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뜨거운 열정, 거침없는 사랑 두 여인이 쏟아낸 엄청난 에너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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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 위대한 두 여성 인류/학자의 사랑과 학문/로이스W배너 지음·정병선 옮김/816쪽·3만2000원·현암사

미드와 베네딕트는 각자의 또 다른 사랑을 지켜보고, 연애는 물론이고 학문적 고민까지 나눈 연인이었다. 서로에게 끌리는 두 여성이 등장하는 영화 ‘아가씨’의 한 장면. 퍼스트룩 제공
미드와 베네딕트는 각자의 또 다른 사랑을 지켜보고, 연애는 물론이고 학문적 고민까지 나눈 연인이었다. 서로에게 끌리는 두 여성이 등장하는 영화 ‘아가씨’의 한 장면. 퍼스트룩 제공
“당신의 목소리와 머릿결의 감촉을 떠올리면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때가 있어요. 당신 방으로 찾아가고픈 그런 밤입니다.”(마거릿 미드·1901∼1978)

“너의 사랑 속에서 행복할 때는 노래를 해. 우울할 때도 너의 사랑 때문에 세상이 여전히 살 만하고 말이야.”(루스 베네딕트·1887∼1948)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인 두 여성은 이렇게 사랑을 속삭였다. 나이 차(베네딕트가 미드보다 14세 많았다)도, 남편들의 존재도 상관없었다. ‘국화와 칼’ ‘문화의 패턴’으로 유명한 베네딕트와 ‘세 부족 사회에서의 성과 기질’ ‘마누스족 생태연구’ 등을 쓴 미드는 스승과 제자이면서 친구처럼 의지했다.

저자는 두 사람의 편지와 서류 등 방대한 자료를 분석해 성장기와 연구 과정은 물론이고 연애 및 결혼 생활까지 꼼꼼하게 정리했다. 이들의 학문적 성취뿐 아니라 내밀한 속마음과 상처까지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다.

홍역으로 한쪽 귀의 청력을 잃은 베네딕트는 수줍음이 많았다. 미드는 신경질적이고 차가운 부모보다는 자상한 할머니를 따르며 쾌활하게 자랐다.

자유연애 사상이 번졌던 당시, 미드는 남성은 물론이고 여성들과도 동시에 사랑을 나눴다. 결혼 중에도 여러 여성과 연애를 했고,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마거릿 미드(왼쪽)와 루스 베네딕트.
마거릿 미드(왼쪽)와 루스 베네딕트.
베네딕트 역시 남성과 함께 미드도 사랑했지만 동시다발적으로 거침없이 사랑을 발산하는 미드에게 질투를 느꼈다. 하지만 결국 이를 극복하고 서로에게 자유를 준다. “난 있는 그대로의 널 온전히 사랑해”라며. 성적인 매력뿐만 아니라 학문적, 인간적 유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관계였다. 미드를 문화인류학으로 이끌고 그의 성공을 도운 이도 베네딕트였다.

둘은 남성을 배제하는 여성운동에는 비판적이었다. 인류학과를 실질적으로 이끈 베네딕트 자신도 남성 교수 전용 식당조차 들어가지 못하던 상황이었지만. 1940년 소설가 펄 벅이 베네딕트에게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행동에 나서라고 촉구하는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하지만 인종주의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대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많은 민족을 만났고, 전통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부족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두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의 세세한 발자취를 따라가는 과정은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지만 역작이 탄생했던 과정을 속속들이 지켜볼 수 있다. 남태평양 사모아 제도의 마누아에서 눈병이 나고 벌레에게 뜯기며 습한 날씨에 지친 미드가 “다 때려치우고 지하철에서 동전이나 주워야겠어요”라며 베네딕트에게 호소하는 모습에서는 학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가 느껴진다.

베네딕트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자 미드는 베네딕트의 연구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그가 지도하던 대학원생도 맡는다. 미드는 베네딕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받은 그 완벽한 사랑은 절대로 갚을 수 없을 겁니다.”

베네딕트 역시 미드를 통해 지적 자극을 받아 더 큰 성공의 길로 나아갔음은 물론이다.

치열하게 연구하고 남성과 서로를 함께 사랑한 두 사람의 삶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때론 숨이 가빠질 지경이다. 이들이 발산했던 어마어마한 에너지의 크기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로이스w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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