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의미와 가치 담은 클래식 카 ‘컨티뉴에이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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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재규어의 컨티뉴에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완성된 XKSS. 1950년대의 고전미가 그대로 살아 있다.
재규어의 컨티뉴에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완성된 XKSS. 1950년대의 고전미가 그대로 살아 있다.

오래전 만들어진 차를 흔히 올드 카(old car) 또는 클래식 카(classic car)라고 부른다. 두 표현은 우리나라에선 비슷한 개념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뜻 차이가 크다. 클래식이라는 단어가 ‘당대를 대표할 만큼 뛰어나 모범이나 기준으로 삼을만한 것’에 붙는 수식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올드 카는 만들어진 뒤 오랜 세월이 흐른 모든 차를 일컫는 보편적 표현이지만, 클래식 카는 그중에서도 역사적 의미와 영향력, 상징성 면에서 뛰어난 가치를 지닌 차에 대한 표현이다. 올드 카 중에서도 보존 가치가 높은 것이 클래식 카라고도 할 수 있다.

클래식 카가 지닌 가치는 매매나 경매를 통해 거래되는 금액을 통해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는 있다. 클래식 카 매매와 경매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이 지면을 통해 따로 다룰 계획이다. 정말 가치가 높은 차들은 수십억 원대로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물론 거래 금액에는 역사적 가치뿐 아니라 희소성, 디자인, 원형 유지 상태 등 여러 요소가 영향을 준다.

이야깃거리나 사연이 있을수록 시장에서 시세가 높게 형성되고, 모터스포츠에서 큰 업적을 남긴 차들의 인기가 높다. 역대 클래식 카 경매에서 최고 낙찰가 기록을 세우는 차들이 대개 세계적인 모터스포츠 이벤트에서 유명 선수가 몰고 우승을 차지한 경주차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모터스포츠 역사가 길고 저변이 넓은 유럽과 미국에서는 클래식 경주차가 많은 이에게 살아 있는 전설 대접을 받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의미 있는 차들을 손에 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기에 클래식 카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새 차와 달리 클래식 카는 수요가 아무리 많아도 이미 만들어진 차의 수가 정해져 있는 만큼 공급이 한정돼 있다. 인기가 많을수록 가치는 치솟기 마련이다. 실제 경주에 출전했던 차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처음부터 적은 수만 만들어진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경주 중 사고로 폐차된 것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품과 마찬가지로 인기 있는 클래식 카는 복제품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복제품을 진품으로 속여 파는 일도 벌어질 정도다. 복제품은 진품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진품을 만든 회사와 클래식 카 시장에서는 눈에 불을 켜고 복제품이 시장에 나오는 것을 막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역전의 명차’를 찾는 사람들의 소유욕을 채우는 한편 클래식 카에 대한 관심과 가치를 유지하는 일에 손을 댄 자동차 회사가 있다. 스포츠카 생산과 모터스포츠 활동에 뿌리가 깊은 ‘재규어’와 ‘애스턴 마틴’이 대표적이다.

애스턴 마틴 DB4 G.T. 컨티뉴에이션은 과거 제작방식을 대부분 그대로 따라 만들어진다. 애스턴 마틴 제공
애스턴 마틴 DB4 G.T. 컨티뉴에이션은 과거 제작방식을 대부분 그대로 따라 만들어진다. 애스턴 마틴 제공

이들이 했거나 하고 있는 작업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생산이 중단된 명차를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다시 생산하는 것으로, 클래식 카 업계는 물론 자동차 애호가들에게도 큰 관심을 얻었다. 그들은 스스로 하는 작업을 가리켜 ‘컨티뉴에이션(Continuation)’이라고 한다. 컨티뉴에이션은 ‘계속’, ‘지속’이라는 뜻으로 잠시 중단했던 작업을 계속 이어 나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말로는 ‘계속생산’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굳이 연속성을 강조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과거의 설계를 바탕으로 부품 하나하나를 모두 다 새로 만들어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수십 년 전에 만들다가 만 상태로 보관돼 있던 차를 지금에 와서 마저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단순한 재생산이 아니라 미완의 차를 완성하는 작업이 컨티뉴에이션인 셈이다.

