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길이 없다고? 그럼 길을 만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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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대한민국 인재상’ 고교생 수상자 2인

《 ‘창의인재’ ‘융합인재’ ‘글로벌 인재’…. 자녀를 남다른 인재로 키우는 교육법은 무엇일까? 새해를 맞아 자녀가 학교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앞으로 명문대에 합격하기를 기원하는 학부모가 많지만,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최근 선정해 발표한 ‘2014 대한민국 인재상’ 수상 학생들을 살펴보면 남다른 인재가 되는 기준은 결코 성적순이 아닌 듯하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만의 길을 걷고 또 만들어가는 인물이다.

2001년부터 매년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뽑아 시상해온 ‘대한민국 인재상’은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해 특별한 성취를 한 인재를 발굴하고 이들의 성장을 격려하기 위한 것.

올해는 고등학교 교사·교장, 대학교수, 중앙행정기관 등의 추천을 받은 전국 고교생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지역별 심사와 중앙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100명(고교생 60명·대학생 40명)이 선정됐다.

교육부의 추천을 받아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은 박성호 군(인천국제고3)과 손수빈 양(서울 송곡관광고 3·경희대 ‘Hospitality 경영학부’ 합격)을 최근 만났다. 박 군은 ‘폐가구로 스피커를 만들어 문화 소외계층을 돕는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스피커 제작업체를 직접 운영하는 ‘고교생 사장’. 손 양은 요리에 대한 관심을 동화, 캐릭터 제작으로 확장시켜 미래의 ‘한식 외교관’이 되기를 꿈꾼다. 》

▼“원목스피커처럼 사회에 울림 주는 기업가 꿈꿔요” ▼

인천국제고 3학년 박성호 군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스피커와 음향기기에 관심을 가진 박 군. 하루에도 몇 번씩 중고 스피커를 판매하는 국내외 온라인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며 유명 스피커를 찾아봤다. 외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스피커가 적잖은 경우 우리나라에 수입되면 두 배 이상 비싸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렇게 시작된 중고 스피커 수입사업은 결국 스피커 제작업으로 꽃피었다.

“외국의 클래식 중고 스피커를 찾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았어요. 그런데 쓰던 스피커를 팔려는 외국인이 적다보니 수입 중고 스피커의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거죠. 외국인들이 왜 스피커를 팔려고 하지 않는지를 알아보았더니 국제거래를 신뢰하지 않아 자칫하면 사기를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크더라고요. 외국의 스피커를 제가 직접 구매한 뒤 이를 국내에서 팔면 가격도 낮추고 신용 있는 거래도 모두 가능해질 것이라는 판단에서 사업을 시작했어요.” (박 군)

박 군은 미국의 한 화물 운송 사이트를 활용했다. 사이트에선 개인 운송업자들의 평판을 확인할 수 있어 신뢰할 수 있는 운송업자를 섭외할 수 있었다. 이후 해당 운송업자가 외국 현지에서 판매자와 접촉해 스피커를 직접 구매토록 한 뒤 그것을 국내로 운송까지 해주도록 하는 시스템을 고안해냈다.

그렇다면 중고 스피커 구매에 필요한 자금은 처음 어떻게 마련했을까? 박 군은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부모님을 설득해 마련했다”고 했다.

“해외에서 직접 구매한 중고 스피커를 한국 온라인 중고장터에서 거래되는 가격보다 저렴하게 되팔았어요. 부모님께 빌린 돈을 모두 돌려드리고도 약 300만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지요(웃음).”(박 군)

박 군은 고2 때 벌써 교내에 창업 동아리 ‘비크’를 만들었다. 창업의 소재는 폐가구를 활용한 원목 스피커. ‘부아비츠’란 회사 이름도 정해 사업체로 정식 등록했다. 부아비츠는 프랑스어로 ‘나무’를 뜻하는 ‘bois’와 ‘소리’를 뜻하는 영어단어 ‘beats’의 합성어다.

‘저렴하면서도 좋은 음질의 고급 스피커는 없을까?’

바로 ‘폐가구’에서 박 군은 답을 찾았다. 고품질 목재로 케이스를 만든 스피커는 플라스틱, 합판 등으로 만들어진 것보다 울림이 깊고 음질도 좋아 음향기기 애호가들에게 인기를 끈다. 문제는 품질 좋은 목재의 가격이 높다는 사실이었다.

“스피커에 쓰이는 목재가 오래 건조될수록 좋은 소리를 낸다고 알려져 있어요. ‘집과 사무실에서 자연 건조되어온 가구를 활용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요.”(박 군)

박 군은 폐가구를 처리하는 곳을 찾았다. 원하는 목재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해 스피커 생산비를 줄였다.

“공공기관의 고충인 폐가구 처리에 드는 비용을 줄이면서 환경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지요.”(박 군)

작업실은 공사장의 빈 컨테이너 박스를 빌려 차렸다. 인천시 교육청의 동아리 지원사업인 ‘해드림 진로동아리’에 선정되어 지원받은 돈으로 스피커 제작 도구를 구입했다. 실용성과 디자인을 모두 갖춘 스피커를 만들기 위해 목재를 자르고 깎기를 반복했다. 어떤 스피커 부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지에 관한 전문정보를 얻기 위해 ‘음성음악공학’ 강의를 온라인으로 수강하기도 했다.

