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리면 감염될까’ 공포의 주사침… 안전 의료기기 지원해 사고 막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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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Beauty]병원 내 감염사고


수도권에 있는 한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임신 8주차 간호사인 김모 씨(31)는 응급실에서 일하게 될 때면 늘 불안하다. 응급실에선 환자의 정확한 질환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급하게 채혈이나 응급처치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환자와의 밀접한 접촉은 물론이고 혈액이나 분비물에 노출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

김 씨는 “응급실에서는 1분, 1초가 급한 상황이 많아 예방 교육 수칙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많다”며 “항상 조심하고, 스스로 위기의식을 가지려고 하지만 ‘언제든 사고가 터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병원 질병 발생률 2배나 높아

의료진 감염사고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주사나 카테터 등에 찔리는 자상(刺傷)사고다.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전국 62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 의료인의 주사바늘 등에 의한 ‘자상사고’가 3744건이나 발생했다. 또 자상사고의 원인 환자에는 에이즈, B형 간염, C형 간염 등을 앓는 환자가 포함된다.

병원 내의 의료진들은 주사바늘 주사에 의한 감염뿐만 아니라 최근 메르스 사태처럼 환자 검체에 의한 접촉성 감염 위험에도 항상 노출돼 있다. 실제로 다양한 환자들이 모여 있는 병원은 질병 발생 위험성이 큰 곳이다.

미국 노동통계국 조사에 따르면 의료기관에서의 질병 발생률은 다른 업종보다 높다. 전체 근로자의 3.8%에게서 발생하는 사고와 질병 발생률이 병원에서는 6.8%로 2배 가까이 높기 때문이다. 국내 병원 관계자는 “병원 내에서 일상적인 진료 행위 중 의료진의 감염 위험을 막는 세부적인 조치 마련은 아직 미흡하다는 평가가 많다”고 설명했다.

침습적 의료기기가 특히 문제


이처럼 의료진의 병원 내 감염과 관련된 심각성이 제기되면서 이를 막기 위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최근 진행한 ‘의료기기 안전문제 우선순위 설정 연구’를 통해 침습적 의료기기로 인한 감염 위험성이 특히 문제라고 지적했다. 주사바늘 같은 날카로운 의료용 도구로 인해 혈액과 체액에 노출되는 사고가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의료인의 자상사고 예방을 연구하는 울산대 간호학과 정재심 교수는 “주사바늘 등 각종 의료기기로 인한 위험성은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면서 “의료진들이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는 혈액 매개 감염질환에 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7월에 열렸던 ‘간호사 직업안전과 감염 예방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도 의료인들이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집중적으로 나왔다. 이런 비판의 배경에는 병원들이 의료진 보호에 도움이 되는 안전성 높은 의료기기 구입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재정적, 제도적 여건이 조성돼 있지 않다는 점이 있다.

6월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보호장구를 착용한 국립중앙의료원 의료진이 메르스 감염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격리병실로 들어가고 있다. 동아일보DB
6월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보호장구를 착용한 국립중앙의료원 의료진이 메르스 감염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격리병실로 들어가고 있다. 동아일보DB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 필요


외국에선 정부 차원에서 의료인 감염 위험 줄이기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대만의 경우만 해도 2006년부터 전염성이 높은 감염 관련 질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같은 혈액 매개 감염병, 응급실에서의 안전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특별 급여를 인정했다.

일본, 캐나다, 호주 같은 선진국은 물론이고 러시아와 브라질 같은 국가에서도 최근 안전 의료기기 사용 의무화 등 의료진 감염을 막기 위한 조치가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EU)은 2013년 5월 각국이 의료 관련 자상사고 예방을 위한 법령을 제정하도록 했고, 호주는 2001년부터 자상사고 방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 안전기구와 가이드라인 확보 등을 필수화했다.

정 교수는 “일부 종합병원에서는 의료종사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자체 비용으로 안전기구를 사용하고 있지만, 더 이상 병원에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감수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병원들이 의료인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무리 없이 취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수가 조정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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