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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ive Report]‘Made in 교도소’ 면도기… 중소기업과 재소자들의 ‘특별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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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ive Report]‘Made in 교도소’ 면도기… 중소기업과 재소자들의 ‘특별한 동행’

동아일보입력 2012-12-14 03:00수정 2012-12-1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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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교육→제품생산 이어지는 의정부교도소 조아스전자 작업장
납땜 조립 하루 8시간… 땀의 소중함을 배워갑니다
7일 의정부교도소의 한 작업장에서 재소자들이 제품을 조립하고 있다. 재소자들은 이곳에서 일하는 즐거움과 보람을 얻으며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한다. 의정부=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 2002년 4월 어느 날. 도심에는 봄이 한창이었지만 이층집 높이의 담장 앞에 서자 한기가 몰려왔다. 먼 산속 나무들도 앙상한 모습이었다. 몸이 떨렸다. 꼭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혼잣말을 했다. “내가 무사히 잘할 수 있을까.” 검문소에서 신분증을 제출하고 휴대전화를 맡겼다. 금속탐지기를 통과하자 등 뒤로 철문이 굳게 닫혔다. 철문 두 개를 더 지났다. 어슬렁거리던 파란 옷 죄수들의 눈빛이 따갑게 꽂혔다. ‘양복 입은 너는 누구냐’고 묻는 듯했다. 교도관에 이끌려 들어선 작업장에선 재소자 대여섯 명이 쭈그리고 앉아 면도기 부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늘은 이들에게 면도기 조립 기술을 설명하는 첫날이다. 》

“낯설었습니다. 사기, 강도, 성폭행 같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라지만 겉으로 보기엔 내가 매일 밥을 같이 먹는 우리 직원들과 다를 바 없었거든요.”

오태준 조아스전자 사장(57)이 처음 접한 의정부교도소 안의 풍경이다.

가슴을 울린 한 통의 편지

조아스전자의 오태준 사장.
2000년대 초반 ‘사장님 귀하’라고 적힌 하얀 편지봉투가 경기 남양주시 조아스전자 본사에 도착했다. 발신인은 의정부교도소의 한 재소자. 3장짜리 편지의 첫 장엔 지우개로 여러 번 지우고 그린 듯한 면도기 분해도가 있었다. 한눈에 봐도 조악했다. ‘이 친구 참 심심했나 보네.’

첫 장을 넘겼다. “면도날을 경사지게 하면 수염이 더 잘 깎일 것 같아요. 가끔 수염이 끼는데요, 모터를 빨리 돌게 하면 괜찮아질 것 같습니다. 스위치를 크게 만들면 조작하기 편할 것 같고요…. 제가 전자회사에서 일을 했거든요. 아직 젊은데 생각이 엉뚱하게 가는 바람에…. 얼른 기술을 배워 취직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오 사장의 가슴속에서 뭔가 움직였다. 신산(辛酸)했던 삶이 떠올랐다. 청량공고(현 경기기계공고)를 졸업한 뒤 삼익피아노, 서울우유 등에서 기술직을 전전했고 마지막으로 다니던 회사의 부도까지 겪은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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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사장은 1995년부터 교도소에 건전지가 들어가는 전기면도기를 납품하고 있었다. 고졸 학력을 만회하려고 다녔던 연세대 경영대학원에서 교정본부의 고위 공무원을 알게 된 인연 덕분이었다. 교정본부는 전국 교도소의 교정 작업장을 관리하는 법무부 산하기관이다.

“날 면도기는 칼날 때문에, 충전식 면도기는 전선 때문에 자살이나 상해의 위험이 있어요. 시중에선 잊혀져 가지만 교도소에선 건전지 면도기가 필수품이라더군요.”

조아스전자는 건전지 면도기 입찰에 참여했고 그해부터 교정본부에 납품을 하기 시작했다. 한 달 매출이 1억 원 정도로 제법 쏠쏠한 사업이었다.

그런 가운데 편지를 받은 것이다. 재소자는 아마 면도기를 쓰다가 이런저런 생각이 나 편지를 보낸 듯싶었다. 마침 얼마 뒤 교정본부에서 완제품 납품만 하지 말고 교도소에서 작업장을 운영해 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이 왔다. 재소자들에게 일하는 기쁨을 알려주고 교도소를 나가면서 단돈 몇십만 원이라도 쥐고 나갈 수 있게 해주자는 취지였다.

2002년 의정부교도소 안에 법무부가 직영하는 면도기 작업장이 설치됐다. 조아스전자가 부품을 납품하고 기술을 가르쳐주면 재소자들이 면도기를 생산한다. 이렇게 생산된 제품은 ‘KPI(Korea Prison Industry)’라는 브랜드를 달고 교도소 매점과 교정본부 인터넷몰(www.corrections.go.kr)에서 1만4900원에 팔렸다. 재소자들이 면도기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오 사장은 “처음엔 교도소 내 작업장이 잘 굴러갈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금세 사라졌다. ‘저런 사람이 진짜 범죄를 저질렀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착실한 이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작업장을 만들면서 조아스전자의 면도기 완제품 납품은 중단됐다. 매출은 한 달 5000만 원 정도로 반 토막 났다. 하지만 그 덕분에 얻은 게 많았다.

