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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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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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 묻지마 살인범 검거… 14년 복역후 출소 30대 홧김에 범행
가장은 숨지고 아내는 회복… 유족구조금 3000만원 지급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 지난달 7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한 가정집을 급습해 가장을 살해한 ‘묻지마 살인사건’의 용의자 윤모씨가 12일 양천경찰서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제공 양천경찰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 지난달 7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한 가정집을 급습해 가장을 살해한 ‘묻지마 살인사건’의 용의자 윤모씨가 12일 양천경찰서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제공 양천경찰서
강도강간 혐의로 14년 6개월간 교도소에서 복역한 뒤 올해 5월 출소한 윤모 씨(33). 그는 이렇다 할 직장을 구하지 못해 서울 양천구 신정동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숙소에서 생활하며 일용직 근로를 해 왔다. 지난달 7일에도 오전 6시부터 인력시장에 나갔으나 일감을 구하지 못했다. 자괴감에 12시간 동안 양천구 일대를 방황하던 윤 씨는 막걸리 1병을 사들고 신정동의 한 놀이터에 주저앉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 윤 씨의 귀에 어디선가 행복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인근 다세대주택에서 나온 소리였다. 윤 씨는 갑자기 부아가 치밀었다. “전과자가 된 뒤 나는 취업도 제대로 못 하고 이렇게 비참하게 사는데 저 사람들은 저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술에 취한 윤 씨는 자제력을 잃고 배낭에 들어 있는 작업용 망치와 평소 가방에 넣고 다니던 길이 10cm짜리 과도를 꺼내들었다.

웃음소리가 난 집으로 달려간 윤 씨는 잠기지 않은 문을 열어젖혔다. 마루에선 주부 장모 씨(42)와 14세의 딸, 11세 아들이 함께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다짜고짜 장 씨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친 윤 씨는 아이들의 비명소리를 듣고 방에서 뛰어나온 장 씨의 남편 임모 씨(42)에게도 칼을 휘두른 뒤 곧바로 도주했다. 장 씨는 생명에 지장이 없었지만 장기에 큰 상처를 입은 임 씨는 결국 숨졌다.

경찰은 초동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사건이 워낙 우발적으로 일어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윤 씨는 아이들을 해치지는 않았다. 돈이나 금품도 가져가지 않아 범행동기가 무엇인지부터 아리송했다. 수사는 저인망식으로 진행됐다. 2만5000명의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일일이 분석하고 4000여 가구를 방문 조사했다. 140명의 유전자(DNA) 샘플도 채취했으나 모두 허사였다.

경찰은 사건 발생 6일 만인 지난달 13일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시민 제보를 받기 시작했다. 이후 제보와 인근 폐쇄회로(CC)TV 900곳 중 34곳에서 찍힌 범인의 옷차림 등을 활용해 이달 11일 신정동 인근 거리에서 범행 당시와 같은 옷과 신발을 착용하고 길을 가던 윤 씨를 발견하고 긴급 체포했다. 사건 발생 35일 만이었다. 경찰은 12일 윤 씨에 대해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지난달 15일부터 시행된 범죄피해자보호법에 따라 약 3000만 원의 유족구조금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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