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대학병원이 보상받기 가장 힘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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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거부율 71%… 동네의원 1.3배
민사소송 외엔 해결할 방법 없어… “분쟁조정 참여 의무화해야” 지적

“주사 한 대 맞고 살이 썩었는데, 보상은 둘째 치고 분쟁 조정도 안 받아주는 게 말이 됩니까.”

처음엔 단순한 ‘멍’ 자국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1시간이 지나자 손바닥만 한 홍반이 생겼다. 의료진은 “엉덩이 주사 맞으면 원래 그래요. 문지르면 괜찮아질 겁니다”라고만 했다. 4월 서울의 A대학병원에서 근육주사를 맞은 20대 여성 권모 씨는 불안했다. 한 달 뒤 권 씨는 다른 병원에서 엉덩이 근육 괴사가 진행된 사실을 알게 됐다. 부작용이 생겼을 때 초음파 검사만 했다면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왼쪽 엉덩이의 3분의 1가량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권 씨는 6월부터 A대학병원을 수차례 찾아갔지만 담당 의사조차 만나지 못했다. 원무과장은 “우리 잘못이 아니다”며 버텼다. 마지막 수단으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중재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했지만 병원이 거부해 석 달이 넘게 조정을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검찰 조사 결과 고 신해철의 사인이 ‘의료인 과실’로 밝혀졌다. 하지만 권 씨처럼 일반인들이 의료사고를 당했을 때 해결의 벽은 너무나 높다. 특히 의료서비스가 우수한 대형 종합병원에서 의료사고를 당했을 때 오히려 보상을 받기가 더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중재원에 따르면 2012년부터 올해 7월까지 국내 상급종합병원(43개 대학병원)의 의료사고 중재 거부율은 71.5%에 이르렀다. 이는 동네의원(54.2%)의 1.3배, 병원급(30병상 이상·46.9%)의 1.5배에 이르는 수치다. 이에 관련법을 개정해 중재원에 의료분쟁 조정이 접수됐을 경우 의료기관이 의무적으로 출석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료사고는 점차 늘고 있는데, 일반 국민은 중재원에서조차 중재를 거부당하면 민사소송 이외엔 사실상 호소할 곳이 없다”며 “국가기관에 분쟁조정이 신청됐을 경우 병원이 의무적으로 참가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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