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15년 전쟁 일으킨 日 엘리트 육군의 광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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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 육군: 제2차 세계대전을 주도한 일본제국주의의 몸통/호사카 마사야스 지음/정선태 옮김/1136쪽·5만4000원·글항아리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의 하와이 진주만 기습으로 침몰하는 미국 캘리포니아함. 국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일본은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기습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저자는 기습 외에는 주먹구구식 작전을 펴던 일본 장교들 때문에 많은 병사들이 희생됐다고 지적한다. 글항아리 제공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의 하와이 진주만 기습으로 침몰하는 미국 캘리포니아함. 국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일본은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기습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저자는 기습 외에는 주먹구구식 작전을 펴던 일본 장교들 때문에 많은 병사들이 희생됐다고 지적한다. 글항아리 제공
“이 책은 ‘쇼와 육군’이 왜 많은 착오를 범했는가를 해명하기 위해 쓰였다.”

‘쇼와 육군’ 머리말 첫 구절. 언뜻 보면 이 책이 일본이 제국주의 시절 저지른 만행에 대해 내세운 숱한 변명 중 하나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본을 대표하는 논픽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자신의 사관을 ‘자성(自省) 사관’이라 규정한 대로 일본이 저질러 온 과오를 숨김없이 들춰 나간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 및 군부 주요 인사 4000여 명을 취재하고 관련 서적만 150권 이상 저술한 베테랑답게 ‘쇼와 육군’을 샅샅이 해부한다. 쇼와(昭和·1926∼1989년) 일왕 시기 만주사변(1931년)부터 패전(1945년)까지의 ‘15년 전쟁’, 전후 시기에 관한 자료와 관련자 증언 등이 1000쪽이 넘는 분량에 빼곡히 담겨 있다. ‘쇼와 육군’ 탄생의 역사적 배경 등은 1부 60여 쪽에 ‘전사(前史)’로 상술했다.

1946년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전범재판) 법정에 선 일본 A급 전범들.
1946년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전범재판) 법정에 선 일본 A급 전범들.
자화자찬식인 일본의 공식 기록을 인용할 뿐 아니라 약자와 희생자 등의 증언, 공식 기록에서 배제됐던 자료를 비중 있게 다룬 점은 인상적이다. 이를 통해 공식 기록의 허구성을 짚는다. 가령 일본군이 1943년 솔로몬 군도의 과달카날 섬에서 벌어진 미군과의 전투에 대해 일본 대본영은 적에게 입힌 손해는 인원 2만5000명 이상, 우리 쪽 손해는 1만6734명이라고 발표한다. 우세한 적군을 압박하고 과감하게 격전을 치러 적의 전력을 분쇄했다는 대본영의 자평도 덧붙는다.

하지만 저자의 시각은 반대편에 있다. 참전한 일본군, 이들과 맞대결한 미군의 증언 및 기록 등을 통해 초반부터 정보력, 화력이 열세에 몰린 일본군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적에 대한 객관적 정보 없이 오기로 치른 전쟁, 적과 싸우기보다 굶주림과 싸워야 한 일본 병사들…. 미군 기록 등에 담긴 내용(미군 전사자 1000명 부상자 4200명, 일본군 전사자와 아사자 2만4600명)을 대조하며 대본영 발표가 과장과 허위의 대명사라 비판한다. 전후에도 일본의 ‘피해’ 기록만 있을 뿐 ‘가해’에 관해서 알려진 바가 없다는 점도 지적한다.

광기에 휩싸인 일본제국이 벌인 전쟁과 각종 참상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저자는 일본 ‘쇼와 육군’, 특히 상층부를 이루는 엘리트 장교들에게 있다고 말한다. 메이지 시대인 1882∼1896년에 걸쳐 태어나 육군유년학교, 육군사관학교, 육군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엘리트. 하지만 일본 육군 양성 시스템에서 독창적 식견, 선견지명을 갖추기보다 협소한 틀에서 사고하던 무능력자들이다. 인간을 전쟁 소모품으로 간주한 이들은 서구 열강보다 국력이 약한 상황을 보완하기 위해 ‘옥쇄(玉碎·옥이 부서지듯 아름답게 죽는다는 뜻으로 집단자결이나 최후항전을 의미)’를 하급 군인, 민간인에게 강요했다.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미래는 없다. 책 전체를 관통하며 강조하는 저자의 주장이다. 과거사 청산은커녕 쇼와 육군 탄생 전의 과오를 되풀이하듯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전쟁 수행 가능 국가로 나아가는 아베 정권을 볼 때, 17년 전 책에서 펼친 저자의 주장은 지금도 시의적절하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쇼와 육군#쇼와 일왕#도쿄전범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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