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테이션/탐사리포트]무너지는 ‘고시 사다리’-有錢합격의 세계<2>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9월 16일 1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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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테이션]무너지는 ‘고시 사다리’-有錢합격의 세계<1>

하지만 요즘 수험생들은 대부분 매달 돈을 내고 독서실에서 공부합니다.

(인터뷰) 독서실 총무 / 고시준비생
"저희 만석에 예약자도 스무 명 정도 되고요. (얼마인가요? 한 달에) 가격은 15만원이요."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고시공부의 특성상 다른 수험생과 함께 공부하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섭니다.

독서실 안에는 에어컨은 물론 공기청정기와 산소발생기까지 갖춰져 있습니다.

(인터뷰) 독서실 총무 / 고시준비생
"산소발생기가 적거나 그러면 고시생들이 공부할 때 두통이 오거든요."

고시 준비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한달에 40~50만원이 넘게 드는 학원 수강은 수험생들에게 가장 큰 경제적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고시준비생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은 거의 필수라고 봐야 되고요."

교과서의 방대한 내용을 정리해 핵심을 짚어주고 최신 출제 경향을 분석해 공부 방향을 제시해주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오세훈 / 서울시장(사시 26회)
"명강사 이런 것도 있고 강의를 테이프로 받아서 공부도 하는 시스템으로 진화가 됐는데 그 때는 그런 게 없었고 그냥 학교 수업과 혼자 책 보는 걸로 공부를 하는 겁니다."

요즘 고시생들은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애초에 불리한 경쟁을 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고시준비생
"처음에는 혼자해도 될 거라 생각했는데 (학원) 가야 되요. 전문가가 끌어주는 거랑 혼자서 책 보고 가는 거랑. 학원에는 지도가 있다고 보면 되죠. 좀 더 빨리 갈 수 있는.

실제로 지난해 사법시험 헌법과목에서 강사들이 지목한 사법부 독립 관련 판례가 100점 만점에 50점 배점으로 출제되는 등 학원의 예상문제가 적중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인터뷰) 신림동 고시학원 관계자
"요즘 시험은 워낙 축적이 많이 되어 있기 때문에 보다 정밀하고 세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데 그런 부분이 개인이 하기엔 너무 큰 어려움이 있죠.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학원비는 수업별로 단가가 다양하지만 일년에 보통 500~600만원이 듭니다.

(인터뷰) 신림동 고시학원 관계자
"사시는 한 500만원, 행시는 600만원. 외시도 600만원 안팎."

최근에는 소수 인원을 대상으로 전문 강사들이 1대1로 수업을 하는 고액과정도 생겼습니다.

(인터뷰) 고시준비생
"학원에서 요즘 프리미엄 반이라고 해가지고 연간 학원비가 2000만원 그런 소문도 있어요. (아 2000만원?) 사실 저도 가고 싶어요. 못 가서 문제지."

일부 학생들은 고시 합격생들로부터 한달에 200~300만원을 주고 개인 교습을 받는 등 고시 시장에도 사교육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평균 수준으로 생활하는 신림동 고시생들의 가계부를 정리해보면 방값 30~50만원, 독서실비 12~16만원, 밥값 20~30만원, 학원비 40~50만 원이 매달 들고 책값은 연간 100~200만원이 듭니다.

한 달 생활비가 110만원에서 160만 원에 달합니다. 학원을 끊지 않는 한 100만 원 이하로 한 달을 살기가 어렵습니다.

(인터뷰) 추미애 / 민주당 의원(사시 24회)
"그 때 우리가 2만5000원 정도 받으면 한 달을 지냈어요. 집에 신세 안 지고. 70년대 후반에 2만5000원이면 요새 얼마일까요."

최근 30년 동안 물가가 4배가량 오른 점을 고려하면 추 의원의 당시 생활비는 현재로 물가로 10만원 정도. 요즘 수험생들은 그 때보다 10배가 넘는 돈이 필요합니다.

저소득층 수험생이 고시촌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선 아르바이트 외엔 방법이 없습니다.

(인터뷰) 고시준비생
"대부분은 다 집에서 도움을 받죠. 혼자는 자립을 해서 알바를 한다든지 그러면 아무래도 수험생활에서 멀어진다고 봐야죠. 그런 경우는 거의 없어요."

독서실 총무 일을 하며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한 수험생은 고향에 내려가면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가 없지만 시험정보를 얻고 학업의 긴장을 유지하기 위해 신림동을 떠나지 못합니다.

(인터뷰) 고시준비생
"다른 사람들이 하루에 24시간을 쓴다면 저 같은 경우 18~19시간 밖에 사용을 못하니까 경쟁에서는 좀 밀리는 편이죠. 돈 없으면 공부하기 좀 힘든 거 같아요."

***

고시가 서민들로부터 멀어지는 추세는 고시 합격자들의 출신 배경으로도 확인됩니다.

최근 10년 간 판사로 임용된 사법시험 합격자들의 출신 고교를 분석한 결과 외국어고 등 특목고와 서울 강남지역 고교 출신이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에는 37%에 달했습니다.

특히 신규 임용 판사 가운데 특목고 출신 비율이 지난 6년 새 6배나 늘었습니다.

최근 5년 간 기획재정부나 행정안전부 등 정부 주요 부처에 배치된 행정고시 합격자의 경우도 특목고와 자립형사립고, 서울 강남 지역 고교 출신이 거의 절반을 차지했습니다.

부유한 지역 출신이거나 학비가 비싼 학교에 다닌 사람이 고시에 합격할 확률이 높은 겁니다.

(인터뷰) 오세훈 / 서울시장(사시 26회)
"아무래도 불공정한 게임이 되겠죠. 경제력이 시험의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 건 좋은 경쟁이 아니죠."

여러 병폐에도 불구하고 가장 공정한 인재 선발방식으로 인식되어온 고시제도.

하지만 돈이 없으면 고시에 도전할 엄두조차 내기 어려워지면서 이른바 '헝그리 고시생'들은 고시 사다리를 오르기가 갈수록 힘겨워지고 있습니다.

***

(박 앵커) 이제 고시마저도 '유전 합격, 무전 불합격'이란 생각이 드는데요. 누구나 사다리에 올라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말 그대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대책이 나와야겠습니다. 신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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