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분노조절장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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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2001년 개봉한 영화 ‘친구’에서 교사가 고교생 주인공 동수와 준석을 패면서 던진 질문이다. 동수 부친은 장의사이고 준석 아버지는 전직 조폭 보스. 둘 다 선뜻 입 밖으로 꺼내지 않자 돌아온 무차별 매질. 동수는 순순히 받아들이지만 준석은 넘어진 채로 발길질까지 당하자 벌떡 일어나 교사와 한판 붙으려고 한다. 학생들에게 화풀이하듯 마구 주먹질하는 교사와 그래도 마지막엔 꾹 참는 준석. 누가 분노조절장애인지는 답이 나와 있다.

▷화를 참지 못하는 것은 생물학적 요인 탓일 수도, 사회생활하면서 겪는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나 불만 탓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 결과는 예상하지 못한 범죄일 때가 있다. ‘묻지 마 범죄’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이 2003년 무렵이었다. 2014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범죄자 총 174만여 명 중 우발적 범죄자가 15.5%(27만여 명)로 가장 많았다. 2009년 이후 해마다 분노범죄 발생건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경찰은 우려한다.

▷인터넷 수리기사 피살이나 외벽 도색작업자의 밧줄을 끊은 천인공노할 범죄, 지도교수를 상대로 한 사제폭탄 테러 등 최근 연이어 발생한 사건들은 모두 분노조절장애 범죄로 분류할 수 있다. 친절을 강조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늘어나면서 감정노동에 시달리다 끝내 폭발하는 사례들도 종종 일어난다. 피해자들은 대체로 사회적 약자이자 어려운 집안의 가장들이다. 강자가 여성 노약자 어린이 등 만만한 상대에게 해코지를 한다.

▷2013년 충북 청주에서 전 복싱 국가대표 선수가 ‘주먹이 운다’ 이벤트를 시작했다. 누구든 1만 원을 내면 왕년의 복싱선수를 마음껏 때릴 수 있었다. 흥부처럼 매품을 판 것이다. 수익금은 주변의 불우이웃을 돕는 데 썼다. 화도 풀고 남도 돕는 일석이조의 기획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회성 행사로는 분노지수를 낮출 수 없다. 분노를 촉발하는 불합리한 사회구조는 정치가 개선해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은 서로 싸우기에 바빠 국민의 분노를 달래줄 겨를이 없다. 화가 난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분노조절장애#화#우발적 범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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