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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전문기자의&JOY]피아골 물들인 단풍… 아픈 만큼 붉은 것이 너뿐이랴

동아일보

입력 2010-11-12 03:00:00 수정 2011-02-18 11:58:34

지리산 성삼재∼노고단∼피아골 걷기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 얼굴도 붉다는 지리산 피아골 삼홍소. 하지만 4일 삼홍소는 ‘산은 그저 불그레했고, 물도 약간 불그죽죽했을 뿐’이었다. 다만 울긋불긋 차려입은 사람단풍만이 어지럽게 붉었다. 피아골 단풍 은 아래로 느릿느릿 물먹은 종이처럼 번지고 있다. 단풍은 ‘나무가 색으로 쓴 시’다. 빨강 노랑으로 그린 산문시다. ‘가야 할 날이 머지않았으니, 손에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모두 내려놓으라’는 천둥소리이다. 단풍은 금세 낙엽이 된다. “다음은 네 차례야!, 다음은 네 차레야!”라며 떨어진다. 그렇다. 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 지리산=서영수 전문 기자 kuki@donga.com

《다만 사람들이 빈 산골짜기로 올라와서 비탈에 하나씩 둘씩 돌을 쌓고 땅을 고르고 마침내 씨앗 뿌려 질긴 목숨 끌어갔음을 본다
참으로 사람이야말로 꽃피는 짐승 가슴 가득히 불덩이를 안고 피와 땀을 뒤섞이게 하는 그것이 눈물겨워 나도 고개 숙인다
구례군 토지면 직전마을 피아골 들머리 아침 햇발에 층층 쌓인 다랑이 논들 거친 숨결 내뿜는 것을 본다 <이성부의 ‘피아골 다랑이 논’에서>

지리산 피아골은 왜 피아골일까. 피의 골짜기인가? 아니면 난리를 피하는 골짜기인가? 누구는 ‘단풍이 핏빛처럼 붉어 피아골’이라고도 한다. ‘먼 옛날부터 이 골짜기에 수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이 붉은 단풍으로 피어났다’(소설 태백산맥)는 것이다.

그렇다. 피아골은 백제 신라의 싸움터였다. 임진왜란 땐 수많은 의병이 왜군과 싸우다가 죽었다. 동학농민군들도 이 골짜기에 스며들었다가 무수히 뼈를 묻었다. 6·25전쟁 땐 토벌대와 빨치산들의 쫓고 쫓기는 ‘삶과 죽음의 경계’였다. 주민들은 ‘낮엔 대한민국, 밤엔 인민공화국’ 사이에서 ‘생명의 외줄타기’를 해야 했다.

사실 피아골의 유래는 의외로 단순하다. ‘직전(稷田)이 있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직전의 ‘직(稷)’은 오곡(쌀 보리 조 콩 기장) 중 하나인 기장을 말한다. 기장은 볏과의 한해살이 풀인 ‘피’다. 즉 직전은 피밭이고 피아골은 피밭골인 것이다. 피밭골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피왓골→피아골’로 변했다.

피아골계곡 물웅덩이에 수북히 떠있는 ‘단풍 나뭇잎배’. 지리산=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피밭은 누가 농사지었을까. 바로 피아골계곡에 있는 연곡사 스님들이었다. 연곡사는 한때 수백 명의 스님들이 수행하던 큰 절이었다. 하지만 늘 먹을 게 부족했다. 땅은 척박했다. 결국 험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피를 심어 배고픔을 달랬다. 피아골 들머리엔 아직도 직전마을이라는 동네가 자리 잡고 있다.

연곡사는 6·25 당시 대부분 불에 타 사라지고 부도밭만 남았다. 현재 건물들은 그 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연곡사는 화엄사를 지은 연기조사가 세웠다. 골짜기 연못에서 제비가 물수제비 뜨며 노니는 모습을 보고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 못을 메우고 지었다 한다. 절 이름에 제비 ‘燕(연)’자가 들어가는 이유다. 제비가 물어다 준 절집인 셈이다.

피아골이 유명해진 것은 1955년 영화 ‘피아골’(이강천 감독) 때문이다. 이예춘 김진규 허장강 노경희 김영희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대거 출연했다. 내용도 당시로는 획기적인 피아골 빨치산을 다뤄 장안의 화제가 됐다.

