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상설전시실을 둘러봤다. 공들인 전시였겠지만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다룬 제1전시실의 전시 유물 수가 다른 전시실에 비해 적었고, 문헌기록을 나열하는 방식 위주였기 때문이다. 반면 1960∼80년대 경제성장을 다룬 제3전시실은 새마을운…
“이게 아이들 책이야?” 아이에게 백설공주, 신데렐라, 인어공주 등 디즈니 동화를 읽어주다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독을 먹이고 밀어서 죽이는 등 아이들에게 부적합한 내용이 많다는 생각 때문이다. 줄거리는 또 어떤가. 주인공들은 왕자를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요즘이 어떤 시대…
아직 장마도, 삼복더위도 오지 않았지만 연일 30도가 넘는 날씨에 “덥다”라는 말을 쉴 새 없이 외치고 있다. 지난 봄 얼굴에 있던 점들을 뺀 때문인지 햇살이 더 따갑게 느껴진다. 달력을 보니 더울 때가 되긴 했다. 21일은 하지(夏至)였다. 1년 중 낮 시간이 가장 길 때다. 더…
“정신적인 법칙에는 절대적인 것이란 없다는 점에서 물리적인 법칙과 다르다.”(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 중) 요즘 옛 친구를 만나면 그렇게들 게임 얘기를 한다. 20세기 히트작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 덕이다. 군대처럼 PC방 ‘무용담’이 줄기차게 쏟아진다. 실제로 21일 출시된 모바…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아트선재센터 1층은 책으로 가득하다. 미술관에 책이라? ‘THOMAS HOBBES’(토머스 홉스), ‘GEORGE SIMMEL’(게오르크 지멜), ‘ARISTOTELES’(아리스토텔레스)…. 바닥에 어지럽게 놓인 이 책들은 강희성 전 동아서원 대표가 보관했던 것…
사무실 내 책상에서 이끼(사진)가 자란다. 4월 서울의 한 미술관에서 네덜란드 출신의 작가가 비무장지대(DMZ)의 이끼를 모판에 키운 작품을 전시한 것을 보고 나도 이끼를 키워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휩싸였다. 이끼가 어디에 살고 있을까. 무심코 지나쳤던 도심의 그늘진 보도블록…
“자월명(自月明)하라·스스로를 달빛 삼아라.” 최근 출간된 원철 스님의 산문집 ‘스스로를 달빛 삼다’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불교계의 대표적인 문장가로 꼽히는 스님은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연구실장을 맡고 있다. 10년 넘은 인연이지만 스타일상 전화로 수다를 떨 사이는 아니다. 그…
영화를 볼 때 사람마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게 다르다. 내 경우엔 메시지 혹은 주제의식이었다. 화려한 미장센이나 흥미로운 내러티브는 중요하지 않았다. 고로 영화 ‘곡성’이나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을 보고 엄지를 치켜세우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최근 영화 ‘악녀’를 보고 생…
요즘 페이스북 알림이 쉴 새 없이 울리고 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역사관을 비판하는 고대사 전공 학자들의 글과 댓글 때문이다. 얼마 전 그가 한 매체와의 통화에서 “일본의 연구비 지원으로 임나는 가야라는 주장을 쓴 국내 역사학자들의 논문이 많다. 여기 대응해야 …
즐겨 보는 웹툰 중 ‘호랑이 형님’(이상규 글·그림)이 있다. 산신령과 호랑이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판타지물인데 이야기가 촘촘하면서도 비밀을 조금씩 드러내는 방식으로 흥미롭게 짜여 있고, 캐릭터마다 개성도 살아있다. 매력적인 악역인 ‘추이’(범을 잡아먹는다는 상상의 동물)의 모습…
할아버지 품에서는 흐릿한 소주 냄새가 났다. 이유를 물으면 아빠는 늘 ‘북에 두고 온 가족 때문에’라고 설명하셨다. 이산가족 방송이 시작됐을 때 할아버지도 가족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여의도광장으로 나가셨다고 했다. 1만 명이 넘는 사람이 가족을 찾았다. 멀리 미국에 있는 혈육까지 찾은…
얼마 전 컴퓨터의 아이튠스 곡 목록(사진)을 싹 다 비우고 하나씩 다시 끌어넣었다. 들으면서 마음 번잡해지지 않을 곡만. 베토벤 현악4중주 전곡. 기돈 크레머의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글렌 굴드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망설임 없이 다시 넣은 건 그게 다였다. …
“아, 나 이거 분명히 봤던 영화인데….” 분명 본 영화인데 줄거리가 기억이 안 날 때가 있다. 보긴 봤는데 거의 자서 안 본 거나 다름없는 영화도 있다. 계단만 오르면 이상하게 숨차다. 어두운 데만 가면 이상하게 졸리다. 내게 그런 영화의 대표작은 팀 버턴 감독의 ‘스위니 토드’…
1998년 4월 4일.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인 CJ CGV 강변점이 서울 광진구 테크노마트에서 문을 연 날이다. 이후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 멀티플렉스 극장이 뒤를 이었다. 이제 영화는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보는 게 당연하고, 또 익숙한 일이 됐다. 20여 년 만에 이들 ‘빅3’가 …
서울 은평구 끝자락에 위치한 ‘진관사’는 북한산이 담벼락처럼 둘러싸고 있어 자연 속에 안긴 듯한 사찰이다. 이곳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문구는 ‘마음의 정원’. 실제로 진관사는 불교 신자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의 쉼터 같은 곳이다. 북한산 여러 등산로 진입로와 맞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