 씨는 지난해 휴대전화 하청업체에서 일하다가 메탄올에 중독돼 시력을 잃었다. 메탄올은 장시간 노출 시 신경계가 손상돼 보안경 등 안전장비를 꼭 착용해야 한다. 수시로 환기도 해야 한다. 하지만 A 씨는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채 목장갑만 끼고 공정에 투입됐다. 심지어 작업 물질이 메탄올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메탄올보다 안전한 에탄올을 써도 되지만 업주는 단가가 싼 메탄올만 고집했다. 수도권 일대 공장에서 이렇게 시력을 잃은 근로자만 10여 명. 검찰이 업주들을 기소했지만 대부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특히 하청을 맡긴 원청업체들은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다.

정부가 17일 내놓은 ‘중대 산업재해 예방 대책’은 A 씨처럼 산재에 무방비로 노출된 하청 근로자들을 보호하고, 원청업체의 책임과 처벌(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의 벌금형)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영이 열악한 하청업체만 처벌하지 않고, 작업을 맡긴 원청도 똑같이 처벌해 사고 발생 자체를 예방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다.

정부는 지난해 5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보수 작업 사망 사건 이후 원청업체의 감독 의무를 강화하는 방안을 잇달아 내놨다. 그러나 조선업과 건설업을 중심으로 ‘하청 산재’가 끊이지 않자 원청업체에 직접 사고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마지막 칼’을 빼 들었다. 국내 전체 산재 사망자 수는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지난해 산재 사망 근로자 중 하청업체 소속 비율이 42.5%에 이를 정도로 ‘위험 업무의 외주화’가 심각하다. 하청의 재하청이 만연한 조선업과 건설업에선 최근 3년간 산재 사망자의 90%가량이 하청업체 소속이다. 특히 수은 제련(광석으로부터 금속을 추출하는 공정)이나 중금속 취급 등 위험성이 높은 14개 작업은 아예 도급을 금지했다. 이런 공정은 원청업체가 직접 진행하고 충분히 안전 조치를 취해야 산재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대책에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배달대행 근로자들과 퀵서비스 기사들을 위한 보호 방안도 처음으로 포함됐다. 이들은 그동안 일종의 자영업자로 인정돼 사업주에게 안전 보호 의무가 없었지만 앞으로는 사업주가 헬멧 등의 보호구를 꼭 지급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정부는 고객의 폭언 등 ‘갑질’에 시달리는 감정노동자들의 ‘정신 건강’을 보호하는 법안도 처음으로 만들 방침이다. 김왕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여야 의견 차가 없어 올해 안에 입법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영세 자영업자와 가전제품 설치·수리 기사는 올해 하반기와 내년부터 각각 산재보험이 적용된다.

김영주 고용부 장관은 이날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하면 제도와 관행 문제까지 규명하는 조사위원회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부와 검경의 수사와는 별도로 전문가와 업계 종사자, 일반 국민까지 참여하는 외부 위원회를 만들어 사회 구조적 문제를 규명하고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과학적인 원인 규명이 중요한 산재 사고를 비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위원회가 조사하는 데 대해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고 원인 조사는 수사기관이 하되 제도 개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는 뜻”이라며 “원전(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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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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