완성된 재규어 XKSS 컨티뉴에이션 모델의 실내. 과거 명차의 모습을 그대로 지닌 새 차다. 재규어 제공
완성된 재규어 XKSS 컨티뉴에이션 모델의 실내. 과거 명차의 모습을 그대로 지닌 새 차다. 재규어 제공

재규어는 2014년에 여섯 대의 라이트웨이트 E-타입을 계속생산했다. 라이트웨이트 E-타입은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유명한 재규어 스포츠카인 E-타입에 뿌리를 둔 경주차로, 1963년부터 1964년까지 경주용으로 한정 생산되었다. 라이트웨이트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성능을 높이기 위해 차체 전체를 알루미늄으로 만들고 다양한 부품을 경량화해서 차체 무게를 일반 E-타입보다 100kg 이상 줄인 것이 특징이다. 재규어는 원래 이 차를 18대 생산할 계획이었지만 완성된 것은 12대뿐이었다. 나머지 6대는 차체 일부만 조립된 상태로 보관돼 있다가 2014년에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제작이 계속돼 완성됐다. 재규어는 라이트웨이트 E-타입 작업을 통해 복원이나 복각을 뛰어넘어 과거의 제작 방식을 지금의 환경에 맞춰 재현하는 노하우를 얻었고, 그와 같은 작업이 사업 차원에서도 가능성이 있음을 확인했다.

자신감을 얻은 재규어는 2016년 3월에 브랜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경주차 중 하나로 손꼽히면서 의미가 큰 모델인 XKSS의 컨티뉴에이션을 결정하고 발표했다. XKSS는 1955년과 1956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재규어에 우승컵을 안겨준 D-타입 경주차를 바탕으로 만든 스포츠카다. 자동차 애호가로 유명했던 영화배우 스티브 매퀸의 애차 중 하나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재규어는 25대의 XKSS를 생산할 예정이었지만 1957년에 있었던 공장 대화재 때 9대가 불타버리면서, 16대만 완성된 채 생산이 중단되고 말았다. 즉 XKSS 컨티뉴에이션은 세상 빛을 보지 못한 9대의 XKSS의 생산을 계속함으로써 계획을 마무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애스턴 마틴 DB4 G.T.는 1959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해 유명해졌다. 애스턴 마틴 제공
애스턴 마틴 DB4 G.T.는 1959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해 유명해졌다. 애스턴 마틴 제공

애스턴 마틴의 컨티뉴에이션 대상은 1959년부터 1963년까지 생산된 DB4 G.T.다. DB4 G.T.는 시판 스포츠카인 DB4를 경량화한 경주용 모델로, 데뷔한 해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출전해 우승을 거뒀다. 애스턴 마틴은 원래 DB4 G.T.를 100대 생산할 계획이었지만 75대만 생산한 뒤 더는 생산하지 못했다. 이에 애스턴 마틴은 계속생산 물량을 25대로 정해 원래 계획했던 생산대수를 채운다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애스턴 마틴은 미완성된 DB4 G.T.를 1988년과 1992년에도 소량 재생산한 적이 있는데 그 차들은 대당 약 100만 달러에 판매되었다. 당시 재생산된 차들은 지금 시세가 두 배 정도 되었다. 물론 1960년대에 생산된 오리지널 모델의 가치는 그보다 훨씬 높다.

재규어와 마찬가지로 애스턴 마틴의 컨티뉴에이션도 기본적으로 60여 년 전 처음 생산되었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진다. 기본 설계에서 개별 부품에 이르기까지 최대한 당시의 것을 활용하고, 없는 부품을 새로 만들거나 차체를 가공하는 등 작업도 옛날 방식을 고수한다.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DB4 G.T. 컨티뉴에이션 모델의 차대번호는 오리지널 DB4 GT의 마지막 차에 새겨진 것에서부터 이어진다. 물론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현대적인 설비나 컴퓨터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완성된 차의 주행특성은 오리지널 모델의 특징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이 애스턴 마틴의 주장이다. 애스턴 마틴 DB4 G.T. 컨티뉴에이션의 첫 완성품은 지난해 12월 14일에 처음 공개됐고, 나머지 24대는 올해 안에 완성돼 구매자에게 인도될 예정이다.

재규어와 애스턴 마틴이 각각 재생산 계획을 발표한 직후 예정된 생산 분량에 대한 예약은 모두 끝났다. 재규어 XKSS는 대당 100만 파운드(약 15억 원), 애스턴 마틴 DB4 G.T.는 대당 약 150만 파운드(약 22억5000만 원)가 넘는 값에 판매됐다고 한다. 참고로 애스턴 마틴 DB4 G.T.의 원형으로 1959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출전했던 차는 2017년 경매에서 676만5000달러(약 72억3000만 원)에 낙찰된 바 있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올드 카#클래식 카#모터스포츠#역전의 명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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