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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공존을 향해/2부]<4>가난한 노년, 단지 내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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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공존을 향해/2부]<4>가난한 노년, 단지 내 탓인가

동아일보입력 2011-01-20 03:00수정 2011-01-2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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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등바등 살았는데 병든 몸뚱이만 덜렁… 떠난 자식은 남, 남은 자식은 짐
가는 세월 못잡고 오는 세월 무서워
■ 이런 현실- 서울 월계동 세 노인의 넋두리

《서울의 최저기온이 영하 17.8도까지 떨어진 16일에도 노원구 월계1동 김모 씨(72)의 단칸방엔 온기가 없었다. 한 명이 겨우 누울 만한 방, 보일러는 고장 난 지 오래다. 고칠 돈도 없지만 고쳐도 난방비 걱정에 켤 엄두를 못 낸다. 밀린 전기요금 때문에 전기장판은 하루 너덧 차례 잠시 눈을 붙일 때만 30분씩 켜놓을 뿐이다.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서 30개 회원국 중 노인 빈곤율이 45.1%로 가장 높게 나타난 한국. 노인들은 얼마나, 왜 가난한가. 노인 인구가 가장 많다는 노원구 월계1동을 찾았다. 》
○ 이혼 후 가난 늪에… 월 수입 9만원 김할아버지

보증금 없이 월세 17만 원짜리 방에 혼자 사는 김 씨에게 가난의 시작은 이혼이었다. 아내와의 불화로 집도 재산도 그대로 두고 25년 전 몸만 나왔다. 가족이 깨지면서 10년 넘게 우울증을 앓았다. 이혼 후 큰아들은 자신과 의절했고 작은아들과는 가끔 연락이 됐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연락이 없다.

젊었을 땐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었다. 환갑이 넘어서까지 아파트 경비로 근무하며 생활비를 벌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일흔이 넘으면서 경비도 못하게 되니 막막해졌어.” 돈이 없어 신용카드에 의존하다 보니 빚만 1000여만 원. 현재 김 씨의 벌이는 한 달에 9만 원씩 정부에서 주는 기초노령연금뿐이다. 채권자의 압류를 피하려고 다른 사람 명의의 통장으로 돈을 받는다. 고령에 건강이 좋지 않아 일감을 찾기도 힘들다. 목디스크에 허리도 아프고 심장이 좋지 않아 몇 달 전엔 졸도하기도 했다. 치료비가 없어 병원은 엄두도 못 낸다. 월세도 내기 어렵다. 밥은 먹지만 유통기한을 알 수 없는 약과(藥果), 말라비틀어진 귤껍질, 담배꽁초 틈에 놓여 있는 비닐봉지 속 김치가 유일한 반찬이다.

서울 노원구 월계1동 단칸방에 사는 72세의 김모 씨. 영하의 추위에 난방도 되지 않아 김 씨는 낮인데도 두꺼운 잠바를 입고 목장갑을 끼고 있다. 이 작은 방은 먹다 남은 음식과 빈 병, 얻거나 주워온 옷가지,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김 씨는 기초생활보장급여 수급권자가 되면 한 달 수십만 원의 현금과 의료비 지원까지 받을 수 있지만 부양의무자 규정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 실제 소득과 재산은 수급권자 기준에 부합하지만 부양의무자인 두 아들이 돈을 벌기 때문에 수급권자가 되려면 그들과 남남으로 살아왔다는 게 증명돼야 한다. 가족관계를 조사하는 게 싫어서 수급권자 신청을 거부해온 김 씨는 최근 마음을 바꿨다.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 경찰 출신 안할아버지 “16평 집 때문에 지원 못받아”

경찰이었던 안모 씨(70)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가난에 빠져들었다. 지체장애 3급. “퇴직금으로 목돈을 받았는데 반찬가게를 차렸다가 망했어요.” 부인 김모 씨(67)의 하소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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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은 36년 전 150만 원을 주고 산 16평짜리 낡은 주택이 있다. 고정적인 한 달 수입은 부부에게 나오는 기초노령연금 14만4000원, 신장장애를 가진 부인 김 씨의 장애연금 5만 원, 안 씨에게 나오는 차상위장애수당 3만 원이다. 주택을 갖고 있어 정부나 자치단체의 다른 지원은 받지 못한다. 경찰공무원으로 재직했지만 퇴직금을 일시불로 받아 연금 혜택도 없다. 국민연금은 중도 해약했고 다른 노후대책도 없다. 백화점에 다니는 딸(36)이 월급날 주는 30만 원이 전체 수입의 절반을 넘는다.

