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롤랑 바르트, ‘작가의 귀환’을 말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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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롤랑 바르트 지음·변광배 옮김/700쪽·3만5000원·민음사

1980년 2월 25일 콜레주 드 프랑스 앞 에콜 거리. 세탁물을 실은 작은 트럭이 장년의 한 남자를 치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한 달 뒤인 3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은 롤랑 바르트.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학이론가, 구조주의자, 기호학자, 문화철학자였다.

그는 숨지기 2년 전부터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소설의 준비’를 강의하고 있었다. 이 책은 그 강의와 세미나를 녹취한 것으로, 그의 유작이다. 프랑스에선 2003년에 출간됐다.

이 책은 강의 제목 그대로 소설은 무엇이고, 쓰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며, 어떤 과정을 통해 작품이 되는지를 다뤘다. 이 책에서 그는 소설 혹은 문학작품에 대해 과거 비평가로서 취했던 태도와는 사뭇 다른 얘기를 한다.

편안하고 한가한 모습의 롤랑 바르트. 민음사 제공
편안하고 한가한 모습의 롤랑 바르트. 민음사 제공
1970년대 초 여러 문학 비평에서 ‘저자의 죽음’과 ‘독자의 소생’을 부르짖던 그는 이 강의에선 ‘저자의 귀환’을 얘기한다. 스스로도 자신을 작가라고 부른다. 그는 작가를 ‘뭔가 할 말이 있는 존재’로 규정한다. 글을 쓰는 행위는 사람들이 이 세계에 존재했다는 사실에 대한 기억과 증언, 즉 그들을 불멸화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그에게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가 1977년 10월에 사망한 것과 연관이 있다. 그의 어머니는 일찍 혼자가 된 뒤 바르트에게 온 정성을 기울였다. 1977년 1월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부임하면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등장한 것은 그 보답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바르트를 본인 표현대로 ‘소금에 절여진 상태’로 만들었고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사건이었다. 절망에 빠져 살던 그는 1978년 4월 카사블랑카에 갔다가 ‘문학적 개종’이라고 할 만한 ‘깨달음’을 경험한다. 그 순간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그가 내린 결론은 ‘문학, 즉 글쓰기에 입문하자’라는 것이었다. 이후 그는 ‘소설의 준비’라는 강의를 준비했고 여기에 ‘새로운 삶(Vita Nova)’이라는 제목의 소설까지 쓰기로 했다.

비록 바르트의 작업은 돌발적인 사고로 완결되진 못했지만 이 유작을 통해 바르트의 직관과 감수성,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엿볼 수 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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