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우리는 몫을 나눠 몇몇을 부자로 만든다.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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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중독자/필립 슬레이터 지음/304쪽·1만4000원·어마마마


석유재벌 존 D 록펠러는 공장 곳곳을 둘러보며 장부를 점검하고 “석유통 하나를 땜질할 때 쓰는 납을 40방울에서 39방울로 줄이라” 같은 지시를 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재고조사 보고서에서 모두 합쳐 1달러의 가치도 안 되는 석유통 마개 부족분 750개를 찾아내기도 했다. 항공사를 소유했던 억만장자 하워드 휴스는 자신이 제작하는 영화에서 여배우가 닭다리를 물어뜯는 장면을 찍을 때 소품 담당자가 닭다리뿐 아니라 치킨 한 마리를 통째로 샀다고 야단쳤다. 독일 군수산업을 주름잡던 알프레트 크루프는 공장을 편하게 감시하기 위해 시끄러운 자신의 제철공장 한가운데에 자택을 지었다.

억만장자들의 화려한 성공신화 이면에는 비인간적이고 파괴적인 ‘부(富) 중독’이 존재했다.

부 중독이 일부 수전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책의 6장 제목은 ‘탐욕의 민주화’다. 부 중독자들이 용납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언젠가는 부자가 될 것이라는 환상을 즐기는 잠재적 중독자인 탓이다. 기본적인 생활을 누리기 위해 경제활동에 몰입하는 것을 중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필요한 재화·용역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 그 자체를 추구한다면 이미 부 중독이다.

미국 브랜다이스대 사회학과 교수였던 저자는 원양어선 어부, 비즈니스 컨설턴트, 쿠키 세일즈맨, 결혼식 진행자, 극장 경영자, 배우, 희곡 작가 등 다양한 일을 했다. 미국에서 1980년에 출간됐던 책이지만 물신(物神) 사회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35년이 지난 지금 더욱 유효하다.

“만약 우리가 소수의 사람을 큰 부자로 만드는 데 상당한 국력을 바치지 않았더라면, 애당초 그들의 기부를 필요로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에게 돌아가야 할 자원(과 돈)을 한곳에 집중시켜 몇몇 사람을 점점 더 부자로 만든다(자신도 언젠가는 그런 운 좋은 소수에 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러고 나서 기본적인 생계 유지를 위해 작은 도움을 구걸하고, 부자들로부터 약간의 부스러기라도 떨어지면 감지덕지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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