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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혼란’ 한국號 어디로 가나]강원용 목사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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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혼란’ 한국號 어디로 가나]강원용 목사에게 듣는다

입력 2005-10-20 03:08수정 2009-10-08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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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만난 강원용 목사는 “남북이 평화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치밀한 로드맵을 만들어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야 할 것”이라면서 “성급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이종승 기자

《“남한에서도 진보와 보수가 함께 힘을 합치지 못한다면, 60년 가까이 완전히 갈라져 살아 온 북한과는 어떻게 함께 살 수 있겠나.” 개신교계의 원로인 강원용(姜元龍·88) 평화포럼 이사장. 그는 지난 일요일 자신이 명예목사로 있는 경동교회 예배 설교를 통해 동국대 강정구(姜禎求) 교수의 발언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이념 대립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2003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한 주간지와 인터뷰를 한 이후 2년여 동안 시국발언을 자제해 왔던 강 목사로서는 이례적인 언급이었다. 그는 19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평화포럼 사무실에서 본보 기자와 만나 “앞으로 2, 3년이 우리나라의 존망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라며 “그런데 현 시국이 상당히 강파르게 진행되고 있어 원로로서 발언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 목사는 우선 국민 통합을 위한 리더십을 역설했다. 그는 “국민적 에너지를 모으려면 신바람을 불러일으켜야 하고 그러려면 집권층은 쓴소리를 해 주는 호민(豪民)의 지혜를 얻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정치철학자 허균(許筠)은 민심에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하자고 하면 순종하는 ‘항민(恒民)’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 ‘원민(怨民)’이다. 이 둘은 어느 사회에나 있지만 민심은 아니다. 진짜 민심은 건전한 비판의식을 갖고 잘잘못을 가릴 줄 아는 ‘호민’이다. 정치는 호민의 지혜를 얻어야 하며, 호민이 지지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돼 갈 것이다.”

―현 정권은 민심을 제대로 읽고 있다고 보나.


강정구 교수의 불구속 수사가 국가정체성에 혼란을 야기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
아니다
잘 모르겠다


▶ 난 이렇게 본다(의견쓰기)
▶ “이미 투표하셨습니다” 문구 안내

“‘참여정부’를 주창하는 현 정권은 왜 국민의 폭넓은 참여가 없는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현 정권의 ‘우리’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만 모은 의미일 수 있다. 집권당의 지지율이 20%를 넘지 못한다면, 왜 국민이 참여를 안 하고 있는지부터 정직하게 돌아봐야 한다. 현 정권이든 다음 정권이든 ‘우리들끼리만’ 하자고 하는 것은 안 된다.”

강 목사는 “우리 국민의 기층문화에는 아주 독특한 점이 몇 가지 있다”면서 “그중 하나가 신바람만 일어나면 무서운 속도로 타오르는 것이다”고 말했다. 2002년 월드컵 때 한국 축구를 4강에 오르게 한 ‘붉은 악마’의 응원이나 88올림픽 때 교통난 해소를 위해 실시한 ‘홀짝제’에 전 서울시민이 참여했던 것들이 모두 신바람이 이뤄낸 기적이라는 것이다.

강 목사는 “신바람이 일어나려면 지도자가 국민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국민이 정권에 대해 ‘속임수’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 리더십이 설 수 없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강 교수 발언으로 이념 논란이 일고 있는데….

“간단한 이야기다. 대학교수가 대한민국 땅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미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도 빨리 끝나고 통일도 됐을 것이라는 주장을 북한에서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6·25전쟁 때 시골에서 구덩이를 파고 거기 숨어서 지냈다.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해 들어온다는 소식에 그때 구덩이 속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일시에 일어서서 춤을 췄다. 이런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대한민국 땅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강 목사는 또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논란에 대해서도 “6·25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미국을 구세주처럼 생각하는 것에 반감을 갖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6·25전쟁을 역사책이 아니라 몸으로 경험한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왜 그런 발상이 나오느냐는 점이다. 그런 발상의 이면에는 ‘미군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통일됐을 것이다’ ‘북한 체제로 통일이 됐다면 분단은 없지 않았겠느냐’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북한과 우리의 체제가 어떻게 다른지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남북의 대립구도를 극복하려면 과거 지향보다는 미래 지향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강 목사는 “4000만 명이 사는 땅에 별별 사람들이 다 있고, 독일에서도 신나치주의자들이 있는 것처럼 어느 나라에도 그런 사람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왜 그런 것을 정치적 이슈로 키워 나가느냐는 것이다.

