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일제강점기 조선의 ‘시네마 혈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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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영화란 하(何)오/백문임 외 엮고 지음/780쪽·4만 원·창비

나운규는 ‘아리랑’(1926년)을 만든 4년 후 액션활극 ‘철인도’를 내놨지만 당시 비평가들은 ‘반동영화’라며 비판한다. 나운규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철인도’(왼쪽)와 조선영화의 대표스타 나운규의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나운규는 ‘아리랑’(1926년)을 만든 4년 후 액션활극 ‘철인도’를 내놨지만 당시 비평가들은 ‘반동영화’라며 비판한다. 나운규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철인도’(왼쪽)와 조선영화의 대표스타 나운규의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상록수’의 작가 심훈이 영화감독이자 배우로도 활동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의 영화 ‘먼동이 틀 때’(1927년)는 당시 단성사에서 개봉해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영화는 일제강점기 조선 지식인들을 사로잡았다. 심훈뿐 아니라 ‘태평천하’ ‘탁류’의 작가 채만식, 시인이자 비평가인 임화, ‘문장강화’의 저자인 작가 이태준 등 당시 ‘글 좀 쓰던’ 지식인들은 저마다 영화를 감상하고, 그에 말을 보태며, 영화의 방향성에 대해 논쟁했다.

조선영화를 둘러싼 당시 식민지 지식인들의 비평을 담아낸 책이다. 최근 학계에서는 광복 후 만들어진 한국 영화와 일제강점기에 만든 영화의 이질성을 고려해 1900년 전후 초기 영화부터 1945년 광복 전까지의 영화를 조선영화로 구별하고 있다. 최초의 영화평이라 할 수 있는 1917년 최찬식의 ‘활동사진을 감상하는 취미’를 비롯해 조선영화의 대표작인 ‘아리랑’(1926년)과 ‘나그네’(1937년)를 둘러싼 논의까지 55편의 비평을 정리했다.

학술적인 성격이 짙지만 당시 지식인의 고민과 시대상을 살필 수 있는 비평이 많다. ‘아리랑’의 나운규가 각본과 주연을 맡은 후속작 ‘아리랑 후편’(이구영 감독·1930년)과 그가 감독한 액션활극 ‘철인도’(1930년)를 둘러싼 비평은 욕이 오갈 정도로 살벌하다. 윤기정 서광제를 비롯한 카프(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 계열 평론가들이 후속작에 대해 “비현실적·반계급적·반동의 영화”라고 비판하자 나운규는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싣는다. “이 작품이 과연 대중을 기만하는 반동영화인가. 만일 그렇다면 나는 단연코 사회적 재재를 받아야 한다. 아니, 사회와 대중이 그 벌을 내리기 전에 자살할 것이다. (중략) 계급적 입장에서 만들라는 영화가 무엇인지 잘 안다. 그러나 그것을 직접, 다시 말하면 폭로와 투쟁으로 직접 행동을 묘사한 작품이 이 땅에서 발표될 줄 아느냐. (중략) 감독의 책임이 어디서부터인지도 구별할 수 없으면서 영화평을 쓰겠다는 것은 너무도 대담한 일이다. 그러니 무지한 두뇌에서 내놓을 것은 없고 욕밖에 더하겠느냐.”

요즘 영화평에서 배우의 연기에 대해 비판하듯, 무성영화 시절엔 변사의 해설에 대한 비판도 풍성했다. 오랫동안 단성사 주임변사를 맡았던 김영환은 “해설은 일종의 창작”이라며 “쓸데없이 박수만 얻으려는 욕심으로 고성을 질러 오히려 정경(情景)의 어떤 기분을 죽이는 일”을 비판한다. 이에 덧붙여 심훈은 해설자들의 ‘상식’ 부족을 꾸짖는다. “배우의 이름을 얼토당토않게 부르는 것은 고사하고, 모델(model)을 ‘모텔’, 데이비드(David)를 ‘다빗또’라고 읽는 것 같은 것은 일일이 들어 말할 겨를도 없거니와 (중략) 희생(犧牲)을 희성, 쇄도(殺到)를 살도로 읽는 따위는 너무나 상식을 지나는 일이다.”

책 제목은 서양 근대 문학 개념을 논한 작가 이광수의 글 ‘문학이란 하오’에서 따왔다. 편저자들은 조선영화에 대한 신문이나 잡지 기사 외에 영화담론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연구서가 없는 데 아쉬움을 느껴 2013년 처음 이 책을 구상했다. 방대한 자료를 찾고 독해하며 타이핑한 이들의 노력이 빛나는 책이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조선영화란 하오#백문임#상록수#심훈#먼동이 틀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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