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패션+미술’ 예쁜가방 리뽀, 산업에 예술을 입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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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미술관 ‘컬러 유어 라이프’ 전

리뽀가 대림미술관 D라운지의 ‘슈팅 스튜디오’를 분홍색 가방 제품과 각종 소품으로 가득 채워 놨다.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기념 촬영을 한 뒤 즉시 이메일로 사진을 받아볼 수 있다. 리뽀 제공

리뽀가 대림미술관 D라운지의 ‘슈팅 스튜디오’를 분홍색 가방 제품과 각종 소품으로 가득 채워 놨다.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기념 촬영을 한 뒤 즉시 이메일로 사진을 받아볼 수 있다. 리뽀 제공
어른 두 명이 겨우 앉을 만한 공간은 핑크빛으로 가득 찼다. 의자와 쿠션, 사다리, 선반까지 농도의 차이가 있지만 방 전체가 분홍으로 물들어 있다.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대림미술관 건물 바로 옆 공간인 D라운지의 ‘슈팅 스튜디오’ 내부 모습이다. 이곳은 프랑스 가방 브랜드인 ‘리뽀(Lipault)’가 대림미술관의 ‘컬러 유어 라이프’ 전을 후원하기 위해 설치했다.

슈팅 스튜디오는 이름 그대로 관람객들이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곳이다. 본전시는 아니지만 관객들과 예술의 접점을 찾는 장소다. 촬영 장소 뒤에 붙은 리뽀의 브랜드 팻말과 곳곳에 전시된 가방 제품만 없었다면 그저 아기자기한 스튜디오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리뽀 관계자는 “대림미술관의 올해 첫 전시가 생활 속 색상과 관련된 것이라 다양한 색상 구현에 관심이 큰 리뽀가 후원에 나섰다”며 “화사한 봄날에 미술관 나들이를 나온 관람객들이 따로 찾아오기 좋은 장소”라고 설명했다. 대림미술관의 본전시는 성인 5000원(미취학 아동 2000원)의 관람료를 내야 하지만 리뽀가 운영하는 슈팅스튜디오는 무료로 찾아갈 수 있다. 화사한 분홍빛 스튜디오 안에서 기념사진을 찍어 자신의 이메일로 바로 받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가방 브랜드의 문화 마케팅


리뽀의 이번 후원처럼 패션 브랜드가 미술관, 예술가와 협업하는 것은 이제 보기 드문 사례가 아니다. 리뽀는 2005년 프랑스의 디자이너인 프랑수아 리포베스키가 설립한 브랜드다. 생동감 넘치는 색상과 감각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면서 미국과 유럽 등지의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번 대림미술관 전시는 2014년 리뽀를 인수한 쌤소나이트가 후원했다. 쌤소나이트 코리아 관계자는 “문화 마케팅을 통해 고객과의 접점을 넓히겠다는 것이 쌤소나이트 코리아의 생각”이라며 “전시의 테마가 우리의 상품과 잘 맞는다고 판단될 경우엔 어떤 예술가, 미술관과도 협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쌤소나이트 코리아는 2011년 소나무 연작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배병우 씨와 협업하면서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시작했다. 2014년에는 디자이너 이상봉 씨와 함께 윤동주 시인의 시 작품인 ‘별 헤는 밤’을 가방 제품에 새겨 넣었다. 지난해엔 매화 그림을 20년 동안 그린 동양화가 문봉선 씨의 매화 작품을 자사 베스트셀러 여행 가방 중 하나인 ‘코스모라이트’에 넣어 출시하기도 했다.

