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종합]인라인스케이트 요정 국가대표 궉채이

  • 입력 2003년 11월 16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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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안양시청 잔디밭에서 포즈를 취한 궉채이. 그는 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놓친 것을 못내 아쉬워했지만 금방 “내년에는 꼭 딸 거예요”라며 활짝 웃었다. 안양=전영한기자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안양시청 잔디밭에서 포즈를 취한 궉채이. 그는 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놓친 것을 못내 아쉬워했지만 금방 “내년에는 꼭 딸 거예요”라며 활짝 웃었다. 안양=전영한기자
“궉채이? 우리나라 사람인가요? 궉씨라는 성씨가 있어요?”

‘인라인스케이트 요정’ 궉채이((궉,봉)彩伊·16·안양 동안고 1년). 그의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은 귀를 의심하며 꼭 한 번 더 묻게 된다. ‘궉’이라는 성씨가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모 일간지는 지난 2월 그의 대한체육회상 수상을 보도하면서 ‘권채이’라 썼다가 ‘바로잡습니다’를 내기도 했다. 통계청의 200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궉씨는 전국에 74가구 278명.

궉채이가 스케이트를 처음 신은 것은 오산초등학교 4학년 때. 육상부에서 장거리를 뛰던 그를 롤러스케이팅부 선생님이 설득한 것이 계기였다. 처음 재미삼아 타던 궉채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소년체전 선발전에서 안양시 대표 코치였던 박성일씨의 눈에 띄어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한다.

박 코치는 궉채이의 부모님을 설득해 안양 범계초등학교로 전학시키고 자신의 집 바로 옆 아파트 방을 얻어줘 세끼 식사를 함께 하며 딸처럼 그를 키웠다.

“큰 키와 마른 체구임에도 힘이 좋고 유연해 데리고 왔죠. 채이는 지고는 못 견딜 만큼 어려서부터 승부근성이 대단했어요.”

2001년 국가대표에 선발된 궉채이는 바로 그 해 프랑스 아젠 세계선수권대회 포인트 5000m에서 한국 롤러스케이트 사상 첫 금메달을 따냈다. 지난해 벨기에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포인트 겸 제외 1만m와 포인트 5000m에서 2관왕에 오르며 세계 정상을 재확인했다. 이달 초 베네수엘라 바르키시메토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선 은 1, 동 1개에 그쳤다.

“운동 시작한 뒤 사실 지금이 제일 힘들어요. 계속 금메달을 따다 막상 못 따니까 금메달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어요.”

밝은 성격의 궉채이지만 이번 대회는 못내 아쉽나 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대회엔 악재가 겹쳤다. 현지에 도착해서야 그의 주종목인 ‘포인트 5000m’가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중남미 특유의 후덥지근한 날씨에 음식도 입에 안 맞았고 경기장 트랙은 국내와 달리 무척 미끄러운 재질이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지만 좌절하지는 않아요. 체력훈련을 더 열심히 해 내년에는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어요.”

궉채이는 안양시 소속 선수들과 함께 매일 5시간씩 중앙공원 시립주차장 한 구석에서 훈련을 한다. 장서인 동안고 감독은 “안양은 전국체전에서 금메달 10개 가운데 6개를 휩쓰는 롤러스케이트의 메카임에도 아직 제대로 된 전용경기장 하나 없어 주차장을 연습장으로 쓰는 형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대회가 가까워지면 인천이나 서울의 경기장에 가서 훈련을 한다.

“가끔은 매일 스케이트만 타는 것이 지겨울 때도 있어요. 또래 친구들처럼 공부도 하고 놀러 다니고도 싶구요. 하지만 제가 좋아 선택한 만큼 후회는 없어요. 롤러스케이트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제 삶을 가장 빛나게 했거든요.”

궉채이는 시간이 날 때는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을 찾는다. 박기영의 ‘블루스카이’를 부르다보면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쫙 풀리곤 한다.

“남자친구는 관심 없어요. 사귈 시간도 없고요. 스무살 이후에나 생각해 보려구요. 연예인 중에는 ‘살인미소’ 김재원을 좋아하지만 실제로는 몸도 좋고 눈썹도 진한 남자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지난해 9월에는 팬카페(cafe.daum.net/kcllove)도 생겼다. 현재 회원수는 2000여명 가량.

“세계대회에서 외국 선수들이 30세가 넘어서도 금메달을 따는 것을 보면 놀라워요. 우리나라 선수들은 어렸을 때부터 너무 무리하게 운동을 해서 25세가 넘으면 힘이 달리거든요. 우리도 외국처럼 즐기면서 운동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의 앞으로의 계획은 ‘월드팀’에서 뛰는 것. 롤러스케이트 메이저 제작업체인 살로몬, 롤러블레이드, 하이퍼 등에서 세계 1∼2위의 우수한 선수들을 모아 ‘월드팀’을 운영한다. 이미 몇몇 월드팀에서 연락이 오고 있다.

“박 코치님이 고생하시는 걸 보면 나중에 지도자는 하고 싶지 않아요. 은퇴하면 세계여행을 하면서 편하게 살고 싶어요. 한참 뛰다보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이 괴로울 때가 있어요. 그 때는 부모님과 가족, 코치님 등 저를 아껴주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힘을 냅니다.”

안양=정재윤기자 jaeyuna@donga.com

●궉채이는 누구

△생년월일=87년 5월15일생

△출신학교=범계초-귀인중-동안고

△신체조건=1m68, 50kg

△첫 국가대표 발탁=2001년 세계선수권대회부터

△수상 경력=2001년 프랑스 아젠 세계선수권 포인트 5000m에서 한국 롤러스케이트 사상 첫 금메달, 제외 10000m 은메달

2002년 벨기에 오스텐드 세계선수권 포인트 겸 제외 10000m, 포인트 5000m에서 금메달 2관왕, 제외 15000m에서 은메달

2003년 베네수엘라 바르키시메토 세계선수권 포인트 겸 제외 10000m 은메달, 제외 20000m 동메달

△가족관계=궉장원(46·회사원) 윤옥환(43·주부)씨의 1남3녀 중 2녀

△취미=음악감상(좋아하는 가수: 빅마마, 조성모), 노래방(18번: 박기영의 ‘블루스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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