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이 돈 굴려준다” 미끼로… 농아인 행복 짓밟은 ‘행복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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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추적]농아인 550명 상대 280억 다단계 사기극의 전말

지난달 9일 경남 창원중부경찰서에서 농아인 대상 다단계 투자 사기 조직인 ‘행복팀’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날 경찰서 앞에서는 피해자와 관련 단체 회원들이 모여 행복팀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행복팀 사건의 피해자는 드러난 것만 550여 명이고 금액은 280억 원에 이른다. 경찰은 추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지금도 수사를 진행 중이다. 동아일보DB
지난달 9일 경남 창원중부경찰서에서 농아인 대상 다단계 투자 사기 조직인 ‘행복팀’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날 경찰서 앞에서는 피해자와 관련 단체 회원들이 모여 행복팀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행복팀 사건의 피해자는 드러난 것만 550여 명이고 금액은 280억 원에 이른다. 경찰은 추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지금도 수사를 진행 중이다. 동아일보DB
아내가 변했다.

2015년 가을 무렵. 휴대전화로 영상통화를 하는 아내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아내는 액정 속 상대방에게 수화(手話)로 말을 건넸다. 나와 아내는 농아인. 말을 할 줄 아는 나와 달리 아내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언제부턴가 친구를 만난다며 외출했던 아내의 귀가 시간이 자꾸 늦어졌다. 처음엔 외도를 의심했다. 영상통화를 그만하라고, 바깥 외출을 줄이라고 말했다. 아내는 외도가 아니라며 펄펄 뛰었다. 그리고 털어놨다. ‘행복팀’이라고…. 우리 같은 농아인에게 행복의 빛을 내려주기 위해 존재하는 팀이라고 했다.

“우리가 사람답게 살 수 있으려면 행복팀에 우리의 정성을 쏟아야 한다.”

아내는 열정적으로 말했다. 자신이 팀장이라며 내게 가입을 권유했다. 3시간 가까이 소리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2013년 4월 아내에게 친하게 지내던 학교 후배 김동명(가명)이 찾아왔다. 김 씨는 “돈이 필요하다. 도와주면 2배로 갚겠다”고 말했다. 몇 개월간 이어진 부탁과 거절의 반복. “같은 농아인끼리 한 번만 도와 달라”는 김 씨의 말에 아내가 무너졌다. 거부할 수 없는 주문(呪文)이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같은 농아인’끼리 도와야 하는 건 불문율이었다.

아내는 김 씨에게 250만 원을 건넸다. 현금이 없어 급한 대로 신용카드 대출을 받았다. 아내는 한 번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 찾아왔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돈을 빌려 달라”고 사정했다. 모르는 사람과 함께 오기도 했다. 한경주(가명·여)라고 했다.

“94세 재벌 회장님이 행복팀에 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공장을 지으려 한다. 농아인들이 주인인 곳이다. 지금 돈을 드리면 나중에 그곳에 취직할 수도, 돈도 2배로 받을 수 있다. 지금 하는 일도 더 번창할 수 있다.”

한 씨와 수화를 하며 아내는 행복팀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다. 한 씨는 전국 행복팀의 총괄대표였다. 돈을 주지 않으면 경남 지역에서 행복팀이 자립할 수 없다고 했다. 행복팀이 없으면 농아인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 뒤 한 씨는 “엄마 오리처럼 새끼 오리들을 보호해 달라”며 아내에게 팀장 자리를 제안했다.

2014년 8월. 아내는 10명의 팀원을 이끌고 있었다. 주 업무는 팀원을 모으고 그들로부터 대출금을 걷어 지역대표에게 건네는 것이었다. 한 씨 밑으로 4명의 지역대표가 있고 아내는 그 밑에 있는 ‘지역팀장’이었다. 각 팀에는 적게는 100여 명, 많게는 150여 명이 있다.

