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danger’ 아니라 ‘risk’… 놀면서 위험을 극복하는 과정 필요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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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편해문 지음/284쪽·2만8000원/소나무
‘놀이터,…’를 쓴 편해문 씨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 놀이터를 다룬 이 책을 접한 순간 의문부터 들었다. 우리 아이가 조금이라도 다칠까 봐 전전긍긍하는 부모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만 한 제목이기 때문. 세월호 참사 이후 온 사회가 안전을 부르짖는데 ‘놀이터는 위험해야 한다’고 주장하다니…. 1일 오전 이 책의 저자인 놀이터 디자이너 편해문 씨(47·사진)를 만나 이유를 물었다. 그는 “아이들에게는 놀이가 밥”이라는 말부터 꺼냈다.

“내 아이에게 비타민, 칼슘이 부족할까 염려하죠. 그런데 한국 아이들이 정말 결핍된 것은 ‘놀이’예요. 놀면서 친구와 협력하고 다투고, 삐치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학교 교과과정에서는 배우기 어려운 것을 체득합니다. ‘놀이터’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맞는 말이지만, 놀이터에 아이를 보내도 또래들이 모두 학원에 가기 때문에 놀이터에 있다가는 ‘왕따’가 되는 것이 현실 아닌가. 소설가였던 편 씨가 20년 전부터 어린이 놀이운동가로 활동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한다.

“아이들에게 ‘삶의 생기’가 사라지는 것이 걱정됐어요. 어릴 때 놀면서 생기를 축적한 후 어른이 돼서 힘든 순간에 그 기운을 꺼내면서 살거든요. 그런데 우리 어린이들은 그런 생기를 축적하지 못하고 있어요. 어른들이 놀 권리를 주지 않는 것은 큰 문제예요.”

편 씨는 획일화된 국내 놀이터를 비판했다.

“한국에는 대략 6만 개의 놀이터가 있어요, 대부분 모양이 똑같습니다. 놀이터 가운데 그네, 미끄럼틀이 있는 조합놀이대가 설치되고 바닥은 고무…. 이상하죠? 사회는 그렇게 창의력을 부르짖는데 상상력을 키울 어린이들의 놀이터는 어쩜 그렇게 똑같이 생겼을까요…. 다양성이 없는데 어떻게 창의력이 생기겠습니까?”

그는 “어른들이 아파트를 건축하면서 놀이터는 끼워서 파는 것만을 생각한다”며 “놀이터의 주인공은 놀이기구가 아니라 아이들”이라고 강조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놀이터를 만들려면 역설적으로 ‘위험요소’를 심어야 한다고 편 씨는 주장했다.

“사고가 언제 나는지 아세요? 놀이터가 지루할 때예요. 놀이터가 재미없으면 아이들은 그네 기둥 위로 올라가고, 놀이기구를 부수고, 놀이기구를 다른 용도로 사용해요. 그 과정에서 사고가 납니다. 놀이터는 ‘위험’이 있어야 해요. ‘데인저(Danger)’, ‘해저드(hazard)’가 아니라 ‘리스크(risk)’ 말이죠. 놀이터에서 놀면서 리스크를 인지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이런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어른이 돼서도 자신 앞에 어려움이 닥칠 때 이겨낼 수 있지요.”

세계적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히에게 놀이터 전반에 대해 배우는 등 편 씨가 2010년부터 독일, 덴마크, 일본 등 선진국 놀이터를 누비며 내린 결론이라고 한다.

“벨치히는 40년 동안 2000개의 놀이터를 만든 전문가예요. 그런 그가 가장 잘 만든 놀이터로 꼽은 곳을 보고 놀랐습니다. 벨치히가 살고 있는 독일 뮌헨 잉골슈타트에 놀러간 적이 있죠. ‘내가 20년을 가꾼 놀이터’라며 놀이기구 하나 없는 숲 속 공터 같은 곳으로 저를 데려가더군요. 자연적인 놀이터를 ‘최고’라고 하는 겁니다.”

편 씨는 “물론 도심에서 그런 놀이터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며 “공터에 나무와 흙언덕만 있는 놀이터도 있고, 놀이기구가 많은 놀이터도 있는 등 다양한 놀이터가 생겨야 한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전남 순천시와 ‘기적의 놀이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흙 언덕 등 지형을 흥미롭게 꾸미고 철망이 없는 놀이터를 구상 중이에요. 아이들에게 상상력과 창의력,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길러주는 그런 놀이터를 꼭 만들 겁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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