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주차장에 핀 덩굴 꽃에 눈물 흘린 정서로… 역사에서 나무를 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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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철학/강판권 지음/340쪽·1만7000원·글항아리
‘나무철학’을 쓴 강판권 교수

나무를 통해 인문학을 연구하고 있는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는 “자연 생태를 중심에 놓고 시간을 해석해야만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글항아리 제공
나무를 통해 인문학을 연구하고 있는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는 “자연 생태를 중심에 놓고 시간을 해석해야만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글항아리 제공
여기 나무에서 자신의 삶을 찾은 인문학자가 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시간강사 시절. 어느 날 문득 바라본 오래된 소나무가 넉넉한 위로를 주었다. 그리고 사과나무에서 만유인력을 떠올린 뉴턴처럼 자신의 전공(사학)과 나무를 결합한 인문학 연구를 시도했다. 나무를 통해 인간의 역사를 해석하는 이른바 ‘생태사학’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책의 저자 강판권 계명대 교수(54) 얘기다.

그는 지금까지 줄잡아 15권의 나무 관련 책을 썼다. ‘나무열전’ ‘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사전’ ‘중국을 낳은 뽕나무’ ‘최치원, 젓나무로 다시 태어나다’ 등 나무를 통해 역사와 문화, 중국 고전을 재해석하는 새로운 시도였다. 회화나무에 대한 새 책을 한창 준비 중이라는 그의 얘기를 들었다.

―나무와 깊은 인연을 맺은 계기가 있나.

“중국 청나라 농업사를 전공하면서 옛 농서를 많이 공부했다. 당시 농서에는 나무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 뽕나무 관련 논문을 10편 정도 썼다. 또 어렸을 때 부모님이 농사를 지었는데 땔감으로 나무도 베고 하면서 나무랑 얽힌 추억이 많다.”

―나무를 통해 인간의 역사를 어떻게 볼 수 있나.

“지금까지 역사학은 시간 단위로만 역사를 봤다. 그런데 자연 생태를 중심에 놓고 시간을 해석해야만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왜냐면 역사는 시간과 공간을 함께 아우르고 특히 인간은 자연 없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이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의 변화도 짐작할 수 있다. 강수량이 줄면 나이테의 간격이 좁아지는데 이것은 나무뿐만 아니라 농경사회의 인간들에게도 고통의 시간이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접하는 나무에 대한 사색이 책에 풍부하던데….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담쟁이덩굴의 꽃을 보고 너무 아름다워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그 바람에 약속시간에 늦었다.(웃음) 흔히 사람들은 덩굴 잎만 보는데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무들을 보면 키가 크건 작건 혹은 열매를 맺건 못 맺건 간에 조화롭게 숲을 이룬다. 예전에 나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괴로웠는데, 나무를 보면서 이런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무를 마치 사람 대하듯 하는 것 같다.

“지난해 11월 충북 괴산에서 수령 600년 된 왕소나무가 ‘돌아가셨다’. 당시 너무 마음이 아파서 직접 문상을 간 적이 있다. ‘이대로 그냥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왕소나무에 대한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책이 나오면 마을분들을 모시고 잔치를 벌일 생각이다.”

―수목원이나 휴양림 중에 특별히 아끼는 곳이 있나.

“개인적으로 전북 무주 자연휴양림을 좋아한다. 숙박시설 등이 갖춰진 다른 휴양림과 달리 이곳은 시설물 없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한 사람 정도만 드나들 만한 좁은 길을 40분 정도 걸으면 수령이 오래된 독일 가문비나무 군락이 펼쳐지는데 장관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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