피아골은 노고단(1507m)과 삼도봉(1550m) 사이의 골짜기이다. 소나무 전나무 등 바늘잎나무가 거의 없다. 대부분 활엽수다. 졸참나무 갈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등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 종류가 많다. 고로쇠나무 복자기나무 사람주나무 당단풍 일본단풍 좁은 단풍 털단풍 등 단풍나무도 못지않다. 피아골 단풍은 그만큼 곱다. 지리산의 칼 찬 처사 남명 조식 선생(1501∼1572)이 피아골을 지나쳤을 리가 없다. 그는 지리산을 17번이나 올랐다. ‘흰 구름 맑은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가을에 붉은 단풍 봄꽃보다 고와라/조물주가 나를 위해 산 빛을 꾸몄으니/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자동차로 올라가는 성삼재(1090m)는 노고단(1507m)으로 가는 출발점이다. 성삼재 주차장에서 노고단까지는 걸어서 1시간 거리(2.7km). 이미 초겨울 바람이 을씨년스럽다. 말라비틀어진 나뭇잎이 이리저리 굴러간다. 완만하게 올라가던 길이 갑자기 가파른 돌밭길이 된다. 너덜겅이다. 그 끝엔 푸른 하늘이 반공중에 걸려 있다. 울긋불긋 등산객들이 아슬아슬 반공중을 오른다. 저 멀리 첩첩 산들이 주름져 웅크리고 있다.

노고단고개에서 노고단으로 가는 나무계단길. 저 멀리 노고할미 돌탑이 보인다.

노고단(老姑壇) 돌탑은 묵직하다. 지리산 산신 선도성모(仙桃聖母)를 기리는 탑이다. 선도성모는 마고할미 혹은 노고할미로 불리는 여신이다. 마고할미는 딸 8명을 두었는데 그 딸들을 전국 8도에 한 명씩 내려 보내 팔도무당이 되게 했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은 탑 주위를 빙빙 돌며 저마다 소원을 빈다. 모은 두 손이 간절하다. 두 눈을 꼭 감고 뭐라 중얼거린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자식 손자 잘되기를 빈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앞날을 걱정한다. 사진도 찍는다. 아래엔 구름 띠가 산허리에 걸쳐 있다. 구름은 수시로 모양을 바꾼다. 우산버섯이 되었다가 한순간 실타래로 흩어져 매생이 실처럼 가늘게 풀어진다. 그 밑엔 섬진강 물줄기가 은빛비늘을 꿈틀거리며 느릿느릿 흘러간다.

노고단에서 피아골로 내려가는 길은 담담하다. 나뭇잎 색깔도 어둑하다. 쏴아! 쏴아! 바람소리가 아득하다. 갑자기 “후두둑! 우수수!” 나뭇잎 소낙비가 우박처럼 쏟아진다. 그때마다 나무들은 온몸을 떨며 진저리를 친다. 싸드락! 싸드락! 발밑에선 낙엽 자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암소 여물 되새김질하는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낙엽은 날개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레미 드 구르몽의 ‘시몬’에서>

피아골 단풍은 피아골 대피소부터 산자락 연곡사까지 남아 있다. 색깔이 예년만큼 곱지 않다. 10월 몇 차례의 기습추위와 서리 때문이다. 나뭇잎 끄트머리가 말라비틀어졌다. 골짜기 물만 쉼 없이 웅얼웅얼 흐른다. 마른 낙엽들이 마당바위에서 바스락바스락 마른 기침소리를 내며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바위 웅덩이엔 젖은 낙엽들이 지악스럽게 서로 움켜잡고 켜켜로 쌓여 있다. 나뭇잎 배들이 빙빙 제자리를 맴돈다.

산, 물, 사람 3가지가 붉다는 삼홍소(三紅沼)도 그저 그렇다. 산은 창백하고 물은 말갛다. 울긋불긋 등산복 차림의 사람단풍이 더 곱다. 정작 산이 발그레 물든 곳은 연곡사에서 직전마을까지 산자락 쪽이다. 핏빛 당단풍나무와 발그스름한 사람주나무, 살짝 달아오른 복자기나무, 가래나무가 황갈색 참나무 잎들과 황홀하게 어우러졌다.

‘피아골에 든 누가/아픔 없이 단풍을 보는가/가을이 아니어도 물드는 피아골/지던 나뭇잎만큼이나/숱하게 졌던 사람들이 잊혀져가고/빨치산 깃발을 숨겨가진/붉은 나무마다 눈을 아리게 한다’


<강영환의 ‘빨갱이-삼홍소’에서>

피아골 물에 손을 담근다. 뼈가 시리다. 머리에 주뼛 칼날이 선다. 점박이 줄기의 노각나무가 몸을 뒤틀며 서 있다. 연노랑 잎이 우아하다. 그 옆엔 붉은 마삭줄 잎이 치렁치렁하다. 나뭇잎은 골짜기 이끼를 덮고 바위를 덮고 있다. 오솔길도 야금야금 지우고 있다. 가을이 지쳐 늙어가고 있다.▼ 매천 황현 “나라가 망하는데 죽는 선비 하나 없나” ▼

매천 황현
구례(求禮)는 ‘예절을 추구하는 고을’이다. 예는 사람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 기본을 행하기는 쉽지 않다. 구한말 구례유생 매천 황현(梅泉 黃玹·1855∼1910) 선생은 선비의 본분을 온몸으로 보여준 사람이다. 인간의 예가 무엇인지 행동으로 보여준 선비이다. 그는 광양에서 태어났지만 1886년 구례로 옮겨와 죽을 때까지 살았다.

