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직업 24시]데비 존스 선장의 ‘문어수염’ 어떻게 탄생했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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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크리처 디렉터’ 이승훈 씨

‘스타워즈’를 만든 조지 루커스 감독이 이끄는 미국 할리우드 최대의 특수효과 회사 ILM의 크리처 디렉터 이승훈 씨.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포스터 속 데비 존스 선장(오른쪽 사진)의 문어다리 모양을 한 수염도 이승훈 씨가 컴퓨터그래픽을 활용해 창조해낸 것이다. 이성은 기자 sunmin@donga.com
‘스타워즈’를 만든 조지 루커스 감독이 이끄는 미국 할리우드 최대의 특수효과 회사 ILM의 크리처 디렉터 이승훈 씨.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포스터 속 데비 존스 선장(오른쪽 사진)의 문어다리 모양을 한 수염도 이승훈 씨가 컴퓨터그래픽을 활용해 창조해낸 것이다. 이성은 기자 sunmin@donga.com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등장하는 선장 데비 존스. 그는 문어다리 모양을 한 징그러운 수염으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장면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실제로 문어를 배우의 턱에 붙였을까?

그럴 리 없다. 컴퓨터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컴퓨터그래픽(CG)’을 활용한 것.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아름다운 행성의 키 큰 원주민 ‘나비족’,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괴물 ‘디멘터’ 등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기묘한 캐릭터들은 모두 CG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다. 데비 존스, 나비족, 디멘터부터 트랜스포머의 옵티머스 프라임에 이르는 상상력 넘치는 캐릭터들의 움직임을 고안해낸 사람이 한국인이란 점이다.

‘스타워즈’를 만든 조지 루커스 감독이 이끄는 미국 할리우드 최대의 특수효과 회사 ILM의 크리처 디렉터 이승훈 씨가 그 주인공. 영화 특수효과 세미나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이 씨를 최근 만났다.

이 씨는 ‘트랜스포머4’를 비롯해 아바타, 캐리비안의 해적, 해리포터, 인디아나 존스, 퍼시픽 림, 스타워즈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CG로 만들어진 등장인물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특수효과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100번 지원해 꿈을 이루다

크리처 디렉터(Creature Director)는 CG로 만들어진 캐릭터의 발과 이빨 등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를 개발해내고 이를 모의실험(시뮬레이션)하는 일을 한다. CG로 캐릭터가 만들어지면, 이 캐릭터 몸속에 뼈와 근육을 만들어 넣어 캐릭터가 움직이는 구조를 만드는 것. 손가락 마디와 어깨 근육까지 표현해내는 정교한 작업이다.

홍익대 광고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뒤 국내 컴퓨터그래픽 회사에 다니면서 광고용 CG 작업을 담당하던 이 씨는 줄곧 ‘언젠가 할리우드에 가서 스타워즈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어왔다.

할리우드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1999년 일본으로 건너가 3년간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면서 할리우드에 가기 위해 꾸준히 입사지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그가 만든 영상을 보고 관심을 나타낸 곳은 많았지만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전화 인터뷰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 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가 8개월간 영어공부를 하면서 현지 게임회사에 들어갔고, 이후 100번 가깝게 입사지원서를 내는 노력 끝에 2003년 ILM에 합격했다.

“제게 ‘스타워즈’는 정말 큰 꿈이었어요. 꼭 스타워즈 제작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ILM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스타워즈의 세 번째 에피소드를 만들게 됐지요.”(이 씨)

문어다리 요리 보고 조리 보고

이 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으로 손꼽는 것은 캐리비안의 해적에 등장하는 데비 존스의 ‘문어수염’. 수염이 마치 문어다리처럼 꿈틀거리는 모습은 처음으로 시도된 어려운 작업이었다.

“당시 살아있는 문어를 살펴보면서 문어다리의 움직임을 연구했어요. 문어를 통에 넣었다 빼는 행동을 반복하면서 문어다리의 색깔, 물속에서 문어다리가 움직이는 모습, 물 밖으로 문어를 꺼냈을 때 문어의 어느 부분이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지 등을 자세히 관찰해 작업에 반영했지요.”(이 씨)

아바타에서 나비족을 공격하는 인간의 비행선이 판도라 행성의 숲에 떨어져 나무들이 부러져나가는 놀라운 장면도 그의 솜씨. 이 씨는 비행선이 나무에 부딪히는 순간 부러진 수만 개의 나뭇가지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원리를 알아내고 이를 CG로 표현하기 위해 2개월이 넘게 이 작업에만 열중했다. 결국 그는 ILM에서 ‘베스트 이펙트 상’을 받으면서 실력을 다시 한 번 인정받았다.

“크리처 디렉터는 미적 감각뿐만 아니라 해부학, 물리 법칙 등 과학적 지식을 수많은 관찰을 통해 습득해야 합니다.

영화 속 화면이 어색하면 관람객들은 ‘이 장면은 가짜구나’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영어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꿈을 이루겠다는 집념만 있다면 세계 어디에서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이 씨)

김은정 기자 ej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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