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느리다며 살해… 다섯식구 50대 家長 어이없는 참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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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밧줄 절단’ 이어 충주서 50대 원룸주인 또 ‘버럭 살인’

“얼마나 착하고 명랑한지, 처갓집 오면 마을 사람들이 전부 ‘우리 사위 왔네’라고 할 정도였는데….”

김모 씨(57)는 말을 잇지 못했다. ‘형님’을 부르며 늘 환하게 웃던 매제의 얼굴이 떠올라서다. 김 씨의 매제 이모 씨(53)는 16일 평소처럼 인터넷 수리를 위해 고객의 집을 찾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인터넷이 느리다’며 불만을 품은 고객이 그에게 무차별 흉기를 휘두른 것이다. 이 씨는 팔순 노모와 아내, 슬하의 남매에게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 누구보다 성실한 ‘마을 사위’의 죽음

“팔순 노모와 아내, 남매를 위해 그저 평생 열심히 살던 매제였는데….”

김 씨는 18일 “날벼락이라는 말을 실감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숨진 이 씨는 7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이 씨 어머니는 갖은 고생을 하며 2남 2녀를 모두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켰다. 장남인 이 씨는 졸업 후 통신회사에 입사했다. 2003년 20년간 몸담았던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했지만 평소의 성실함과 타고난 영업 능력 등을 인정받아 자회사 직원으로 재취업해 인터넷 설치기사로 일했다.

김 씨는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받던 월급의 반도 안 되는 수준이었지만 아내와 대학에 다니는 두 자녀를 위해 주말인 토요일에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고 말했다. 이 씨 아내도 대학에 다니는 남매의 등록금에 보태기 위해 작은 전자회사에 취직해 시간제로 일을 했다.

충북 충주시의 아파트에 사는 이 씨는 84세의 노모를 모시고 싶었지만 도시 생활을 꺼리는 어머니를 위해 멀지 않은 수안보에 집을 마련해 어머니를 모셨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고인은 수시로 다리가 아픈 어머니를 찾아 상태를 체크하고 돌봤다. 또 회사에서 포상금을 받으면 처갓집을 찾아 동네 사람들에게 자주 식사를 대접해 ‘마을 사위’로 인정받을 정도였다.

이 씨의 노모는 장남의 사망 소식을 듣고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교통사고를 당했거나 암에 걸려 세상을 등져도 슬픔이 클 텐데, 이렇게 허망하게 매제가 세상을 떠나 사돈 어르신과 여동생, 두 조카 모두 큰 충격을 받은 상태”라며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걱정”이라며 울먹였다.


○ ‘욱’하는 감정 참지 못하고

이 씨가 A 씨(55)의 집을 찾은 건 16일 오전 11시 7분경. 충주시의 한 원룸이었다. A 씨는 “왜 이렇게 인터넷 속도가 느리고 자꾸 끊기냐”며 화를 냈다. 이 씨가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A 씨는 계속 화를 냈다. “갑질하려고 그러냐”며 이 씨에게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집에 있던 흉기를 들어 이 씨의 복부 등을 수차례 찔렀다. 경찰 관계자는 “A 씨는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 회사가 자신에게만 일부러 속도를 느리게 제공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이날 분을 이기지 못하고 이 씨를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욱하는 감정을 참지 못해 벌어진 사건은 이뿐만 아니다. 이달 초 경남 양산시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일이 대표적이다. 주민 서모 씨(41)는 아파트 13층 높이에서 밧줄에 매달려 보수작업을 하던 김모 씨(46)의 밧줄을 “시끄럽다”는 이유로 끊어 숨지게 했다. 김 씨의 아내와 자녀 5명은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스스로 충동을 제어하지 못해 치료를 받는 충동조절장애 환자는 2009년 3720명에서 2014년 5544명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 / 충주=장기우 / 신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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