그는 평생 벼슬을 하지 않았다. 그는 구안실(苟安室)이란 소박한 서재를 지어놓고 그곳에서 책을 읽으며 지냈다. ‘구안’이란 공자의 논어에 나온 말로 ‘한때 겨우 편안하다’ 혹은 ‘일시적 안락을 꾀한다’는 뜻. 온 세상이 시끄러우니 잠시 뜻을 접고 초야에 묻혀 살겠다는 의지의 표시이다.

그러나 어디 나무가 가만히 있고자 해도 바람이 가만히 놔두는가. 더구나 황현은 가슴이 누구보다도 뜨거운 사람이었다. 조선 선비로서의 의기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는 부지런히 서울을 오르내리며 국제정세를 예의 주시했다. 그리고 무능한 조정에 대해 절망했다. ‘바람 앞의 등불’ 같은 나라 운명에 발을 동동 굴렀다. 서울의 친구들과 밤새 어찌해야 할 것인지 의견을 나눴지만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1909년 그는 서울 남산에 올라 한양 장안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남산에 올라 한번 굽어 본 서울 땅/보는 것마다 더욱 처량하고 혼미하여라…/예전에 망한 나라가 다 이 모양이었던가/망한 것이 분명하니 슬플 수도 없구나’

황현은 이미 그때부터 죽음을 생각했다. 그는 동생 황원(黃瑗)에게 ‘세상 꼴이 이와 같으니 선비라면 진실로 죽어 마땅하다’고 말했다. 만약 죽지 않는다면 매일 들려오는 비위 거슬리는 소리에 몸이 말라 비틀어져 죽을 것이니, 그렇게 죽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1910년 9월 10일 황현은 소주에 아편을 타서 마시고 눈을 감았다. 그의 말대로 그는 (조선 왕조에) 죽어야 할 의리는 없었다. 일찍이 조정을 버틸 만한 하찮은 공도 세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유는 ‘국가에서 500년 동안이나 선비를 길러왔는데, 나라가 망했는데도 어찌 죽는 선비 하나 없느냐’는 것이다. 조선 선비로서 차마 그만둘 수 없어서 죽을 뿐이지 자신이 무슨 조정에 충성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목숨을 끊는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창칼을 들고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죽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했다.

황현은 솔직하다. 인간적이다. 그의 글엔 ‘잠 못 이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시골선비의 모습’이 곳곳에 배어 있다. 그는 조선선비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목숨으로 다했다. 소위 글깨나 읽은 자들의 위선을 한방에 날려버렸다. 그것은 천둥소리였다. 사방이 벽으로 꽉 막힌 암울한 시대. 그는 망해가는 나라의 지식인으로서 얼마나 고뇌가 많았을까. ‘선비로서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되기 참으로 어렵다’는 그의 절명시 구절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는 말한다.

‘나는 결코 위로 하늘의 병이(秉彛·타고난 천성을 그대로 지킴)의 아름다움과 아래로 평소 읽은 책의 의미를 저버릴 수 없다.’

인간이 지켜야 할 하늘의 도리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칠 수 없다는 것이다. 책에서 읽은 진리를 앵무새처럼 입으로만 떠들 수 없다는 것이다.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올해는 황현 선생이 절명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이다. 구례에 가면 그의 사당 매천사(광의면 수월리)에 가 볼일이다. 차마 그의 영정을 보기가 부끄럽다. 안경너머 눈빛이 형형하다. 가슴이 서늘하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 교통

▽승용차=서울∼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함양 나들목∼88고속도로(남원방면)∼구례방면(19번국도)∼노고단 방면∼천은사매표소∼성삼재

▽버스=서울남부터미널∼구례(4시간 소요)∼구례에서 군내버스로 성삼재 이동(40분 소요). 군내버스는 구례 출발 4시 첫차부터 17시 40분 막차까지 하루 8회(061-780-2730).

▽기차=서울 용산∼구례구역(5시간 소요)∼군내버스로 버스터미널 이동(20분 소요)∼군내버스로 성삼재 이동(40분 소요)

◇ 먹을거리

△ 참게탕전문 천수식당(061-782-7738) △ 산야초정식 닭백숙(전국요리경연대회 수상) 직전마을 산아래첫집(061-782-7460·민박가능) △ 버섯비빔밥 현대식당(061-782-5113) 할매된장국집(061-783-6931) △ 사찰음식 초가원식당(061-781-2222) △ 다슬기수제비 부부식당(061-782-9113) 다슬기식당전문점(061-781-6756) △ 매운탕 지리산회관(061-782-3124) 전원가든(061-782-4733) △ 산채정식 지리산식당(061-782-4054) 백제회관(061-783-2867) 혜림회관(061-783-3898) 백화회관(061-782-4033)

◇ 특산물

▽산수유 제품=구례산동농협(061-781-1692), 지산식품(061-781-8787), 지리산산동산수유(061-781-8558) ▽산수유술=지리산산수유영농조합법인(061-781-8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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