생활비는 50만 원 정도. 집이 낡아 요즘 같은 겨울엔 난방비만 25만 원가량이다. 전기요금이 한 달 평균 4만 원, 가스요금이 1만5000원, 두 달에 한 번 나오는 수도요금은 1만8000원. 하루 두 갑가량 피우는 안 씨의 담뱃값이 한 달에 7만 원 이상 들어간다. 의료비 지출은 평균 10만 원 이상이다. 부인 김 씨는 2년 전 당뇨 합병증에 따른 백내장 수술을 받았고 지난해 5월부터는 신장투석을 받고 있다. 밥은 거르지 않지만 반찬은 김치와 나물이 단골손님. 어쩌다 생선이 오른다.
○ 빚보증 수억 날리고 손자와 단칸방 생활 김할아버지


초등학교 3학년 손자를 돌보며 사는 김모 씨(67)는 사기를 당하면서 생활수준이 급락했다. 체육대학에서 유도를 전공한 김 씨는 베트남전 참전유공자. 젊어선 자동차정비회사를 경영할 정도로 사업에 성공해 억대의 재산을 모았다. 1980년 초 선배의 채무보증을 섰다가 12억 원의 빚을 떠안았다. 김 씨 명의의 아파트부터 가스충전소까지 모두 압류됐다. 채권자의 빚독촉에 부부 사이는 갈수록 틀어졌고 1995년 이혼했다.

한 달 수입은 25만2000원. 기초생활보장급여로 16만2000원, 기초노령연금으로 9만 원을 받는다. 국민연금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살고 있는 방 한 칸은 잘나가던 시절 자신이 경제적인 도움을 줬던 지인의 딸이 무료로 임대해준 것이다. 일용직 노동자인 아들은 자신에게 손자를 맡길 만큼 형편이 어렵다. 혼자서 아들을 키우는 딸이 이따금 몇만 원씩 송금해준다. 가끔 군대 전우모임에 나가면 잘사는 친구들이 몇만 원씩 모아준다. 그래도 많아야 한 달 총수입이 30여만 원이다.

목디스크와 허리 통증을 앓고 있는 그에겐 의료비가 가장 큰 부담이다. “의료비를 지원받기 때문에 동네병원에 가면 무료지만 건강보험 대상이 안 되는 치료를 받아야 할 때는 돈이 많이 든다. 2주일에 12만 원 넘게 낸 적도 있다”는 말과 함께 한숨이 나온다.
■ 이런 대안- 기초급여 기준도 완화 필요
탁상 복지에 103만명 소외… 발로 뛰는 노인복지 전환을

노인 빈곤과 관련한 정부 대책의 중심엔 기초생활보장급여 문제가 있다. 소득과 재산이 수급권자 수준이지만 급여를 받지 못하는 노인이 103만 명으로 추산되는 상황을 개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해도 부양의무자(자녀와 사위, 며느리)가 일정한 소득이 있으면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극빈층 생활을 벗어나지 못한다. 부양의무자에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남남처럼 살아도 그런 상황을 증명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게 현장 사회복지사들의 얘기다. 여기서 관건은 예산. 예컨대 103만 명을 기초생활보장급여 대상에 포함시키려면 1인당 20만 원씩 지원해도 206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부양의무자 소득기준을 완화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11월 보고서에서 “현재 부양의무자가 수급자(부모)와 부양의무자 각각의 최저생계비를 더한 금액의 130% 이상 벌면 부모의 수급 자격이 제한되는데 그 기준을 150%로 완화하면 6만 명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기준 완화를 제안했다. 필요한 예산은 1938억 원으로 추산했다.

획기적인 체계 개편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시급한 일은 기존의 복지체계를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많다. 복지행정의 최일선에 있는 동 주민센터 사회복지사들이 빈곤층 노인들을 찾아다닐 수 있도록 행정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현장 사회복지사들 상당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복지정책이 늘면서 온종일 행정업무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최근 복지부가 복지행정의 모범사례로 꼽은 노원구의 복지행정 개편이 하나의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노원구는 지난해 10월 구청 직원 수십 명을 동 주민센터에 배치하면서 주민센터의 일부 일반행정직 공무원에게 사회복지 행정업무를 전담시켰다. 노인을 중심으로 복지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라는 취지였다. 월계1동 사회복지사 강준희 씨는 “사회복지사가 현장에 나가지 못하면 움직일 힘이 있어서 주민센터에 찾아오는 분들 외엔 상담할 수 없다”며 “행정체계가 바뀌면서 힘든 어르신들을 만날 시간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퇴직한 뒤 10여 년이 지난 65세가 돼야 정부의 노인복지 혜택을 받기 때문에 그 사이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연금 가입기간 평균소득에 대한 연금액의 수준)이 낮아지면서 개인연금 가입의 필요성도 커진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도입 당시 70%였으나 계속 낮아져 2028년 40%로 내려간다. 최성재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40%까지 낮아지고 퇴직연금 소득대체율을 대략 20∼30%로 본다면 개인연금도 20∼30% 수준은 유지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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