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팸 들어오실 거면 자기소개와 사진은 필수예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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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단톡 팸’의 팸원을 구하는 온라인상의 모집공고와 인터넷 카페, 게시판 제목 캡처사진.(위쪽부터)
청소년들이 ‘단톡 팸’의 팸원을 구하는 온라인상의 모집공고와 인터넷 카페, 게시판 제목 캡처사진.(위쪽부터)
“너 어케(어떻게) 생김(생겼냐)? 프본(프로필 사진을 본인 사진으로 올리는 것) ㄱㄱ(고고·실행하라는 뜻).”

스마트폰 모바일 메신저의 ‘단톡방’에 갓 가입한 신입멤버는 이런 질문을 기존 회원으로부터 받는다. ‘단톡’은 ‘단체로 하는 토크’의 줄임말로 그룹채팅을 뜻하는 말. 단톡방에 들어가려면 프로필 사진으로 자기 사진을 ‘정직하게’ 올린 뒤 ‘17세 남 ○○○’ 혹은 ‘14세 여 ○○○’ 식으로 자신의 나이와 성별, 실명을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 이렇게 서로의 신상명세를 밝히면 이들은 비로소 ‘단톡 팸’이 된다.

요즘 청소년 사이에 단톡 팸이 새로운 온라인 놀이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그룹채팅을 하는 패밀리(가족)’를 뜻하는 단톡 팸은 관심사나 취향이 비슷한 누리꾼들이 마치 실생활에서 동아리모임을 하듯 온라인상으로 가족에 가까울 만큼 친밀한 모임을 만들어 실시간으로 채팅하는 현상. 서로의 이름이나 얼굴, 나이, 심지어 성별까지도 모르는 채 얼굴 없는 대화를 나누는 일회성 채팅과 달리 단톡 팸은 서로의 ‘정체’를 아는 인간적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단톡 팸은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SNS라는 매체적 특성에 ‘인간적 소통’을 갈망하는 신세대의 요구가 합쳐진 결과로 해석된다. 온라인상에서 숱하게 일어나는 ‘휘발성’ 만남 대신 ‘팸’이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관계를 지속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까다로운 가입절차로 소속감 ↑

단톡 팸을 이끄는 우두머리는 이른바 ‘팸장’. 팸장은 새로운 ‘팸원’(단톡 팸의 회원)을 모집하기 위해 기존 팸원들의 사진을 인터넷 카페에 게시한다. 기존 팸원들의 사진을 확인한 청소년들은 자신의 모바일 메신저 아이디(ID)를 카페에 댓글로 남기는 방식을 통해 ‘회원가입 신청’이 이뤄진다.

단톡 팸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자소(자기소개)’와 사진은 필수.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 사복을 입고 찍은 사진, 머리가 길었을 때 찍은 사진 등 팸장은 가입 희망자에게 여러 종류의 사진을 요구한다. 자기소개 내용과 사진을 전송받은 팸장은 부팸장들과 가입심사에 들어간다. 합격은 쉽지 않다. 한번 채팅하고 헤어질 사이가 아니라 서로의 얼굴을 알고 오랜 시간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한 단톡 팸의 팸장인 여중생 A 양(15·서울 성북구)은 “하루 50명 가까운 사람들이 지원을 하는데 그 중 팸원으로 등록되는 사람은 2∼3명”라며 “이렇게 까다롭게 뽑아도 자신의 사진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바로 ‘물갈이’(문제가 된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단체로 해당 단톡 방을 나간 뒤 새롭게 자신들만의 단톡 방을 만드는 일)를 한다”고 했다.

경기 부천에 사는 중학생 B 군(16)은 신입 팸원 심사에 계속 떨어져 낙망하는 경우. 그는 “떨어진 이유를 알려주지 않아 답답하다”면서 “사진 꾸미기 앱(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내 얼굴사진을 더 화사하게 보이도록 만들거나 내가 활동적이란 사실을 어필하기 위해 친구 여럿과 함께 찍은 사진을 제출해보아도 합격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비대면 관계에 더욱 익숙한 청소년들이 온라인 채팅이라는 ‘익명성’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대놓고 밝히는 이유는 뭘까? 단톡 팸 활동을 하는 청소년들은 “소속감을 느끼고 관계를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경기 남양주에 사는 여중생 C 양(16)은 “친해진 팸장 오빠, 부팸장 언니가 나를 계속 채팅방에 초대해준다”면서 “마음도 맞고 신분도 확실한 또래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어 안심도 된다”고 말했다.

드라마, 노래도 함께해요


16개 단톡방에서 활동하는 여고생 D 양(18·경기 김포)은 “학급 단톡방, 친한 친구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 등 학교친구들과 함께 만든 단톡방 6개를 제외하면 나머지 10개 단톡방은 모두 얼굴을 실제론 본 적 없는 또래 친구들과 만들었다”며 “노래 제목이나 사람 이름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을때 단톡방에 물어보면 1분 만에 답변이 돌아온다. ‘별에서 온 그대’와 같은 인기 드라마를 보는 순간에도 드라마 내용을 실시간 채팅으로 끊임없이 나눌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대구 북구에 사는 여중생 E 양(15)은 최근 노래방에서 자신이 부른 노래를 녹음하여 이 음성파일을 즉시 단톡 방에 올려 다른 팸원들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했다.

‘수위 팸’ 극성… 청소년 탈선 우려돼


진솔하게 관심사를 나누는 단톡 팸의 성격이 변질되어 저속하거나 야한 이야기를 청소년들이 주고받는 이른바 ‘수위 팸’도 극성. ‘수위 높은 이야기를 하는 모임’이란 뜻의 수위 팸은 채팅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어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수위 팸에 가입하는 여중고생들은 남학생들과 더욱 노골적인 성적 대화를 주고받는다. 수위 팸의 팸장은 ‘14∼16세 수위 팸 모집. 수위 많이 높음. 프본 필수’ 등의 제목을 단 게시글을 올리고 남녀학생을 모집한다. 수위 팸에선 “너 가슴 무슨 컵이냐” “자위하느냐”와 같은 노골적인 질문들이 남녀학생 사이에 오간다.

양미진 한국청소년상담개발원 상담교수는 “신상명세를 파악할 수 없는 일회성 음란채팅과 달리 수위 팸은 청소년들이 가장 익숙한 모바일 메신저에서 이름, 전화번호, 얼굴 등을 서로 알고 진행되는 음란채팅이므로 탈선의 가능성이 더욱 높고 나아가서는 범죄의 표적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재성 기자 kimjs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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