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동근의 멘탈 투자 강의]전고점은 추억일 뿐… 현재 시황에 몰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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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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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상승해 고점 오르면
내려가도 그 고점에 얽매여
투자판단 흔들리기 쉬워
지금의 시장 상황이 중요


프랑스 파리에 처음 온 이방인은 에펠탑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방향을 따지면서 지리를 익힌다고 한다. 파리의 랜드마크는 에펠탑이고 그로부터 모든 길이 방사형으로 펼쳐져 있으니 당연히 그렇게 방향감각을 잡는 게 쉽다. 외국인이 바둑판식 거리인 서울 강남구의 지리를 알게 되는 방법도 이와 비슷하다. 강남구 안의 한 곳, 예를 들어, 강남역 사거리를 일단 알게 되면 그곳에서부터 주변 지리를 익혀 나갈 수 있다. 테헤란로를 타고 동쪽 방향으로 한 블록을 가면 역삼역 사거리, 거기서 두 블록을 더 가면 선릉역 사거리…. 이런 식으로 다른 곳의 지리까지 파악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지리뿐만 아니라 숫자의 세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잘 모르는 사물의 크기나 규모를 추측할 때 사람들은 보통 어떤 숫자 하나를 생각하고 그것을 기점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심리학자인 카렌 야코비츠와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한 공동연구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은 에베레스트 산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는 두 그룹의 사람들에게 이 산의 해발고도를 물었다. 첫 번째 그룹의 사람들에겐 “에베레스트 산이 600m보다 높을까요, 낮을까요?”라는 질문을 먼저 던진 뒤 이들의 답변과 관계없이 이 산의 정확한 높이를 다시 추정하게 했다. 이 사람들의 추정치 평균은 2400m로 매우 낮게 나왔다. 두 번째 그룹의 사람들에겐 “에베레스트 산이 1만4000m보다 높을까요, 낮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진 뒤 산의 높이를 물었는데 이들의 평균 추정치는 1만3000m였다고 한다. 처음에 제시된 기준점에 따라 답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시장에서 상인들과 흥정을 할 때에도 흔히 처음에 부른 가격이 흥정의 최종 가격대를 좌우하게 된다. 그게 상인이 부른 가격이든 손님이 부른 가격이든 말이다. 그러므로 흥정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선수를 쳐서 나에게 유리한 가격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 좋은 전략이 된다. 그 가격을 기점으로 흥정은 시작되기 때문이다(물론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시작하면 흥정이 시비로 변할 수도 있다). 이렇게 사람들이 먼저 얘기된 숫자를 마음속에 각인하는 효과를 앵커링(anchoring·닻내림)이라고 한다.

우리가 투자를 할 때 기점이 되는 가격은 말할 나위 없이 매입가, 즉 본전이 된다. 투자자들은 항상 지금이 본전 대비 이익인지 손실인지를 따지고 든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 기준가가 바뀌기도 한다. 만약 주가가 상승해서 한 번 그 주식이 고점을 쳤다면 그 고점이 새로운 기준가로 변한다. 투자자는 주가가 그 고점에 갔을 때의 기분을 이미 느껴봤고 그 가격대를 또 다른 나의 본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증시가 고점 대비 약간 하락하면서 주춤하는 경향을 보이자 시장에서는 다시 비관론이 고개를 드는 모습이다. 비관론이 만약 논리적이라고 판단되면 주식을 파는 것이 마땅한데, 투자자들은 얼마 전에 경험했던 고점에 미련이 남아 지금 가격대에 팔기가 싫을 수 있다. 또 만약 지금 팔았다가 바로 주가가 반등하면 그야말로 낭패다. 바로 전 고점에 대한 미련이다.

이처럼 주가가 상승을 하다가 다시 하락하면 전 고점은 또 하나의 숫자로 각인이 되고 투자자들은 그 고점을 본전으로 여긴다. 그 숫자에 애착의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를 앵커링과 수정의 효과(anchoring & adjustment bias)라고 한다. 이런 경험은 많은 투자자들이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많은 투자자들의 발목을 붙잡고 심한 경우 하락장의 바닥까지 끌어내리는 무시무시한 함정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고 그래서 기억하는 동물이며 결국 후회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큰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부터 잘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의 가격 대비 주식의 가치와 시장 상황이 중요할 뿐이지 이전에 이 주가가 얼마였다는 기록은 그저 허망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이는 마치 오래돼 허름하고 유행에 맞지도 않는 구식 명품 옷을 나 혼자 ‘좋아라’ 하고 입고 다니는 것과 같다.
대신증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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