재소자들에게 선사하는 ‘제2의 삶’

의정부교도소 3작업장에서 재소자들이 생산한 건전지 면도기. 의정부=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7일 198m² 남짓한 의정부교도소 3작업장에선 황색과 파란색 수의를 입은 재소자 12명이 ‘ㄷ’(디귿)자로 놓인 책상 앞에 앉아 면도기를 만들고 있었다. 황색 수의는 4개 등급 가운데 가장 높은 ‘S1’ 등급으로 죄목이 가장 경미한 재소자나 모범수가 입는다. 파란색 수의는 두 번째 등급인 ‘S2’를 의미한다.

작업장에선 잡담이 금지돼 있다. 다들 묵묵히 손을 놀린다. 틀어놓은 쇼팽의 ‘녹턴’ 선율만 유독 크게 들렸다. “칼날이나 인두 같은 위험한 도구들이 있어 온화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현장에서 만난 이대선 교위는 설명했다.

한 재소자가 조인트에 반지 모양의 부속품을 끼우자 다른 재소자는 모터와 연결했다. 다음 재소자는 본체에 모터를 끼웠다. 다른 쪽에서는 재소자 두 명이 ‘전문가’들만 할 수 있다는 납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전선에 윤활유를 바른 뒤 인두에 납을 묻혀 스위치와 잇는 작업이 능숙하게 진행됐다. 이곳에선 하루에 면도기 200개가 생산된다. 하루 근무시간이 8시간이니 2.4분마다 면도기 한 개가 완성되는 셈이다.

10개월 뒤 출소하는 오정한(가명·40) 씨는 이 작업장에서 1년 6개월간 일을 해 300만 원을 모았다. 노하우가 쌓이면서 작업반장 격인 ‘봉사원’도 맡았다. 그는 경기도에서 술집을 운영하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생활비가 빠듯해지자 강도질을 저질러 6년형을 받았다. 오 씨는 “미래가 막막했지만 작업장에서 일을 하면서 교도소로 돌아오는 일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 일당으로 7000원을 받는다.

이 교위는 “존속살인죄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가 13년 만인 올해 광복절(8월 15일)에 가석방으로 출소한 한 재소자는 작업장에서 일한 돈을 모아 매달 아들에게 10만∼20만 원씩 부치곤 했다”며 “한순간의 잘못으로 교도소에 들어왔지만 작업장에서 일을 하며 가족의 의미와 소중함을 찾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재소자의 도우미가 된 전과자

작년 6월 출소한 정기훈(가명·41) 씨도 의정부교도소 면도기 작업장에서 새 삶을 찾은 사례다. 그는 2006년 30대 여성을 성폭행해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교도소에 들어갈 때 당시 9세이던 딸에게는 돈 벌러 외국에 간다고 했다.

“첫 일주일은 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눈뜨고, 이불 개고, 밥 먹고, 방 청소하고, 신문지 접고, 땅콩이나 까먹고 하는 생활의 연속이었어요. 몇 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는 2007년부터 쇼핑백을 만드는 작업장에서 일당 1300원짜리 일을 하며 조금씩 의지를 되찾았다. 1년간 공부해 2008년에는 금속을 가공해 기계를 만드는 컴퓨터수치제어(CNC) 선반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2009년부터는 면도기 작업장에서 일을 했다. 정 씨는 “면도기 작업장에서 번 돈을 모아 부모님께 90만 원을 부쳤다”며 “속만 썩이다가 처음으로 자식 노릇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정 씨는 현재 교도소에서 주선해 준 경기도의 한 섬유염색 업체에 다니면서 새로운 꿈을 키우고 있다. 월급 180만 원을 모아 임대주택을 얻은 뒤 다시 딸과 함께 사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의정부교도소 재소자들을 상대로 ‘사회복귀 도우미’도 자처했다. 비슷한 처지의 출소자 두 명이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입사한 뒤 한 달도 못 버티고 나가는 걸 보면서 9월 의정부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을 상대로 강의를 했다.

“우리를 취직시키려고 애쓴 교도관들, 우리를 기다려준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독하게 일해야 합니다. 이제야 어둡고 길었던 터널을 빠져나온 셈입니다. 이제 달립시다.”

새 삶 준비하는 2만 명의 재소자들

교도소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교정 작업장은 1908년 근대적인 감옥관제가 실시되면서 함께 시작됐다. 당시 서울 종로감옥에서 수형자들이 짚으로 공예품을 만든 게 시초다. 구금하고 처벌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교화와 개선을 중시하는 패러다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뜻에서 처음 등장했다.

현재 교정본부는 전국 50여 교도소 및 구치소에서 약 360개 작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2만여 명의 재소자가 생산한 공예품, 생활용품, 사무용 가구 등 약 85종의 제품이 KPI 브랜드를 달고 팔린다. 작년 매출은 392억 원. 형기 7년 이하의 수형자들이 오는 의정부교도소는 현재 구내에 7개, 외부에 3개의 작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하루 약 5시간 쇼핑백이나 봉투를 만드는 등 단순노동 작업장에선 재소자들이 일당 1300원을 번다. 조아스전자 작업장처럼 하루 8시간을 일하는 집중근로 작업장에서도 6000∼9800원을 받는 게 고작이다. 작업량에 비해 받는 돈은 얼마 안 된다. 하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이들이 다시 사회에 돌아가기 위한 든든한 디딤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보익 의정부교도소장은 “재소자들이 성공적으로 사회에 복귀하려면 일하는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channelA 교도관, 서신검열 못 한다


의정부=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의정부 교도소#조아스전자#재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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