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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국 신석기소재 소설 호평 사라 넬슨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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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국 신석기소재 소설 호평 사라 넬슨교수

입력 2001-10-18 18:48수정 2009-09-19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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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에선 이색적인 소설 한 권이 화제를 끌고 있다. 강원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의 기원 전 6000년경 신석기유적을 소재로 한 소설 ‘Spirit Bird Journey’(영혼의 새가 여행하다·PKLOG Press 발행). 미국에 입양한 한국 출신의 여성 고고학도 클라라가 한국 유학 도중 오산리 유적 발굴에 참가하면서 자신의 뿌리와 인류 문화의 기원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인터넷서점 아마존에서 최고인 별다섯개를 받았고 관련 학계와 문화계로부터 “인류의 시원(시원) 속으로 안내하는 환상적이고 지적인 고고학 소설”이라는 평가을 받고 있다. 그 저자인 사라 넬슨 덴버대교수(70)가 16일 방한했다.

▼관련기사▼

- 사라 넬슨교수 프로필-소설 줄거리

미국의 대표적인 고고학자이자 세계동아시아고고학회 회장인 그는 세계 고고학계에서 널리 알려진 한국통. 1973년 ‘한강유역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 연구’로 미시건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오산리 유적을 세계고고학사전에 올린 인물이다. 1996년엔 하와이 세계동아시아고고학대회에서 처음으로 한국고고학 독립 분과를 만들기도 했다. 1992년 오산리 유적을 찾았을 때 ‘한반도 신석기인들이 나타나 말을 건네는’ 것 같은 강한 영감을 받아 소설을 쓰기로 마음 먹고 1999년 완성한 넬슨 교수. 그는 앞으로 중국의 신석기시대를 소재로 한 소설을 쓸 계획이다. 마치 수천년 전 한반도 신석기인이 된 듯, 시공을 넘나들며 고고학에 푹 빠져사는 넬슨 교수를 17일 경기 시흥시 오이도 신석기패총 발굴현장에서 만났다.】

오이도 신석기 패총은 인근 포구에서 불어오는 비릿한 내음으로 가득했다. 이곳에선 마침 서울대박물관이 주최한 오이도 패총 발굴 현장설명회가 열리고 있었다. 넬슨 교수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발굴단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그에게 인사를 건넨 뒤 명함을 주고 받았다. 그의 명함 뒷면엔 한국식 이름이 적혀 있었다. ‘덴버대학 고고학교수 思羅奈善(사라내선)’. 기자가 “왜 그렇게 지었냐”고 묻자 “영어 발음에 맞는 한자어를 고른 것인데 사(思)는 생각하다는 뜻이고, 라(羅)는 신라의 라자죠. 내(奈)자와 선(善)자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신라에 내물왕과 선덕여왕이 있었는데 그 내(奈)자와 선(善)자죠. 당신은 신석기 전공자가 아니라 신라사 전공자인 것 같은데요”라는 기자 얘기에 넬슨교수는 “그렇군요”하면서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실례를 무릅쓰고 나이를 물었다. 의표를 찌르는 그의 대답. “양(sheep)입니다.”양띠라는 얘기. 그러면 1931년생,일흔이다. 옆에 있던 임효재 서울대교수(고고학)가 거들었다.“어제 공항으로 마중 나갔는데, 글쎄 일흔 노인네가 뛰어서 나오더라니까요. 여고생인줄 알았어요.”

그와의 만남은 시작부터 낭만적이었다. 그가 한국 신석기 유적을 소재로 독특한 소설을 쓴 것도 낭만적 취향과 풍부한 상상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1992년 오산리 신석기유적을 찾았을 때, 어떤 강렬한 영감을 받았다고 들었는데요.

“멋지게 뻗은 해안선, 백사장과 소나무 숲, 산 정상에 걸려있는 안개, 구불구불 이어진 산 길. 시적인 풍경, 신비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갑자기 ‘8000년 전 이 곳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랬더니 금방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토기를 만들고 음식을 조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때, ‘아 이 것이 바로 한 편의 소설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이도 신석기 패총은 어떤가요. 여기서도 신석기인들이 보입니까.

“한강변 서울 암사동에서 이곳 오이도로 건너온 사람들이 저기서 조개와 굴을 채집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암사동에서 식량이 떨어지니까 주변의 해안가로 옮긴 것이죠. 그리고 암사동으로 돌아가고 다시 식량이 떨어지면 오이도나 다른 해안으로 가고, 그랬을 겁니다. 암사동을 일종의 센터로 놓고 여기 저기 식량을 찾아 이동했던 것입니다.”

그는 어려운 고고학적 정보를 한 폭의 그림을 그리듯 알기 쉽게 설명했다. 그와 함께 신석기시대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듯했다. 그의 감수성과 문학적 상상력을 한번 더 건드리고 싶었다.

-신석기시대인들의 눈으로 이번 뉴욕테러를 본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어이없어 할 겁니다. 야만사회라고 한숨을 짓겠죠. 현대인들은 스스로 문명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제가 보면 지금은 신석기시대보다 더 야만적입니다.”

