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

  • 입력 2003년 12월 24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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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연각(大然閣)호텔은 그 이름부터 불씨를 잉태하고 있었다.

‘그럴 연(然)’자는 본시 개(犬)의 고기(月-肉)를 불(火)에 태운다는 뜻이었으니 대연각은 ‘크게 불이 날 집’이었던 것이다.

1971년 크리스마스 아침. 불은 호텔 2층 커피숍에서 번지기 시작했다. 화마(火魔)는 사나운 겨울바람을 타고 삽시간에 높이 80여m의 22층 건물 전체로 옮겨 붙었다.

서울시내 44대 소방차가 총출동했고 대통령 전용헬기를 포함해 한국군과 미군 헬기 10여대가 떴다. 불구경을 하기 위해 몰려든 군중을 통제하는 데 헌병과 경찰 200명이 동원됐다.

당시 주한 대만대사관의 한 외교관은 11층 객실에서 10시간을 버틴 끝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그는 욕실에 물을 받아놓고 몸을 적시며 침착하게 구조대를 기다렸다.

15층에 있던 한 일본인은 침대 시트로 끈을 만들어 7층까지 내려와 구조됐다.

전체 사망자 163명 중에는 일본인 10명과 중국인 3명이 포함돼 있어 이 일화는 동양 3국의 국민성을 비유하는 우스갯소리로 회자됐다. 중국인의 침착성과 만만디(慢慢的), 일본인의 영악함을 말해준다는 것.

8층에서 침대 매트에 대충 몸을 의지한 채 뛰어내린 한국 여성은 ‘저돌성’의 표본이었다.

화인(火因)은 프로판가스였다.

1970년대 경제 고도성장에 시동(始動)을 걸던 그때 급속히 보급된 프로판가스가 터져 버린 것이다. 그것은 값싸고 편리했으나 위험천만이었다. ‘정치는 없고 경제만 있는’ 당시의 권력처럼 고약했다.

1970년대는 유독 대형 화재사고가 많았다. 황당한 것은 대연각호텔 화재 때 살아남은 한 20대 여성이 3년 뒤 대왕코너 화재 때 숨지고 만 것이다.

영화 ‘타워링’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던 대연각호텔 화재.

1968년 건축공사를 마친 호텔은 준공검사를 받은 지 불과 한 달 만에 불이 났다. 스프링클러도 없었고 옥상에 헬리포트도 없었다.

방재시설로는 화재경보기가 유일했으나 경보음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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