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하루 4시간 장 보고, 4시간 재료 준비 저녁 손님만 8명 안팎 받아 즉석 조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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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스타 셰프 기쿠치 다카시 씨
도쿄서 정통 일식당 운영…5년 연속 ‘미쉐린 가이드’
별 두개 식당으로 유명…담백하고 정갈한 맛이 특징
5월 말까지 벌써 예약 꽉차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손님이 바로 알 수 있게 해야”

시장에서 장을 봐서 손님상에 내기까지 모든 과정을 하나하나 직접 챙기는 기쿠치 다카시 셰프.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함과 정갈함이 미쉐린 ‘투스타’에 5년 연속 선정된 비결이다. 신라호텔 제공
시장에서 장을 봐서 손님상에 내기까지 모든 과정을 하나하나 직접 챙기는 기쿠치 다카시 셰프.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함과 정갈함이 미쉐린 ‘투스타’에 5년 연속 선정된 비결이다. 신라호텔 제공
봄나물 무침을 한 젓가락 입에 넣자 입속 한가득 봄이 찾아왔다. 미나리와 두릅, 고사리를 연한 간장소스에 무쳐 내놓은 이 소박한 요리에 따뜻한 햇볕 아래 핀 유채꽃 같은 봄기운이 가득 들어 있었다. 코스로 함께 나온 옥돔 튀김과 전복 찜에서는 바다 향이 그대로 전해졌다.

“새벽에 가락시장에 가서 직접 장을 봐왔습니다. 한국에서 난 재료로 음식을 해본 것은 처음이네요. 맛이 괜찮나요?”

내놓는 요리만큼 소박한 인상을 가진 기쿠치 다카시 셰프가 말했다. 그는 일본 도쿄 니시아지부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기쿠치’라는 정통 일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5년 연속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 두 개 식당으로 선정돼온 온 스타 셰프다. 그런 그가 20∼22일 한국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짧은 일정으로 신라호텔을 찾았다.

기쿠치 셰프가 두부와 전복, 옥돔 본연의 맛을 살려 조리한 정통 일식 코스 요리의 일부.
기쿠치 셰프가 두부와 전복, 옥돔 본연의 맛을 살려 조리한 정통 일식 코스 요리의 일부.
전 세계에서 예약문의가 끊이지 않는 스타 셰프지만, 그의 영업 방식은 전혀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다. 종업원도 두지 않고 혼자서 재료 구매부터 조리까지 다 하다 보니 저녁 장사만 하는 그의 식당에서 하루에 받을 수 있는 손님은 많아야 8명 안팎이다. 즉석에서 요리해 그대로 손님 상에 내는 자연스러운 요리법이 가장 큰 특징이다. 담백하고 정갈한 그의 음식을 맛보기 위한 이들로 벌써 5월 말까지 예약이 꽉 차 있다.

예약이 힘들어 먹어본 이들도 그만큼 적어 한국에서 그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에 대한 궁금증을 1문 1답으로 정리해봤다.

―하루에 받는 손님이 너무 적은 것 아닌가요.


셰프와 직접 얼굴을 마주 보며 앉아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카운터 자리가 11자리뿐입니다. 차가운 요리는 차갑게, 따뜻한 요리는 따뜻하게 바로 먹을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한데, 손님이 많으면 음식 온도 조절이 힘들거든요. 또 혼자 일을 다 하기 때문에 손님이 많아도 감당이 안 돼요.

기쿠치 셰프가 두부와 전복, 옥돔 본연의 맛을 살려 조리한 정통 일식 코스 요리의 일부.
기쿠치 셰프가 두부와 전복, 옥돔 본연의 맛을 살려 조리한 정통 일식 코스 요리의 일부.
―음식의 정갈함이 돋보입니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조리법이 핵심이기 때문에 반드시 제철 재료가 필요해요. 하루에 4시간 장을 보고, 4시간 재료 준비를 한 뒤 저녁 장사만 합니다. 좋은 식재료에 간을 최소화하고, 본연의 맛을 끌어올려 담백한 요리를 하는 데 힘을 쓰는 거죠.

―‘갓포 요리’의 대가라고 칭하는데, ‘갓포 요리’가 무엇인가요.


일본어로 ‘갓포’라는 것은 칼로 잘라서 끓이거나 볶는다는 의미로 말 그대로 ‘요리를 한다’는 뜻입니다. 하위 개념으로 고급 코스요리인 가이세키 요리나 정진요리, 카운터 갓포요리 등으로 나뉘는 거죠. 이 가운데 제가 하는 요리는 카운터 갓포요리에 가깝습니다. 이는 에도시대에 차를 마시기 위해 만든 코스요리의 일종인데, 즉석에서 해준 요리를 차와 함께 간단하게 먹었던 것에서 유례합니다. 바에서 직접 해주는 요리인 거죠.

―요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4가지 주안점이 있어요. 첫 번째는 계절감을 중시해서 시장에 가서 제철에 나는 식재료를 골라야 하고, 두 번째는 손님이 눈으로 보고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바로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코스에 야채와 생선이 들어가는데, 그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것이 세 번째고, 마지막은 전채부터 디저트까지 간장의 맛을 잘 느낄 수 있도록 통일감 있는 맛으로 배치하는 겁니다.

―정갈함이 미쉐린 별 두 개의 비결인가요.

(이 질문에 그는 ‘비결’이라는 단어를 서너 번 되뇌며 굉장히 쑥스러워했다.) 일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즐거움이에요. 요리를 만들면서 고객과 직접 얼굴이 맞닿기 때문에 제가 즐겁지 않으면 고객도 즐겁지 않죠.

―좀 추상적인데요. 요리 철학이 있나요.

예전에는 조리장이 밑에 있는 직원들한테 검은색인 물건을 두고 그걸 흰색이라고 하면 그렇게 믿어야만 하는 강압적인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 답답함이 손님에게도 전해진다는 것을 그땐 몰랐죠. 하지만 토마토를 올리브오일에 데쳐서 그대로 내주는 간단한 요리라 하더라도, 즐겁게 만들면 손님에게도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된 거죠. 행복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저의 요리 철학입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q매거진#가쿠치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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