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차 한잔]‘희랍어 시간’ 펴낸 소설가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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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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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잃어가는 사람들, 우리의 자화상이죠”

소설가 한강은 “소설을 쓰려고 그리스어를 배웠는데 외울 게 너무 많아 힘들었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소설가 한강은 “소설을 쓰려고 그리스어를 배웠는데 외울 게 너무 많아 힘들었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소설가 한강(41)이 소설 ‘희랍어 시간’(문학동네)을 냈다. 원고지 600여 장 분량의 경(輕)장편이다. 하지만 8일 저녁 서울 광화문의 카페에서 마주앉은 작가는 “경장편이 아닌 장편”이라고 강조했다. “길이는 짧지만 저에게는 무게가 가벼운 게 아니에요. 누가 뭐래도 저의 다섯 번째 장편입니다.”

애착이 큰 연유는 이렇다. 작가는 2008년 늦가을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다. 언어에 대한,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위기가 찾아왔다. 그는 ‘희랍어 시간’의 초고를 쓰며 이 고민을 힘겹게 뚫고나갔다. 이듬해 봄 150여 장의 스케치를 완성했을 때 깊은 수렁을 빠져나온 듯했다. 그 느낌에 힘입어 한동안 손을 놓았던 ‘바람이 분다, 가라’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지난해 동리문학상을 받았다.

“‘바람이 분다, 가라’가 격렬한 느낌이었는 데 반해 이번 작품은 한 남자와 한 여자에 대한 조용한 이야기예요. 소멸하는 삶 속에서 서로를 단 한순간 마주보는 사람들을 다뤘죠.”

점심을 걸렀다는 한강은 땅콩크림을 바른 베이글 한 개와 따뜻한 코코아를 달게 먹으며 말을 이었다. 그는 이 작품을 네 번 고쳐 썼다. 쓸 때마다 분량이 늘었고, 결말도 달라졌다. 6월 초부터 두 달 반 동안은 출판사 문학동네의 인터넷 카페에 연재하기도 했다.

소설에서 희랍어 강사인 남자는 독일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서울에서 홀로 산다. 그는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병을 가졌다. 그의 수강생 중에는 한 여자가 있다. 듣기는 하지만 어릴 때 병을 앓아 말을 하지 못하는 여자다. 여자는 이혼한 남편에게 아이를 빼앗기고 ‘말’을 찾기 위해 희랍어를 배운다.

‘언어를 찾는다’는 점에서 작품 속 여자와 작가가 오버랩된다고 하자 한강은 ‘푸하하’ 웃었다.

“여자하고 제가 언어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은 맞겠네요. 하지만 소멸하고 빛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그렸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 모두의 자화상을 그린 거죠.”

‘결여된 삶’을 살아가는 남녀는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 늦은 밤 남자가 희미하게 보이는 여자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지금, 택시를 부르겠어요.” 말을 할 수 없는 여자는 남자에게 다가와 손가락으로 그의 손바닥에 가만히 적는다. ‘첫 버스를 타고 갈게요.’

그렁그렁 눈물이 가득 찬 슬픈 눈과 같은 소설은 시종 조용하고 담담하게 남녀의 일상을 따라간다. 발자국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는 “소설의 절정 부분이라는 게 꼭 격렬하고 시끄러울 필요는 없다. 조용하게 흘러가는 절정도 가능하다”고 했다.

“작품을 완성하면 작가가 작품 속에서 ‘나가야’ 하는데 그 과정이 이번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이 소설은 아프고 슬픈 얘기지만 저에게는 따뜻했습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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