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얼굴로 정치 성향을 안다? 뇌의 직감력 때문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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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장동선 지음·염정용 옮김/352쪽·1만6000원·아르테

‘고무 손 환상’ 실험. 실제 손 옆에 고무로 만든 손을 놓고 팔을 천으로 덮은 뒤 진짜 손과 고무 손을 붓으로 동시에 가볍게 쓸어내리면 실험 참가자는 고무 손이 진짜라는 느낌을 받는다. 진짜 손이 보이지 않도록 천으로 덮어두면 뇌가 서서히 진짜 손을 잊어버려 손의 체온이 떨어지고 접촉에 대한 감수성도 낮아진다. 아르테 제공
‘고무 손 환상’ 실험. 실제 손 옆에 고무로 만든 손을 놓고 팔을 천으로 덮은 뒤 진짜 손과 고무 손을 붓으로 동시에 가볍게 쓸어내리면 실험 참가자는 고무 손이 진짜라는 느낌을 받는다. 진짜 손이 보이지 않도록 천으로 덮어두면 뇌가 서서히 진짜 손을 잊어버려 손의 체온이 떨어지고 접촉에 대한 감수성도 낮아진다. 아르테 제공
2015년 이른바 ‘흰골파검 논쟁’이 화제가 됐다. 한 영국인이 찍은 옷 사진이 어떤 이에게는 ‘흰색, 골드(금색)’, 다른 이에게는 ‘파랑, 검정’으로 보여 세계의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책은 이 논쟁으로 시작한다. 기자는 이번에도 하루는 ‘흰골’로 보였다가 다른 때는 ‘파검’으로 보이는 일을 겪고 새삼 당황스러웠다.

실제 그 옷은 파랑, 검정이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같은 파장의 빛이 우리 눈에 도달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색을 다르게 지각한다는 게 핵심이다. 우리의 뇌가 조명에 따라 달라지는 색 대신 ‘물체의 원래 색으로 추정되는 색’으로 경험을 통해 자동으로 보정해 인식하기 때문이다.

뇌는 소리도 걸러서 듣는다. 태평양의 어떤 외딴 섬에 사는 원주민들 언어의 특정 음성은 자기들끼리는 들리고, 음파측정기에도 감지되지만 외부에서 온 인류학자들은 그 소리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 연구자들의 뇌가 이 음들을 의식 속으로 들여보내는 훈련이 안돼 있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동일한 정보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당신이 보는 빨간색과 내가 보는 빨간색이 다르고, 느끼는 단맛과 장미 향기도 다르다.

책은 ‘협력은 어떻게 생겨나며 언제 이용당하는가’ ‘문화적 배경은 지각을 어떻게 조종하는가’를 비롯한 9개 질문과 답으로 구성돼 있다. 심리학, 인지과학 등의 실험 40여 건을 소개하면서 뇌과학을 설명한다.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사례도 있지만 흥미로운 실험들도 적지 않다.

뇌는 한 인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몇 초에서 몇 분 사이에 결정한다. 그 판단은 얼마나 맞을까? 1990년대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자들은 교사나 대학강사의 짧은 수업 영상을 무음으로 실험 참가자들에게 보여주고 역량, 우월성, 열의, 전문성 같은 범주로 이들을 평가하게 했다. 이 결과와 학생과 대학생들이 학기말에 한 강의 평가와 비교해보니 거의 비슷한 결론이 나왔다.

스위스의 심리학자는 알려지지 않은 정치가들의 얼굴 사진만 보여주고 정치 성향을 알아내라는 실험을 했는데, 역시 놀라울 정도로 적중률이 높았다. 직감의 힘이다. 물론 전체 통계이니 한 명 한 명의 직감은 틀릴 수 있다.

저자는 독일에서 태어나 한국을 오가며 성장했고, 독일 막스플랑크 바이오사이버네틱스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장기에 한국과 독일 양쪽에서 겉돌면서 ‘사람은 서로를 어떻게 판단하고, 집단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을 가졌고, 뇌과학을 공부하게 됐다고 한다.

제목은 ‘우리의 뇌 속에는 수없이 많은 다른 사람들의 뇌가 존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뇌가 가장 많이 노력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일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우리의 뇌는 공감, 예측, 소통하는 ‘사회적 뇌’로 발달했다는 것이다. 과학 커뮤니케이션 경연인 ‘페임랩 인터내셔널’에 독일 대표로 출전해 최종 9인에 선발됐다는 저자의 이력답게 평범한 독자의 눈높이에서 쓰였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장동선#얼굴#정치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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