▼명함엔 한자식이름▼

-고고학과 소설의 만남이라, 어울릴 것 같기도 낯설어 보이기도 하는데 평소 소설에 관심이 많았는지요.

“어린 시절부터 늘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그들이 발굴하는 유적에서 과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궁금해합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구요. 문학적으로 생각을 하면 그 궁금증을 해결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럼 점에서 고고학과 소설은 상당히 밀접하다고 말할 수 있겠죠.”

그는 동아시아 신석기 전공 고고학자이기도 하지만 젠더(性·성) 고고학자이기도 하다. 젠더고고학은 유물을 통해 인류의 성과 권력의 관계를 탐구하는 고고학의 한 분야다. 그의 저서 ‘고고학 속의 성-권력과 특권의 분석’은 1999년 미국 우수학술서로 평가받기도 했다.이러한 관심은 그의 소설 ‘Spirit Bird Journey’ 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신석기시대가 모권(母權)중심사회였다는 사실을 발견한 소설의 여주인공 클라라가 철저하게 남성 중심적인 현대 한국사회 속에서 갈등한다는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모권 중심의 신석기시대 전공자로서, 남성 중심의 현대 사회, 한국 사회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신석기시대는 대개 여자가 남자보다 우위에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 그러니까 남녀 우열에 무관심한 사회도 있었지만요. 오늘 오이도에 오기 전, 서울대박물관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설명에 모두 남자만 있었습니다. 여성도 들어가야 합니다. 한국에는 좋은 신석기 유적이 많은데도 지금 지나치게 남성 우위라는 사실이 좀 아쉽습니다. 궁극적으로 보면 남녀 우열이 아닌 남녀 평등의 사회가 되어야죠. 신석기시대엔 이처럼 우리가 배워야할 점이 많이 있습니다.”

넬슨 교수는 늦깍이 고고학자다. 메사추세츠 웨슬리대학 시절, 그의 전공은 성서학이었다. 그러다가 1968년, 38세의 늦은 나이에 미시건대 대학원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왜 뒤늦게 고고학을 전공했습니까.

“사실 우연이었습니다. 하지만 늘 과거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죠. 오늘을 알기 위해선 과거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고나 할까요. 어쨌든 고고학이 가장 흥미진진한 학문으로 여겨졌고 그래서 고고학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

-그 중에서도 동아시아 고고학, 한국 고고학을 전공한 까닭은?

“그것도 우연인데, 동아시아가 끌렸습니다. 당시 일본과 중국의 선사시대는 미국에 널리 알려진 상황이었고, 한국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상황은 비슷하지만. 하여튼 ‘일본과 중국 사이에 있는 한국의 선사시대는 어떠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 그게 최고의 매력이었습니다. ”

넬슨 교수는 1970년 박사논문을 쓰기 위해 한국을 찾아 1년 동안 한강유역 신석기문화를 공부했다. 미시건대는 미국 내 동아시아 고고학 연구에 있어 최고 수준. 그는 박사학위 취득 이후 한국과 중국을 오가면서 고고학 연구에 매진, 동아시아 고고학의 권위자로 자리잡았다. ‘한국의 고고학’ ‘중국 동북부의 고고학’ ‘고고학 속의 성’ 등 한국과 중국 고고학에 관한 많은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다. 이러한 연구 업적으로 그는 1996년 고고학계 최고 학술상인 ‘존 에반스 교수상’을 수상했다. 또 세계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올라있는 유명인사.

-미국에서 한국 고고학, 한국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은 어떤가요.

“아직은 약합니다. 미국에서 한국 고고학을 전공하고 있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딱 3명입니다. 한국 고고학을 공부하면 무시하는 경향도 있어요. 1996년 하와이 세계동아시아고고학대회에서 처음으로 한국고고학이 독립 분과가 됐는데, 그 때까지 한국고고학은 중국이나 일본고고학의 부속물로 취급당했었지요. 제가 당시 하와이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린 것도 그런 까닭이었습니다.”

▼美 한국고고학 연구 3명뿐▼

오이도 패총에서 넬슨 교수는 시종 경쾌한 발걸음으로 비디오를 찍으면서 유적을 돌아보았다. 패총 유적 C지구의 한 주거지에선 “아, 온돌!”하며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현장 설명회가 끝나갈 즈음, 서울대박물관의 한 연구원이 “오이도는 통일신라시대 이전까지, 1년 내내 사람들이 살았던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사람이 살고 떠나는 그런 곳이었던 것 같다”고 마무리지었다. 이 설명은 이날 오이도를 처음 찾은 넬슨 교수의 통찰력과 거의 일치하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넬슨 교수는 가을 날씨 만큼이나 화창한 웃음을 오이도 패총에 남기고 서둘러 대전으로 향했다.

넬슨 교수는 대전과 전북 고창 등지의 선사시대 유적지를 둘러보고 충남대 전주대에서 강연을 한 뒤, 22일 오후 1시 서울 강동구 암사동 선사유적공원에서열리는 암사동 신석기문화 국제학술세미나에 발표자로 참가한다. 출국은 23일.

<만난사람〓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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