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역사 바꾸는 지진, 그 재앙 결코 남의 일 아니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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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두렵거나, 외면하거나/앤드루 로빈슨 지음/김지원 옮김/288쪽·1만5000원·반니
거대한 자연의 힘인 대지진…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는 맞섬 보여줘

2010년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 남동쪽의 자크멜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집들이 무너지는 등 일대가 폐허가 된 모습. 지진은 인류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혀 왔고 지진을 예측하려는 인류의 노력도 커져 왔다. 반니 제공
2010년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 남동쪽의 자크멜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집들이 무너지는 등 일대가 폐허가 된 모습. 지진은 인류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혀 왔고 지진을 예측하려는 인류의 노력도 커져 왔다. 반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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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부터 6일 현재까지 네팔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수다. 인류는 문명과 기술을 통해 식량 부족, 기상 악화, 전염병 등 많은 난관을 넘어왔다. 하지만 여전히 발생만 하면 순식간에 죽음에 이르는 재해가 있다.

지진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먼 이국 땅 이야기라고? 영국 케임브리지대 방문연구원이자 ‘타임스’ 편집자인 저자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다. 자신이 사는 곳은 지진과 무관한 ‘안전지대’라고 확신하던 차에 집에서 심한 진동을 느낀다. 이후 지진 기록을 보니 영국에서조차 매년 200회 이상의 지진이 발생했다. 저자가 지진을 연구하게 된 계기다.

이 책은 역사 속 지진과 이에 맞서 온 인류의 분투를 다루고 있다. 역사적으로 지진은 수많은 도시를 몰락시켰다. 기원전 2000년대 후반부터 50년 동안 터키, 그리스 등의 청동기 문명이 사라진 이유는 지진 때문이다. 1755년 일어난 포르투갈 리스본 대지진으로 도시 자체가 붕괴된다. 당시 종교재판이 열려 생존자 중 일부를 이단으로 화형시켰을 정도로 사회적 충격이 컸다.

지진은 역사의 물줄기까지 바꿨다. 1923년 간토 대지진으로 일본 국민총생산의 40%가 줄어 복구비용으로 일본 군사화가 가속화됐고,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에 영향을 미쳤다. 문화도 변한다. 지진 이전 수많은 백화점은 고객이 들어갈 때 실내화를 신어야 했지만 지진을 겪은 후 자신의 신발을 신은 채 들어가게 됐다. 지진이 유독 많이 일어났던 1750년에는 유럽 여성들 사이에서 지진을 피해 야외에서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지진 드레스’가 유행했다. 일본 기상청 지진 경보 로고에는 메기 그림이 그려져 있다. 과거 일본인들이 육지 아래 사는 거대한 메기가 꿈틀거려 지진이 발생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류는 계속 지진에 맞서 왔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리스본 대지진 후 천문학자 존 미첼은 지진의 속도를 최초로 계산했다. 아일랜드인 토목기사 로버트 말레는 1851년 지하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해 인공지진 실험을 시행했다. 1875년 수평진동, 수직진동을 측정하는 최초의 현대적 지진계가 발명됐다. 지진의 규모를 비교하는 단위인 ‘리히터 규모’를 만든 미국 지질학자인 찰스 리히터의 사연도 흥미롭다. 1933년 로스앤젤레스 인근 롱비치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롱비치에서 50km 떨어진 캘리포니아공대 방문교수 아인슈타인은 동료 베노 구텐베르크와 대화를 나누며 교정을 걸었지만 대화에 빠져 주변 나무, 전선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나중에서야 지진 발생을 알게 된 구텐베르크는 동료였던 리히터에게 낮의 일을 이야기했고, 리히터 규모가 탄생되는 계기가 됐다. 1960년대 판구조 이론 발표 이후 지진 측정을 넘어 원인 파악까지 연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전히 지진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밀도가 높은 한 판이 밀도가 낮은 다른 판의 밑으로 들어가는 ‘섭입(攝入)’이 발생하지 않는 장소에서도 지진이 일어난다. 지진의 장소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지만 언제 일어날지는 여전히 맞히기 어렵다. 기껏해야 ‘5년 내 대지진 가능성 70%’ 정도로 정부는 발표하고 있다.

지진 예측은 아예 ‘유혹적인 신기루’라고 저자는 표현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지진 피해를 남의 일로 생각한다. “자주 지진이 나는 일본조차 사람들이 지진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나에게 불행이 올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않아 큰 문제”라고 저자는 강조했다.

호주를 제외하고 세계 곳곳의 도시에서 대규모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베이징, 카이로, 이스탄불, 자카르타, 멕시코시티, 샌프란시스코, 상하이…. 저자가 예상한 지진 발생 가능성이 큰 대도시 50곳이다. 이 목록에 서울도 들어간다. 지진. 당신의 이야기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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