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헤밍웨이 “글은 진실하고 새로운 산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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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말/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권진아 옮김/156쪽·1만3500원·마음산책

1953년 바하마 제도의 비니미 섬 부두에 걸린 녹새치 앞에 선 헤밍웨이와 그의 세 아들. 마음산책 제공
1953년 바하마 제도의 비니미 섬 부두에 걸린 녹새치 앞에 선 헤밍웨이와 그의 세 아들. 마음산책 제공
중학교 국어시간. 소설 한 권을 자유로이 선택해 읽고 나서 원고지에 독후감을 써오는 숙제를 받았다. 누나 방에서 몰래 갖고 나와 읽은 책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1952년)였다. 분량이 그리 길지 않았고 유채화 표지 이미지가 멋져 보였다.

숙제로 써낸 독후감의 마지막 문장은 ‘화가 치밀어 오른다’였다. 갖은 사투 끝에 커다란 녹새치를 포획한 노인이 모든 노력의 성과를 상어 떼에 깡그리 빼앗긴다는 이야기가 열네 살 독자에게 남긴 감정은 황당함과 분노였다. 수업시간에 하필 내 숙제를 뽑아 낭독한 교사는 “분노보다는 불굴의 도전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더 화가 났고 한동안 헤밍웨이라면 꼴도 보기 싫었다.

불굴의 의지는 그저 교사 개인의 생각일 뿐임을 깨닫기까지 상당한 세월이 필요했다.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고 2년 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즈음에 이루어진 인터뷰를 묶은 이 책을 읽었다면 좀더 일찍 알았을 텐데. “당신의 작품에 조금이라도 교훈적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헤밍웨이는 “교훈이라는 단어는 오용돼 손상된 말”이라고 답했다.

“왜 ‘예술의 역할이 뭘까’ 같은 의문으로 골치 아파하나? 이제껏 일어난 일들, 있는 그대로의 것들, 알고 있는 모든 것과 알 수 없는 모든 것으로부터 작가는 뭔가를 만들어낸다. 그건 재현이 아니라 살아 있는 그 어떤 것보다 진실하고 새로운 산물이다. 그게 글을 쓰는 이유다.”

헤밍웨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6개월간 신문기자 일을 했다. 그 뒤 한 월간 문예지에 “신문이나 잡지에 글을 쓰는 유일한 까닭은 소중한 것에 대해 글을 써서 망가뜨린 대가로 넉넉한 보수가 주어지기 때문”이라고 썼다.

“난 절대 글쓰기가 자기 파괴적인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문이나 잡지에 쓰는 글은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시점 이후로는 진지하게 창의적인 시도를 하려는 이에게 매일매일 자기를 파괴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다시 봐도 참, 화를 돋우는 사람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헤밍웨이#헤밍웨이의 말#어니스트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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