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에서 제국공주를 수행하고 온 아라비아인은 장순용이라는 성과 이름을 받아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된다.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 부대의 선봉장 사이카는 ‘앞선 문물과 인정 풍속에 반해’ 김해 김씨 성을 받고 귀화한다. 그 후손이 경북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에 많이 살아 ‘우록 김씨’로 불린다. 그 씨족의 한 영재는 3공 시절 검찰총장을 거쳐 법무부장관에 오르기도 했다.
▷반대로 임진왜란 때 도공 심수관 등과 함께 일본에 끌려간 도공 박씨 후손 중에 일본의 외무대신도 나왔다. 박수승(朴壽勝)의 아들 도고 시게노리(東鄕茂德)가 바로 그 사람이다. 일본 개화기까지 도공으로 살면서 박씨 성을 이어가다가 박수승대에 오사카에서 큰돈을 벌어 ‘도고’라는 성을 받고 사족(士族)이 되었다. 시게노리는 ‘조선 핏줄’이라는 핸디캡을 이겨내고 독일대사 소련대사를 거쳐 외무대신을 두 번이나 했다. 그는 태평양전쟁 패전 후 전범으로 옥살이를 하던 중 병사한다.
▷최근 ‘일본천황은 한국인이다’는 외국어대 홍윤기교수의 저서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주로 일본의 고대 사료와 저명한 일본인 사학자 민속학자들의 저서 논문을 인용 분석해가며 천황가의 핏줄을 백제계라고 고증한다. 저자는 특히 5∼6세기의 천황들이 ‘순수한 백제인’들로 백제복식을 입고 백제궁을 지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눈물을 글썽였다고도 한다. 그러나 일본인과 오늘의 천황가에서는 이 주장을 반기기는커녕 눈을 흘길 것이다. 핏줄은 이국에 스며들기 위해 한없는 텃세를 이겨나가야 한다. 그러나 일단 스며들면 또 하나의 배타심으로 변하는지도 모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김충식논설위원>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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