제품에 바로 도입할 수 있는 유명 아티스트와의 협업뿐 아니라 신진 작가 지원에 나서기도 한다. 쌤소나이트 코리아는 지난해 신진 예술작가를 후원하는 ‘2015 어포더블 아트페어 서울’(AAF 서울)을 후원하고 자체적으로 경쟁 전시회도 열었다. ‘쌤소나이트 디자이너가 되어 보세요(Be a Samsonite Designer)’라는 제목으로 열린 해당 전시회에서는 다양한 가방에 적용될 수 있는 디자인을 받아 최종적으로 신진작가 6명의 작품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가방 브랜드가 예술가 지원에 나서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쌤소나이트 코리아 측은 “쌤소나이트는 여행 가방을 만드는 회사이며 ‘여행’을 주제로 제품을 만든다”며 “여행이라는 테마는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하기도 하는 만큼 협업하기 쉬운 편”이라고 설명했다. 예술 부문으로부터 끊임없이 제품과 관련된 영감을 수혈받을 수 있는 만큼 기업 입장에서 문화 마케팅이 필수적인 요소라는 설명이다.
산업 브랜드와 예술계의 협업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리뽀가 설치한 슈팅스튜디오(왼쪽 위)와 페인트 브랜드 듀럭스가 꾸민 일상적인 가정의 내부 모습(오른쪽위)이 대림미술관 전시에 등장했다. 가방 브랜드인 쌤소나이트는 신진 작가들을 후원하는 전시를 열고(왼쪽 아래) 동양화가인 문봉선 씨의 매화 작품을 자사 가방에 넣어 출시하기도 했다. 대림미술관·쌤소나이트 제공
산업 브랜드와 예술계의 협업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리뽀가 설치한 슈팅스튜디오(왼쪽 위)와 페인트 브랜드 듀럭스가 꾸민 일상적인 가정의 내부 모습(오른쪽위)이 대림미술관 전시에 등장했다. 가방 브랜드인 쌤소나이트는 신진 작가들을 후원하는 전시를 열고(왼쪽 아래) 동양화가인 문봉선 씨의 매화 작품을 자사 가방에 넣어 출시하기도 했다. 대림미술관·쌤소나이트 제공

산업을 만난 미술관


대림미술관은 다양한 기업과 함께 협업 전시를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단순히 기업들의 제품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 예술의 차원에서 산업 생산물을 전시하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제품 속에 녹아든 문화적 함의를 쉽게 짚으면서 미술관의 문턱이 높다고 느끼는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11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인 ‘하이브로우’와 함께 진행한 팝업(임시) 전시다. 해당 전시는 미술관에서 즐기는 캠핑을 테마로 일상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예술 전시를 지향했다. 미술관의 별관에 해당하는 D하우스 1층에 전시와 관련된 벼룩시장을 열기도 했다.

올해 2∼8월에 진행되는 대림미술관 컬러 유어 라이프 전에도 산업체 전시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우선 색상이라는 테마에 맞춰 필립스의 조명 기기가 등장했다. 필립스는 3월 한 달 동안 매주 목요일 오후 6∼8시 대림미술관 D라운지에서 ‘컬러 나잇’ 전시를 한다. 관람객들은 필립스가 판매하는 조명 제품인 ‘휴(hue)’ 체험을 통해 다양한 색상을 감상하고 김사월, 오지은, 이아립 등 여성 인디 싱어송라이터들의 공연도 감상할 수 있다.

이 밖에 페인트 생산기업인 듀럭스, 핀란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이딸라 등은 미술관 본 전시 안에 자신들이 만든 제품을 오브제로 제공하기도 했다.

기업 차원의 전시는 아니지만 대림미술관은 2011년 럭셔리 브랜드인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의 사진전 ‘워크 인 프로그레스(Work in progress)’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밖에 지난해 1월에는 매일유업 후원으로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의 사별한 부인인 고 린다 매카트니의 사진전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 전시를 열었다.

대림미술관 관계자는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미술관이 될 수 있도록 그동안 사진과 패션, 디자인 등의 분야에서 기업 및 브랜드와 연계된 전시를 해 왔다”며 “미술관에 대한 관객들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앞으로도 이 같은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q매거진#대림미술관#리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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