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美, 건국부터 오늘까지 밀수꾼의 손길은 계속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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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꾼의 나라 미국/피터 안드레아스 지음/정태영 옮김/604쪽·2만8000원·글항아리

영어 공부를 좀 깊게 한 사람이라면 ‘존 핸콕’이라는 이름을 안다. 그는 미국 독립선언서에 제일 먼저 사인(서명)한 사람이다. 아직도 그 영향이 남아 존 핸콕이 ‘사인’이라는 행위를 표현하는 일반명사처럼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존 핸콕이 보스턴의 상인이면서 유명한 밀수꾼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렇게 영국 제국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미국 독립의 역사는 밀수꾼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 책은 미국의 역사를 불법 무역인 밀수라는 키워드로 다시 조명했다.

저자는 미국 독립전쟁도 영국군의 밀수 과잉 단속에 격분한 미국 밀수업자들이 주도한 반란이 시발점이었다고 평가한다. 밀수꾼들은 독립전쟁 와중에 조지 워싱턴 군대에 무기를 은밀하게 공급해 승리를 뒷받침했다.

태생부터 밀수와 깊게 연관된 미국은 ‘밀수’를 통해 경제적 토대를 만들어 나갔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서부 개척 당시 가장 앞장섰던 사람들이 밀수꾼이고, 남부 목화 농장주를 위한 노예무역 역시 밀수꾼 주도로 이뤄졌다. 19세기 신흥 산업국으로 발돋움할 때는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보호무역 정책을 실시했다. 이는 역으로 생필품 등에 대한 밀수의 번성을 가져왔다. 20세기 들어서도 금주령에 따른 술 밀수가 횡행하며 갱단이 번성했다. 남미에서 밀수입되는 코카인 등 마약은 여전히 미국의 골치를 썩이고 있다.

미국은 현재 세계 최대의 밀수국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를 상대로 밀수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세계 1위의 경제력을 갖고 있는 국가에선 당연한 일이다. 과거 대영제국이 식민지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를 상대로 밀수 전쟁을 폈듯이 말이다.

이 책은 밀수와 미국의 관계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지만 ‘미국=밀수꾼의 나라’로 규정하는 것은 과하다. ‘밀수의 역사―미국 편’ 정도의 수위로 읽으면 좋을 듯하다. 밀수의 역사에 자꾸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려고 하면 촌스럽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밀수꾼의 나라 미국#존 핸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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