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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두근두근 메트로]① 종로구 부암동 카페촌

동아일보

입력 2013-01-18 03:00:00 수정 2013-01-18 15:47:51

골목마다 원두향… 서울속 숨은 읍내 ‘커피 무릉도원’

시간이 멈춘 동네 부암동의 오래된 단층건물 사이사이에는 주인장의 철학과 개성을 담은 커피 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다. ‘바느질 카페’인 카페 스탐티쉬 주변 풍경.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서울 한복판인 광화문에서 버스를 탄 지 10분 남짓. 버스는 종로구 효자동을 지나 북악산 자락의 자하문 고개를 타고 오르더니 도심이 지척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호젓한 마을에 기자를 내려놓았다. 종로구 부암동. 청와대 뒷산에 위치해 개발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않은 동네는 정갈한 시골 읍내처럼 평화롭다.

부암동주민센터 앞 정류장에서 자하문 고개로 이어지는 2차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옷 마춤’이라고 얼기설기 붙여 놓은 옷 수선 가게, 간판을 단 지 30년은 훌쩍 넘은 듯한 세탁소, 빛바랜 기와를 얹은 집…. 오래전 시간이 멈춘 듯한 단층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그 사이로 들어선 ‘새것’ 같은 커피 가게들은 그래서 더 눈에 띈다. 2007년 부암동은 그해 방영된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주요 촬영지로 널리 알려지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커피 전문가들은 서울이 숨겨놓은 소박하고 느린 풍광에 반해 하나둘 가게를 내기 시작했다. 세월이 지나 커피 가게는 이제 10여 개. 가게는 주인의 개성과 고집을 담은 듯 저마다 독특한 모습으로 세월의 흔적 사이에 자리 잡았다.

부암동주민센터에서 자하문 터널 입구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면 서울미술관이 나온다. 그 안에는 ‘드롭 오가닉 커피’가 있다. 서울 같지 않은 부암동의 매력에 푹 빠져 6년째 이 동네에서 커피를 만들고 있는 바리스타 김태균 씨가 주인장이다. 주방에서는 바리스타들이 코스타리카 에티오피아 과테말라 등 10여 개국의 다양한 농장에서 온 원두를 즉석에서 갈아 뜨거운 물을 흘리는 방식으로 드립 커피를 만들어 내느라 분주하다.

커피 문외한인 기자가 원두 맛의 차이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걱정은 금방 사라졌다. 이날 마셔본 에티오피아 시다모 드립 커피는 달콤한 맛과 쓴맛, 신맛,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온갖 맛을 한 모금 안에 모두 담고 있었다. 이 가게에서 바리스타들이 내려 주는 커피는 수입 국가, 농장, 생두를 볶는 방식, 물을 배합하는 양에 따라 끝없이 변주되는 ‘부암동표 커피’다. 강한 쓴맛 하나가 모든 맛을 뒤덮어 버리는 여느 커피와는 달랐다. 김 씨는 “부암동은 속도에 치이지 않는 느린 동네”라며 “규정할 수 없는 맛과 향으로 변주되는 커피를 여유롭게 만들어내고 그 맛을 천천히 음미하는 데 이만한 동네가 없다”라고 했다.

주인장의 인생과 취향이 묻어나는 카페도 지나는 이의 발길을 붙잡는다. 서울미술관에서 나와 입안을 감도는 커피의 여운을 느끼며 다시 부암동주민센터로 올라가는 길. 얼마 가지 않아 20년간 이태원에서 수입 빈티지 가게를 운영하던 주인장이 빈티지 소품과 커피를 결합해 낸 카페 ‘어거스트’를 만났다. 테이블이 놓인 가게 한쪽 공간에 작품처럼 진열된 빈티지 가구, 옷, 소품은 커피 향과 묘하게 어우러진다. 자하문 고개 방향으로 올라와 또 다른 가게에 들어가자 수제 인형, 쿠션 등 천으로 만든 소품들로 가득하다. 카페지만 커피 메뉴는 단출하다. ‘바느질 카페’인 카페 ‘스탐티쉬’. 주인장 박광옥 박민정 씨 부부는 그들이 손수 만든 소품으로 카페를 채우고, 한편에서 이따금씩 바느질 수업을 진행하며 느리게 살고 있다.

스탐티쉬에서 북악산으로 난 길을 따라 20분가량 천천히 걷다 카페 ‘산모퉁이’를 만났다. ‘커피프린스 1호점’의 한성이(이선균)네 집으로 등장했던 곳이다. 전망이 탁 트인 곳에서 바쁘게 돌아가는 도심을 조용히 관망해 보는 것. 도심이 숨겨놓은 힐링 공간, 부암동에서 꼭 한번 해봐야 할 일 중 하나다.

부암동에선 보물처럼 숨겨진 문화 유적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서울미술관 뒤편에는 조선 말 흥선대원군이 별장으로 사용했던 석파정이 있다. 세종대왕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 이용(李瑢) 집터’도 있다.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무릉도원을 본떠 정자를 세우고 선비들과 시를 즐기던 곳이다. 개화기 지식인 윤치호의 아버지인 반계(磻溪) 윤웅렬의 별장도 있다. ‘운수 좋은 날’을 쓴 소설가 현진건의 집터도 남아 있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 큰 업적을 남긴 화가 김환기를 기리는 환기미술관에서는 그의 작품을 비롯해 다양한 미술품을 만날 수 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TIP. 부암동 카페 거리 찾아가는 길: 광화문역 2번 출구에서 초록색 버스 1020, 7212, 7022번 승차. 부암동주민센터 앞 정류장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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