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유머러스하고 섬세한 문체로 풀어낸 전쟁의 비극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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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연대기/이스마일 카다레 지음/이창실 옮김/400쪽·1만4800원/문학동네

이스마일 카다레는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오랫동안 거론돼온 작가다. 발칸 반도의 작은 나라 알바니아 출신인 이 소설가는 신화와 전설 등을 변주한 소설들을 통해 독재 체제에 놓였던 조국의 현실을 풍자적으로 그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때마침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가까워지면서 카다레의 새 소설이 나왔다. 이 작품은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이 바탕이 됐다.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돌의 도시’. 환상적인 배경은 카다레의 작풍 그대로다. 석재 건축물로 가득한 이 도시의 주민들은 닭 뼈로 미래를 점치고 마술과 주문, 유령 이야기를 계속 주고받는다. 이 도시에 어느 날 폭탄이 쏟아지면서 전쟁이 시작된다. 공습과 폭격이 이어지고 주민들은 사이렌이 울릴 때마다 지하실로 숨는다.

전쟁의 공포를 이겨나가는 방식은 일상을 이어가면서 유머와 위트를 섞는 것이다. 화자인 소년의 눈에 비친 주민들의 모습은 이렇다. “영국 비행기들은 매일 규칙적으로 우리를 방문했다. 그것들은 거의 정해진 시간에 나타났으므로 일정표에 짜인 불쾌한 일과에 적응하듯 폭격에도 웬만큼 적응해갔다. 내일 폭격이 끝나고 카페에서 보자든지, 내일은 새벽같이 일어나 폭격이 시작되기 전까지 집 안 청소를 마칠 거라든지 하는 말이 오갔다.” 할머니들은 폭격이 이어지는 중에도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수다를 떨고, 피노 어멈은 어쨌든 결혼식은 열린다면서 포탄이 쏟아지는 중에도 화장하러 다닌다.

그러나 전쟁은 결국 비극이어서 도시는 이념에 따라 편을 갈라 싸운다.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의 도시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민담과 환상을 끌어들이면서도 담백한 문장들은 독서의 속도를 높인다. 갑자기 뚝 끊어진 듯한 결말은 전쟁의 충격을 어느 것보다 잘 전달한다. 왜 그가 10년 넘게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이름을 올려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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