“강 교수 발언 파문이 더 커진 것은 천정배(千正培) 법무부 장관이 불구속 수사를 지휘한 것 때문이다. 물론 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하지만 의도가 문제다. 정치적 목적이나 이익 때문에 이런 문제를 계속 키워 가는 것 같다. 정치적인 목적이 뻔한데 구체적으로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남북 관계는 ‘온건한 보수’ ‘합리적 진보’에 기초한 국민의 민심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강 목사는 올해 평양에서 열린 6·15선언 5주년 기념식과 서울에서 열린 8·15광복절 행사에서 가졌던 남북교류에 대해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만나 전쟁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은 잘됐다고 생각했지만, 이북은 똘똘 뭉친 한 체제인 반면 이남은 진보와 보수가 극심하게 갈렸던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8·15 행사를 보면서 김 위원장이 영화를 좋아하니까 북한 사람들이 영화를 만드는데 각본을 잘 썼다고 느꼈다. 북측 사람들은 연기 연습도 참 잘했더라. 문제는 남측은 아무런 대본도 시나리오도 없었다는 점이다.”

―어떻게 하면 남북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나.

“현재의 남북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으로 남한 내부의 힘을 한데 모으는 게 시급하다. 현 정권 초기 노 대통령이 사회 원로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남북 교류를 하더라도 김대중(金大中) 정부 때처럼 정부 주도로만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야당 대표를 초청해 미리 의견을 듣고, 귀국길에 비행기에서 내려 청와대로 바로 가지 말고 야당 대표에게 가장 먼저 설명해 줬다면 당시 극심한 남남(南南) 갈등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강 목사는 올해 6·15와 8·15 남북 공동행사에서 쓰였던 ‘우리 민족끼리’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대해 “한반도의 문제가 어떻게 남북한만의 힘으로 해결이 되겠는가”라며 “이 구호는 좋아 보이지만 편협하고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문제는 4대 강국을 포함한 주변 국가의 협조가 긴요하다”며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는 결국 반미로 이어졌고,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시도와 강 교수의 발언 파문 등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강 목사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개의 눈을 주셨는데 북한 사람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봐야 한다”며 “한쪽 눈으로는 우리 동포라는 시각, 다른 쪽 눈으로는 우리와 전혀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는 시각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1972년 1차 남북 적십자회담에 북한 대표가 온다고 하니 TV 방송에서 ‘피는 물보다, 이데올로기보다 진하다’고 떠들어 댔다. 첫날에는 100만 인파가 몰려 북측 사람들을 환영했다. 그런데 다음 날 북측 대표가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라며 김일성(金日成) 주석을 찬양하는 연설을 해서 난리가 났다. 다음날 여론은 차갑게 변해버렸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강 목사는 “남북은 성급하게 통일을 먼저 이야기하기보다는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군비 축소, 문화 교류를 통해 동질성부터 회복해야 한다”며 “남북관계는 서둘러서 되는 것이 아니며 온건 보수세력과 합리적 진보세력이 힘을 합치는 것이 최우선이다”고 말했다.

―현 정권이 주도하는 과거사 청산을 둘러싸고도 논란이 있다.

“과거를 청산해야 올바른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기본 정신에 동의한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돼서는 절대 안 된다. 얼마 전 한 민간단체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후보 명단을 봤다. 나도 일제강점기에 투옥됐던 사람이지만 그 명단을 보고 웃었다. 김활란(金活蘭) 백낙준(白樂濬) 유진오(兪鎭午), 심지어 노기남(盧基南) 대주교까지 친일파 명단에 넣었는데, 그분들을 다 단죄한다면 당시를 살았던 한국 사람들을 다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특정 지위에 있었느냐가 아니라 그의 행위가 우리 민족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낮은 자리에 있었더라도 우리 민족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했던 사람은 단죄해야 한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으로, 친일이냐 애국이냐를 이분법적 시각으로 가린다면 제대로 된 역사 청산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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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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