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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조조정 칼끝에 선 김우중 “李원장, 이헌재 좀 불러내줘”

    구조조정 칼끝에 선 김우중 “李원장, 이헌재 좀 불러내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나와 고교 동창이다. 대구 피란시절이나 재학시절부터 우리는 비교적 가깝게 지냈다. 나는 정치를 시작한 후 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선거 같은 대사를 치를 때는 듬뿍 지원을 받았지만 평소엔 절대로 받지 않았다. 건전한 우정을 유지해야지, 자칫 재벌의 심부…

    • 2015-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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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기부에서 일하게 해달라”… 밀려드는 인사 청탁

    “안기부에서 일하게 해달라”… 밀려드는 인사 청탁

    1998년 3월 5일 나는 안기부장으로 취임하였다. 16년 만에 다시 국가정보기관으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수장으로 왔다. 한편 감개무량했고, 또 한편으로 ‘내가 다시 온 것이 과연 잘한 일인가’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개혁 작업에 착수했다. 돌이켜 생각하니 나는 이미 여러 차례…

    • 2015-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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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보기관에서 노벨상 추진… 나중에 괜찮겠소?”

    “정보기관에서 노벨상 추진… 나중에 괜찮겠소?”

    내가 김한정 군을 만난 것은 1997년 대선 막바지였다. 그는 92년 대선 때는 김대중 후보의 공보비서였다. 영어에 능통하여 나는 그를 외신 담당으로 배치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는 이듬해 안기부장으로 임명되었다. 5월 말경 김한정이 찾아왔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박사…

    • 201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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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S 노벨상 작전에 깜짝… “우리도 서둘러야겠습니다”

    YS 노벨상 작전에 깜짝… “우리도 서둘러야겠습니다”

    1994년 4월 어느 날 김대중(DJ)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이 전화를 했다. 이영작 박사를 나에게 보낼 터이니 자세한 설명을 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정동채 비서실장이 이영작 박사 대신에 유종근 박사라는 재미교포를 데리고 왔다. 김 이사장의 소개 편지까지 가지고 왔는데…

    • 2015-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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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파에서 시간 때우던 김재록 “제가 한 건 하겠습니다”

    소파에서 시간 때우던 김재록 “제가 한 건 하겠습니다”

    1997년 대선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11월 20일경 김대중 후보가 전화를 걸어 왔다. “정동영 대변인이 누구를 데리고 갈 테니 면담을 한 뒤 운동본부에서 일하도록 해 주시오.” 정동영이 웬 신사를 데리고 왔다. 이름은 김재록. 한나라당 이한동 의원의 정치특보 출신이라고 했…

    • 201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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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J “昌에 5~6%P 앞선다잖아”… 갤럽보다 처조카 더 신뢰

    DJ “昌에 5~6%P 앞선다잖아”… 갤럽보다 처조카 더 신뢰

    DJ에게는 이영작 박사라는 ‘충성스러운 처조카’가 있다. 그는 한때 미국 연방정부 공무원을 지낸 우수한 통계학자로, 사회현상 해석 방법에 대하여 크게 인정을 받았다. 그는 13년간 그의 고모부를 돕기 위하여 여러 차례 대선에 참여하여 직접 뛰었다. 1997년 대선 승리 이후 그는 …

    • 2015-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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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P 밀명 받은 개헌연구팀에 YS측 - 안기부 요원이…

    JP 밀명 받은 개헌연구팀에 YS측 - 안기부 요원이…

    1997년 6월 10일, 새정치국민회의 안에 야권대통령후보 단일화 추진위원회(대단추)가 처음으로 구성되었다. 위원장은 한광옥, 부위원장은 박상천이 맡기로 했고, 위원으로 조세형, 김봉호, 김영배, 김근태, 박상규, 이종찬, 김인곤, 임채정 그리고 간사로 박광태가 임명됐다. 자민련과…

    • 201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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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주 한병 들고 조순과 담판… 대선출마 고집 못꺾어

    양주 한병 들고 조순과 담판… 대선출마 고집 못꺾어

    자민련과의 단일화 교섭이 별 진전을 보지 못하는 시기에 조순 시장이 서울시장 자리를 중도에 사퇴하고 대권가도에 나선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정말 경악했다. 조순 서울시장 출마를 막후에서 DJ(김대중)에게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이 나였고…

    • 2015-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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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판은 ‘동북아연구모임’… DJP연합 작업이 시작됐다

    간판은 ‘동북아연구모임’… DJP연합 작업이 시작됐다

    1996년 4월의 15대 총선은 새정치국민회의의 완패로 끝났다. 나도 낙선했다. 김대중(DJ) 총재는 당사에 나타나지 않고 자택에 칩거하거나, 아니면 아태재단 사무실에 나와서 면회도 일절 사절하고 사태를 정관하고 있었다. 모두 사기가 떨어지고 절망한 시점에 나는 어떻게 하든지…

    • 201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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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서 만난 DJ “이기택 - 박찬종 - 김근태와 손잡으세요”

    영국서 만난 DJ “이기택 - 박찬종 - 김근태와 손잡으세요”

    정주영 국민당과의 합당이 무산된 뒤 나는 답답한 심정에 1993년 1월 6일 동교동으로 DJ를 찾아갔다. 마침 생일이어서인지 내방객이 많았다. “지난번 대선에서 도와드리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그보다 이 의원과 인연을 맺어 좋은 정치를 할까 했는데 유감스럽게 됐습니다.”…

    • 2015-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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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주영 회장도 대통령 출마하는데… 나라고 못할 것 있나”

    “정주영 회장도 대통령 출마하는데… 나라고 못할 것 있나”

    내가 진로를 놓고 장고하고 있을 때 나와 김영삼(YS) 대표 간의 화해를 추진한 사람들도 많았다. 고교 동창인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앞으로 당을 떠나든 아니면 남든, 또는 어딜 가게 되든 일단 YS와 만나 대화를 해봐라. 그러지 않으면 대인(大人)이라고 할 수 없지 않느냐?”…

    • 2015-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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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분 인사말조차 안된다니… 이게 무슨 경선입니까”

    “5분 인사말조차 안된다니… 이게 무슨 경선입니까”

    ▼ 김옥숙의 한마디 “그럼 李의원도 盧心을 파세요” ▼ 노태우의 가족회의서 결정난 차기 대권 경선 도중 이종찬은 김복동 의원을 은밀히 만났다. 노태우 대통령의 처남이지만, 이종찬과도 호형호제하는 선배였다. 그런데 김복동의 첫마디가 좀 이상했다. “이봐, 아우! 이제 이쯤…

    • 2015-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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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S 대항마, 박태준은 안돼” 盧는 서류봉투를 탁탁 쳤다

    “YS 대항마, 박태준은 안돼” 盧는 서류봉투를 탁탁 쳤다

    1992년의 민주자유당(민자당) 대통령후보 경선은 나의 정치인생에서 결정적인 분수령이었다. 그만큼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러나 경선 과정은 나의 한계를 확인한 계기이기도 했다. 정치인은 결과로 이야기하는 존재다. 그해 3월 24일 치러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자당은 엄혹한 …

    • 201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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