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뼈 통증에도 비상문 열고 “침착하라”… 50여명 살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아시아나기 美서 착륙사고]美방송이 소개한 ‘영웅 승객’ 레비

동승한 승객들의 탈출을 도운 벤저민 레비 씨가 병원 치료 도중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미소 짓고 있다. WSB-TV 페이스북 화면 캡처
동승한 승객들의 탈출을 도운 벤저민 레비 씨가 병원 치료 도중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미소 짓고 있다. WSB-TV 페이스북 화면 캡처
아시아나항공 214편 보잉777 여객기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하기 직전에 사업가 벤저민 레비 씨(39)는 한국 영화 ‘반창꼬’(2012년)를 보고 있었다. 이 영화는 매일 목숨을 내놓고 사고 현장에 뛰어들지만 정작 자신의 아내는 구하지 못한 소방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업차 한국 출장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비행기가 착륙하기 직전 눈길을 창밖으로 돌린 레비 씨는 이상한 기운을 직감했다. 그가 탄 비행기의 바퀴가 땅에 닿지 않는 듯 동체가 너무 낮고 빠르게 하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곧이어 쿵 하고 비행기가 땅에 세게 충돌했다. 바로 옆에 앉은 남성이 머리를 의자에 세차게 부딪치고 주변 승객들이 갑작스러운 충격에 고통을 호소했다. 비행기 안은 비명 소리가 가득했고 혼돈 그 자체였다.

레비 씨는 영화 속 소방대원처럼 구조대원을 자처했다. 마침 그가 앉은 자리 ‘30K’는 비행기 오른쪽 날개 부분 바로 뒤편 좌석. 갈비뼈가 부러진 듯한 통증을 느꼈지만 그는 차분히 일어나 비상문 레버를 잡아당겼다. 문은 열렸지만 비상 탈출하는 슬라이드가 작동하지 않았다. 문밖에는 비행기 날개 파편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레비 씨는 승객들이 비행기 밖 파편들을 잘 딛고 내릴 수 있도록 도왔다.

승객들은 앞 사람이 밖으로 무사히 나갈 수 있도록 뒤에서 서로를 밀어줬다. 레비 씨는 탈출하는 승객들을 향해 “짐은 걱정하지 말고 어서 내리라”고 소리쳤다. 그는 동요하는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질서 정연하면서도 신속하게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왔다. 레비 씨는 그렇게 승객 50여 명을 밖으로 무사히 내보냈다. 레비 씨의 침착한 안내로 화재의 불꽃과 연기가 덮치기 몇 분 전에 탑승객들은 빠르게 대피할 수 있었다. 승객들이 빠져나가고, 그도 사고 현장을 탈출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레비 씨의 이야기는 조지아 주 애틀랜타 지역방송 WSB-TV의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소개됐다. WSB-TV는 “전직 WSB-TV 직원의 친구인 레비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레비 씨가 병원에서 치료받는 모습을 공개했다. 레비 씨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현재 정밀 검사를 받기 위해 컴퓨터단층(CT) 촬영을 기다리고 있다”며 “이번 사고 여객기에 탑승한 승객과 가족들이 걱정된다”고 글을 남겼다. 누리꾼들은 “당신의 용기에 감사하다” “빨리 회복되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검사 결과 레비 씨의 갈비뼈는 무사했으며 곧 퇴원했다. 레비 씨는 “한국에 함께 갔던 아내는 아이들 때문에 먼저 샌프란시스코에 왔다”며 “아내가 이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채널A 영상]갈비뼈 부러지고도…한 미국인이 50명 탈출 도와
[채널A 영상]“연기 내뿜으며 질주” 여객기 사고 당시 영상 공개
[채널A 영상]7월 7일-보잉 777기-한국인 77명… ‘777 괴담’ 빠르게 퍼져


#아시아나항공#샌프란시스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