팀원들은 너나없이 대출을 받아 아내의 계좌로 돈을 보냈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사채를 끌어다 낸 사람도 있었다. 적게는 2000만 원, 많게는 2억5000만 원 정도가 한 번에 입금됐다. 아내는 그 돈을 현금으로 인출해 ‘행복팀’ 로고가 박힌 종이상자에 담아 지역대표에게 건넸다. 그 뒤로 돈의 행방은 알 수가 없었지만 아내는 ‘재벌 회장이 우리를 위해 차곡차곡 모으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이야기가 끝난 뒤 아내에게 돈을 얼마나 갖다 줬는지 물었다. 5000만 원. “돈 포기하고 그만하자”고 말했다. 아내는 완강했다. 오히려 “부부가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대체 행복팀이 뭐길래….’

궁금했다. 아내를 이해하기 위해 행복팀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2015년 가을 아내와 함께 한 씨를 만났다. 행복팀에 들어오려면 ‘세금’(대출을 받아 납입하는 돈)이 필요하다는 말에 주택담보대출 1억5000만 원을 받아 한 씨에게 건넸다. 아내가 팀장이니 언제든 돌려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행복팀에 들어간 뒤 그들이 어떤 말로 사람을 설득하는지, 어떻게 돈을 받아내는지 살폈다. 그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교육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서울이나 대전 등에서 만나 직접 교육도 했다. 행복팀은 A∼D등급으로 회원을 구분했다. 2000만 원 이상을 내야 C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D등급 회원에게는 재벌 회장이 만든 행복팀 공장에 갈 수 없다는 질책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4월 나는 행복팀에서 나오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낸 돈을 돌려 달라고 말했다. 그들은 차일피일 미뤘다. 같은 해 9월 나는 행복팀 사람들을 사기죄로 고소했다. 그제야 그들은 내 돈을 돌려줬다.

돈을 받은 다음 날 아내가 이혼하자고 했다.

나는 “왜 나와 이혼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당신처럼 믿음이 없는 사람과 더는 함께 살 수 없다”고 했다. 결혼 20년 만에 처음으로 아내에게 손찌검을 했다. 아내가 울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았다. 가출했고 행복팀 사람들과 생활했다. 일주일 뒤 찾아온 아내는 나에게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나는 아내에게 “도대체 왜 행복팀에 들어갔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우리 가족 다 같이 잘 살고 싶어서다. 당신이 더는 공장에서 힘들게 돈 안 벌고, 나도 다시 일 잘되고. 현실에서 농아인이라고 무시받지 않으며 살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아내에게 “지금 우리가 헤어지면 그 모든 게 아예 무너진다”고 했다.

뒤늦게 사정을 알게 된 처가 식구들의 도움을 받아 아내를 억지로 처제 집에 보냈다. 장모는 아내의 휴대전화를 변기에 버리고 외출을 막았다. 처제 집에서 아내는 행복팀으로 돌아갈 궁리만 했다. 하지만 행복팀은 아내를 버렸다.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아내를 고소했다. 그들이 주장한 횡령액은 16억 원. 아내가 ‘아파트를 산다’, ‘커피숍을 차린다’며 가져간 돈이라고 했다. 아내는 배신감에 좌절했다.

올해 초 아내는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이 행복팀 수사를 시작하면서 사기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아내는 큰 충격에 빠졌다. 94세 재벌 회장의 정체는 44세의 농아인 세신사 김모 씨였다. 김 씨와 동거인으로 알려진 여성 등 3명이 행복팀의 총책이었다. 농아인 수백 명이 그들에게 속았다. 당시 경찰이 추산한 피해자는 550여 명, 금액은 280억 원에 이른다.

경찰서를 나오던 날 아내는 내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헛된 행복을 바랐던 후회의 눈물이었다.

경남 창원중부경찰서는 올해 초 농아인 대상 다단계 투자 사기 사건, 이른바 ‘행복팀’ 사건의 총책과 총괄·지역대표 등 9명을 구속했다. 14일과 21일 창원지법에서 진행된 공판에서 총책과 대표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경찰은 최근 지역팀장과 농아인협회 지부장 등 27명을 추가로 입건했다.

하지만 지금도 사기 행위가 계속 진행 중이라고 한다. 행복팀 피해자를 돕고 있는 박영진 씨(40·여)는 농아인 범법자 처벌이 약하고 농아인 대출이 의외로 쉽게 이뤄지는 점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도 1000여 명, 피해 금액도 500억여 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행복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창원=김동혁 기자 hack@donga.com
#농아인#행복팀#농아인 사기#농아인 다단계 투자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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