이렇게 만든 스피커는 고용노동부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공동 주최한 ‘2013 소셜벤처 경연대회’ 청소년 아이디어 부문에서 대상을, ‘제4회 국제 청소년 우수사업체 선발대회’ 국가대표선발전에선 최우수상을 받았다. 제작한 스피커 중 일부는 청소년·아동보호기관에 기증했다.

“노인과 장애아동 등이 문화적으로 소외받지 않도록 하는 한편 환경과 복지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적 기업가가 되고 싶어요.”(박 군)

▼“말 안 통해도 맛 통하니 마음도 통해요” ▼

서울 송곡관광고 3학년 손수빈 양


두께 4cm의 스크랩북 2권과 스프링노트 1권. 손 양의 지금을 있게 만든 ‘일등공신’들이다.

먼저 스크랩북 하나를 펼치니 ‘겨자소스를 곁들인 수삼 겉절이 롤과 솔잎 삼계탕’이라는 생소한 요리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겉절이 롤의 속을 자른 단면 사진이 붙어 있고, 사진 아래엔 조리 순서와 시간, 재료 등 요리법이 빼곡히 쓰여 있다. 이 스크랩북에 담긴 요리는 모두 손 양이 개발한 것. 2011년부터 3년간 손 양이 개발한 레시피는 45개가 넘는다.

또 다른 스크랩북에는 요리대회 수상실적, 학교 수행평가시간에 제출한 요리활동 관련자료가 담겼다. 스프링노트에는 동아일보에 2011년부터 1년간 연재된 ‘윤덕노의 음식이야기’ 칼럼을 오려 붙이고 자기 생각을 정리했다.

“남의 요리법을 따라하기보다는 나만의 요리를 만들고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어떤 맛을 좋아할까?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맛은 무엇일까? 길을 걸으면서도 생각하죠.”(손 양)

손 양은 대한민국 인재상 수상소감문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음식에 대한 사랑처럼 진실된 사랑은 없다.’

김치에 월남쌈을 ‘쏙

손 양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베트남에서 온 외숙모. 외숙모는 살아온 환경과 언어는 물론 마늘 맛이 강한 한국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힘들어했다. 손 양이 손을 내밀었다. 외숙모에게 “함께 음식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여러 음식을 만들다보니 한식과 베트남 음식은 비슷한 점이 많더라고요. 해산물과 숙주, 야채 등을 쌀 피에 싸먹는 월남쌈(‘고이꾼’)은 우리 전통의 궁중음식 구절판과 비슷해요.”(손 양)

약간의 변화만 준다면 베트남 사람과 한국사람 모두가 즐길 음식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외숙모와 함께 월남쌈을 백김치에 싸먹는 ‘김치 고이꾼’을 개발했다. 김치 고이꾼을 가족 모두 맛있게 먹는 모습에 뿌듯해진 손 양은 이윽고 창의적인 음식 레시피 개발에 돌입했다. 불고기 간을 약하게 해서 쌀 피에 싸먹는 ‘불고기 꾸아짜죠’와 베트남 짬뽕인 ‘퍼탑 깜’에 떡국 육수를 섞은 ‘퍼탑깜 떡국’은 그와 외숙모의 합작품.

“외숙모와 말은 잘 안 통해도 맛이 통하니 마음도 통하더라고요.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고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요리의 매력에 푹 빠졌어요.”(손 양)

요리사랑, 동화와 캐릭터로 표현

손 양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학교를 마치면 요리학원에 다녔다. 전문적인 요리 교육을 받고 싶어 특성화고 진학을 희망했지만 부모님은 처음엔 인문계고 진학을 바랐다.

“요리를 사랑하고 한식을 세계에 알리는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담임선생님께서 부모님을 설득해주셨어요.”(손 양)

서울 송곡관광고 조리과학과에 진학한 손 양. 그의 남다른 요리사랑은 ‘요리 동화’ 쓰기와 ‘식당 캐릭터’ 만들기로 이어졌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전래동화 ‘콩쥐팥쥐’를 변용해 콩쥐와 팥쥐가 장국을 두고 요리대결을 펼치는 동화 ‘콩장&팥장’을 썼다.

궁중요리의 대중화를 위해 자신이 10년 후 창업하겠다고 마음먹은 ‘어울짐’이란 이름의 한식당을 대표할 캐릭터 ‘여울’과 ‘어짐’도 직접 만들었다. 그가 고교시절 만든 동화 세 편과 캐릭터 네 개, 만화 한 편은 지난해 저작권협회에 등록됐다.

“요리를 소재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려보니 요리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참 많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이제는 음식의 맛과 멋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PD가 되겠다는 꿈까지 욕심을 낼 정도랍니다.”(손 양)

글·사진 김재성 기자 kimjs6@donga.com
유서현 인턴기자 cindy3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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