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축산업이 무너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소 - 돼지 10마리 중 1마리꼴 도살, 안동에선 90% ‘희생’… 김포도 74%

지난해 11월까지 국내에서 사육됐던 소와 돼지 10마리 중 1마리는 지금 차가운 땅속에 묻혀 있다. 구제역 때문이다. 9일 구제역으로 인한 도살처분 규모가 국내 전체 사육 규모(1320만여 마리)의 10%에 육박하는 128만 마리로 늘어났다. 이 때문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피해액도 문제지만 국내 축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축산업 기반 무너진 김포와 안동

“이 지역 가축의 70% 이상을 땅에 묻었습니다. 김포의 축산업은 붕괴됐다고 봐야죠….”

9일 경기 김포시 농정유통과 관계자는 “소·돼지를 가장 많이 기르던 월곶면을 중심으로 도살처분이 급증하면서 앞으로 상당 기간 가축을 기를 엄두를 못 낼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날까지 김포에서 구제역으로 도살처분된 우제류는 총 5만9772마리. 이 지역 전체 우제류 7만9811마리의 74%에 해당한다. 지역 축산업의 기반이 송두리째 뽑힌 것이다. 월곶면의 축산농 임모 씨(49)는 “4월에 이어 또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지역 축산업 자체가 사라질 위기다”라며 “평생을 가축과 함께 살아왔는데 앞으로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첫 발생지인 경북 안동시의 한 관계자는 “(축산 기반이) 이미 무너졌다”고 말했다. 안동은 전체 17만4000여 마리의 소·돼지 중 90%가량이 도살처분 대상이다. 권영세 시장은 “지역경제회생단과 축산재건단을 구성하며 몸부림치고 있지만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난감하다”며 “곤두박질치고 있는 안동 농특산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막기 위해 서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구매 촉진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이번 구제역은 한우 사육 규모 1위인 경북, 젖소 1위 경기, 돼지 1위 충남을 덮쳤다. 한우, 젖소, 돼지 사육 규모별 상위 3개 광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구제역에서 비켜나 있는 곳은 전남(한우 2위)이 유일하다. 구제역은 국내 최고의 명품 한우를 생산하는 강원 횡성, 최대 한우 집산지인 경북 경주에서도 발생했다. 축산업계 관계자는 “구제역이 사육 규모가 크고, 대규모 축산농가가 밀집되어 있는 곳에서 연이어 발생했다”며 “앞으로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김포=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안동=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사육1위 경북 경기 충남 덮쳐 “뭘해 먹고살아야할지…” 절망▼

구제역 광풍으로 축산 연계산업도 위기를 맞고 있다. 도내 우제류의 20.8%인 15만513마리가 도살처분된 강원도는 지역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 도내 5곳의 도축장은 구제역 발생 이후 잠정 폐쇄됐다가 설을 앞두고 3곳이 다시 문을 열었지만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도축할 소와 돼지가 없기 때문이다. 도내 도축물량의 75%를 담당하는 강원LPC 측은 “구제역 발생 전에는 하루 평균 소 150여 마리, 돼지 3200여 마리를 도축했지만 지금은 하루에 소 70여 마리 도축하는 게 전부”라며 “손실이 하루 7억∼8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 몇 년 새 성장한 축산업, 원점으로

국내 축산업은 최근 들어 사육 규모가 급격히 증가했다. 2004년 1100여만 마리였던 소·돼지는 지난해 1320만여 마리까지 늘어났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쇠고기 이력제, 미국산 쇠고기 파문 등으로 인해 수입산 대신 국산 돼지와 한우를 찾는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한우는 2004년에 비해 75%가량 늘어났다. 이처럼 급격하게 성장했던 국내 축산업은 몇 년간의 성장세가 다시 뒤로 돌아갈 상황에 처했다.

당장 구제역이 종식되더라도 축산농가가 곧바로 재기하기는 힘들다. 새롭게 가축을 들이는 입식(入殖)에 적잖은 돈과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충남 지역의 한 양돈농장주는 “정부가 입식 자금을 융자로 지원해줘도 하루아침에 다시 축사가 돼지로 가득차는 게 아니다”라며 “1년 가까이 걸리는 입식 기간이 문제”라고 말했다. 소는 길게는 2년이 걸리기도 한다. 여기에 구제역으로 도살처분을 당한 피해 농가가 많아 입식 시점이 되면 종자소와 돼지의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병모 대한돈협회 회장은 “이대로 가다간 돼지 200만 마리가 도살처분되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인다”며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 양돈은 사실상 기반이 무너지게 되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백신 접종을 모돈, 종돈 외에 비육돈 등까지 확대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최근 들어 국내 돼지 수요의 자급률이 78%까지 올라갔지만 구제역으로 다시 내려가면 이는 수출 문제뿐만 아니라 식량안보와도 연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구제역을 축산업의 근본적인 체질개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영순 서울대 수의학과 명예교수는 “축산업은 급격히 커졌지만 과연 축산농가, 정부, 지자체의 방역 의식도 함께 커졌는지는 의문”이라며 “규모의 성장에 가려져 있었던 방역 의식 및 매뉴얼, 농장의 방역 설비까지 재점검하는 기회로 삼아야 또다시 아픈 일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