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모든 시는 사랑가이자 진혼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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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김선우 지음/179쪽·8000원·문학과지성사

‘미천한 나의 유일한 자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언제나 사랑하고 있다는 것. 모든 시는 진혼가이자 사랑의 노래임을 내가 아직 믿고 있다는 것’(‘보칼리제, om 0:00’에서)

시와 소설을 넘나드는 김선우 작가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새 시집에서는 우선 ‘나들’, ‘om’과 같은 특이한 시어가 눈에 띈다. ‘나들’은 ‘나’에 복수형 접사 ‘-들’을 붙인 것이다. 시인은 ‘우리’ 대신 ‘나들’이라는 시어를 씀으로써 시를 읽을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시가 닿도록 이끈다. ‘om’은 힌두교에서 근원적인 ‘세계 혼’의 개념을 표현하는 것이다.

시인은 이 ‘om’이라는 시어를 이렇듯 근원적인 소리를 표현하는 데 쓰면서 동시에 ‘어떤 시간대’로 사용한다.

‘am과 pm의 시간에서 누군가 말한다 그 순간 om의 시간이 그믐처럼 스미며’(‘나들의 시, om 11:00’에서)

원래의 뜻에서 짐작되듯 ‘om’은 일상적 현실에 속한 것이 아닌, 영적인 시간이다. 가령 ‘om 5:00’로 시작되는 시는 이런 설명이 덧붙여진다. ‘24시 편의점 같은, 편의를 위한 24시 너머, 혹은 그 안쪽으로 당신이 놓친 시간들을 찾아서, 오늘은 이렇게 씁니다’(‘나들의 시, 너의 무덤가에서’) 시인은 이렇듯 지상의 시간에 갇히지 않음으로써 그가 노래하는 사랑의 깊이를 한층 깊게 한다.

관능과 여성성이 흘러넘쳤던 이전의 작품들에서 나아가 시인은 새 시집에서 사랑에 대해 탐색한다. 그런데 그 사랑은 이별이 전제된 사랑이다.

‘사랑의 무덤은 믿을 수 없이 따스하고/그 앞에 세운 가시나무 비목에선 금세 뿌리가 돋을 것 같았다./최선을 다해 사랑했으므로 이미 가벼웠다./고마워, 안녕히.’(‘이런 이별’에서)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녹턴#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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